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연애의 온도' 속 민차장은 허를 찌르는 캐릭터였다. 말끔한 외모에 점잖지만 동희와 영의 소동에 "동창회 안가고 여기 오길 잘한 것 같아요"라고 관심을 보이고, 영의 사진을 다른 이에게 보여줘 동희의 속을 뒤집어 놓는 민차장의 모습은 의외의 웃음을 줬다.
민차장을 연기한 배우 박병은(36)도 그랬다. 도시적인 외모에 얼핏 차가워 보이는 인상이지만 한 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누며 박병은의 재치에 몇 번이나 큰 웃음이 빵빵 터졌다. 반전 있는 배우 박병은과 '연애의 온도'와 연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 5년 만에 다시 만난 '연애의 온도'
박병은과 '연애의 온도'의 인연은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도 그는 이미 민차장 역이었다. 노덕 감독이 내민 '연애의 온도'가 엎어졌을 때, 박병은은 이 영화를 다음 생에서나 찍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5년 만에, 노덕 감독은 보란 듯이 '연애의 온도'를 세상에 내 놓았다.
"5년 전에 '연애의 온도'가 제작에 들어갈 뻔 했어요. 그때 감독님을 처음 만났죠. 다시 찍을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어요. '아, 이 영화는 이제 다음 생애에나 찍겠구나' 했는데 5년 만에 찍게 됐어요. 사실 박계장 역의 강현이도 그렇고 민기랑 나이차이가 있어서 주위의 우려가 있었는데 감독님 뚝심대로 갔고, 다행히 결과는 좋았죠."
자극적인 장면이 없이도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은 '연애의 온도'. 배우들도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박병은도 영화가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은 것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는단다.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이 좀 아쉽긴 해요. 오히려 영화에 나오는 이별의 모습은 고등학생들이 더 공감할 것 같아요. 가장 크게 작용한 것이 사내 불륜이라는데, 사실 아침드라마에서는 전형적인 코드잖아요. 감독님도 그렇고 배우들도 다들 당황스러웠죠."
지금까지 '평행이론' '아이들' 등 많은 작품을 해왔지만 박병은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는 '연애의 온도'를 통해 남들에게 말하면 '아!'하고 기억할 수 있는 작품이 생긴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연애의 온도'에서 재발견 됐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런 건 있죠. 갑자기 문자나 카톡이 폭주하는?(웃음). 인터뷰나 영화사 미팅을 할 때 예전에는 ''평행이론'을 했습니다'하면 '그게 뭐예요? 유세윤 나오는 케이블 프로그램?' 이런 반응이었어요. '연애의 온도'는 많이들 봐주셨고, 특히 20~30대 분들이 많아봐 주셨으니 이제 '연애의 온도'로 말하면 될 것 같아요."

◆ "어떤 장르든 유머가 있어야죠."
인터뷰를 통해 한 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눈 것이 전부지만 박병은이라는 배우의 이미지는 완전히 달라졌다. 오정세에 대해 이야기 할 때는 오정세의 말투를 그대로 따라하고, 김강현과의 일화를 말할 때는 김강현에 빙의되는 박병은, 평소에 개그욕심도 많다는 그는 작품에도 유머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영화는 길게는 두 시간 정도 하잖아요. 스릴러든 멜로든 유머가 없으면 안된다고 봐요. '연애의 온도'에서는 박계장이 그런 역할을 잘 해 줬어요. 처음에는 약간 의구심이 있었죠. 아무리 강현이가 동안이지만 민기랑 여덟 살 차이인데 동생으로 나오니까. 동희(이민기 분)와 영(김민희 분) 둘의 이야기로 쭉 가다보면 분명 집중력을 잃어요. 그런 것들을 조연들이 잘 채워준 것 같아요."
개그 욕심이 남다르다고는 하지만 지금까지 박병은이 맡았던 역할들은 유머와는 거리가 있었다. '아이들'에서는 아이들을 죽인 범인이었고, '평행이론'에서는 사무관 서정운 역으로 출연해 긴장감을 높였다. 말끔한 외모와 도시적인 이미지도 이에 한몫했다.
"사실 개그 욕심이 많아요. 그런데 아무래도 상업영화에서는 차가운 이미지가 많았어요. 많이들 차갑고 도시적으로 보시기 때문에 작품을 하면 감독님들하고 얘기를 많이 하려고 해요. 낚시를 좋아해서 혼자 자주 가는데 가면 어르신 분들이 빤히 쳐다보고 그러세요. 그러다가도 막걸리 한 잔 하면 다 풀려버리죠."

◆ 박병은의 '연애의 온도'
'연애의 온도' 속 동희와 영의 이별은 파란만장하다. 선물했던 물건을 되돌려주는 것은 물론이고 휴대전화 요금 폭탄을 선사하기도 하고, 서로의 SNS 염탐은 기본이다. 박병은의 연애의 온도는 어땠을까.
"전 그런 경험은 없는 것 같아요. 그렇게 싸운 적도 없고요. 예전에 10년 가까이 사귄 여자친구가 있었는데 10년 동안 싸운 기억은 두 번 정도 밖에 없어요. 지금은 싸울 사람이 없죠. 이제 싸울 때도 됐는데(웃음)."
멜로영화 '연애의 온도'에서는 두 사람의 사랑의 훼방꾼이었던 박병은, 멜로영화 찍고 싶은 생각이 들 법도 하다. 박병은은 말랑말랑한 멜로가 아닌 가슴 아픈 사랑얘기를 그려보고 싶단다.
"멜로영화 정말 하고 싶어요. 너무 고통스럽고 가슴 찢어질 것 같은 사랑얘기로. 정신적으로 좀 피폐해지더라도 해보고 싶어요."
멜로가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그의 차기작은 이민기와 함께하는 '몬스터'다. 악덕 사채업자 역으로 분하는 그는 오버하지 않는 사태업자 연기를 보여주겠다는 생각이다.
"영화에서는 사채업자가 막 건달이나 조직폭력배처럼 나오잖아요. 은갈치 정장입고, 화려한 셔츠 입고. 그런데 알고 보면 그 사람들도 평범한 회사원이거든요. 개인적으로 연기를 할 때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이 우리가 많이 봐왔던, 정형화된 틀을 탈피하는 거예요. 이번에도 사채업자이기 때문에 악한 것이 아니라 그냥 원래 본성이 악한데 직업이 그저 사채업자인 인물을 표현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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