
추모식마저도 엉뚱하고도 기발했던 고 박철수 감독 다웠다. 고인이 남긴 영화 상영과 함께 진행된 고 박철수 감독의 추모식은 웃음과 눈물이 함께했다.
14일 오후 서울 상암동 시네마테크 KOFA에서 고 박철수 감독의 추모식과 영화 '마스터클래스의 산책' 시사회가 열렸다. 고인과 함께 '마스터클래스의 산책'을 연출한 이두용, 정지영, 이장호 등 동료 중견 감독들과 유족, 이춘연 영화제작자협회장, 이병훈 한국영상자료원 원장, 배우 이경영 박원상, 등 여러 영화인이 참석해 고인을 기렸다.
지난 2월 19일 영화 작업을 마치고 귀가하던 길에 불의의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고 박철수 감독을 추모하는 자리였다.
추모사를 맡은 이장호 감독은 추모사를 준비하려다 고 박철수 감독을 떠올리며 따로 글을 쓰지 않았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나이를 먹다보니 죽음이 늘 가까이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우리 중에 유일하게 죽음을 경험한 박철수 감독은 우리에게 '죽어보니 이렇더라'며 해주고 싶은 말이 많을 것"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이 감독은 "비록 녹음까지 끝내지 못했지만 현장에서 일할 때 죽었다는 것이 참 복스러운 죽음이라고 생각한다"며 "요즘 영화판에 보면 영화작품 하나도 못 하면서 오래 살면서 영화 정치인이 돼 가지고 영화계를 돕는 게 아니라 영화계를 망치는 데 앞장서는 노인들이 많은 걸 볼 때, 저는 박철수 감독이 얼마나 복스럽게 죽었는지, 거기에 대해서 부럽기도 하다"고 뼈있는 말을 남겼다.
또 이 감독은 '마스터클래스의 산책'에 대해 "감독 4명이 자유롭게 단편을 만들자고 시작해 각자 소재를 잡아 이야기를 만들었다"며 "흥행이 안 될 거라는 건 알았지만 저희 하고싶은 대로 했다"고 소개했다.
이 감독은 "지나고 보니까 막내 박철수 감독이 가장 먼저 죽었다. 차례대로 죽으면 정지영 감독이 그다음에 죽고 그 다음에 나, 그다음이 이두용 감독이 죽겠군요"라고 너스레를 떨며 "우리 재미있게 일하다가 죽읍시다"라고 추모사를 마무리했다. 엄숙한 추모식 도중이었지만 곳곳에서 웃음이 터졌다. 정지영 감독도 파안대소하며 박수를 쳤다.

그러나 이어진 고인의 딸 박가영 양의 추모사는 지켜보던 이들이 눈물을 훔칠만큼 절절했다.
아버지의 비보가 "엉뚱하고도 기발했던 내 아버지가 만든 영화 같았다"던 박양은 그리움과 아쉬움에 슬퍼하다가도 '삶과 죽음이 멀리 있는 것 같지 않다'는 아버지의 옛 인터뷰를 보며 위안을 받는다고 털어놨다. 이어 "아버지의 영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자랑스러운 나의 아버지이자 영화감독 박철수"라고 힘주어 말하며 추도사를 마쳤다.
고 박철수 감독은 1978년 '골목대장'으로 영화계에 데뷔, 30여편의 영화를 통해 끊임없는 실험을 추구해 온 작가주의 감독이다. 1975년 신상옥 감독의 조감독으로 영화계에 입문, 1982년에는 방송국으로 무대를 옮겨 드라를 연출하기도 했으며 이후 영화계로 복귀,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다. '거미', '안개기둥', '접시꽃 당신'을 비롯해 90년대에도 '301, 202', '학생부군신위', '산부인과', '가족 시네마' 등 문제작을 연이어 선보였다.
고인은 2011년 '붉은 바캉스 검은 웨딩', 올해 초 '베드'를 개봉하는 등 최근까지 왕성한 활동을 했다. '생생활활'과 '마스터클래스의 산책'의 개봉을 앞두고 지난 2월 19일 불의의 교통사고로 숨지기 직전까지 신작 '러브 컨셉추얼리' 촬영을 마치고 후반 작업 중이었다.
'마스터클래스의 산책'은 고 박철수 감독을 비롯해 이두용, 정지영, 이장호 등 한국영화계를 빛내 온 4명의 중견 감독이 '서울의 빛과 그림자'를 주제로 작업한 옴니버스 영화다. 이두용 감독의 '이두용 감독의 처용무', 고 박철수 감독의 '미몽', 정지영 감독의 '이헌의 오디세이', 이장호 감독의 '실명' 등 4편의 단편으로 이뤄졌다. 오는 21일 개봉을 앞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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