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포트]

2005년 공포영화로 데뷔한 지 9년째. 안동 출신의 이 훈남 배우는 '멧돌춤'의 주인공으로 뜨거운 화제를 모으던 시기를 겪었고, 묵묵히 작품에만 전념하던 시간을 보냈으며, 반전의 캐릭터로 보는 이들 뇌리에 각인되는 순간을 맞기도 했다. 그렇게 해온 작품이 무려 30여편.
드라마 '추노'에서 반전의 그분으로 시청자를 경악케 하다가 영화 '최종병기 활'의 청나라 왕자로 시선을 사로잡더니, 드라마 '각시탈'에선 순사가 돼 친구에게 칼을 겨눴다. 개봉하자마자 파죽지세로 극장가를 휩쓴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감독 장철수)에서는 가수 지망생으로 분한 최정예 남파 간첩이다.
시원하게 머리를 밀고 원색으로 염색을 한 게 끝이 아니었다. 손가락 끝이 다 벗겨지도록 기타를 연습했고, 결국 그 위에 본드를 발라 말리고서야 연주를 촬영했다. 배우 박기웅(28)을 만났다. 그의 앞에 어떤 수식어를 붙일까 고민하다 두 마디가 떠올랐다. 강렬하게 성실하게.
-강렬한 캐릭터들과 인연이 따로 있긴 한 모양이다.
▶'활'의 영향인지, '각시탈' 영향인지, 그 전 '추노'의 영향인지 강한 역할들이 잘 들어온다. 힘 빼고 하는 것도 잘 할 수 있는데(웃음) 아예 안 찾으시는 건 아니지만 굉장히 극적인 역할들이 더 많이 온다. 다양하게 연기하면서 스펙트럼을 넓히는 게 배우로서 바라는 바인데, 여러 역할로 찾아주셔서 감사하다.
-강한 캐릭터들은 배우로서도 욕심나고 연기하는 재미가 남다르지 않나.
▶물론이다. 이 표현이 맞으려나. 제가 미대생 출신이다. 특히 정밀 묘사를 잘 한다. 자기 사진을 주면서 그림 그려달라는 주위 분들이 있는데 뽀샤시한 스티커사진 같은 건 누가 그려도 좋게 그릴 수가 없다. 빛이 좋은 원본 사진이 있어야 잘 못 그리더라도 멋지게 그려낼 수 있다. 연기할 때도 굴곡있고 입체적인 캐릭터, 더 표현할 수 있는 구색이 있는 캐릭터가 더 당긴다.

-기타는 모두 직접 쳤다고 하더라. 지금도 치나.
▶취미를 제대로 붙여서 계속 치고 있다. 영화에서는 '아파트'랑 '임진각'을 연주하면서 불렀는데 이젠 레퍼토리가 꽤 늘었다. 3월 일본 팬미팅 때도 연주하며 노래를 했다. '아파트' 땐 손에 본드를 붙이고 했다.
-본드를 붙여?
▶배우들이 다 모이는 신이라 일정 조정이 불가능한데 저작권 문제로 노래가 바뀌면서 3일 전에 곡이 정해졌다. 직접 쳐야 했다. 3일간 집에서 연습만 했더니 손가락 끝이 터지더라. 본드를 바르고 쳤다. 실제 기타 치시는 분들도 연습을 하다 끝이 갈라지면 본드를 바르고 한다더라. 그러고 치면 다시 너덜너덜해져서 본드가 떨어진다.
-꾸준히 쉼 없이 연기했다. 연애는 하나.
▶연애 안 한지가 꽤 오래됐다. 3~4년은 됐나. 왜냐고 물으신다면, 필요성을 모르겠다. 일만 해야겠다 이런 것보다 지금이 너무 편하고 즐겁다. 사실 농구팀 1개, 축구팀 1개에 몸담으면서 틈 날 때마다 뛰고 하다보니 즐겁고, 또 바삐 일하는 데 너무 익숙해졌다. 지금이 좋다.
-눈빛이 유난히 강한데 이번에는 아주 힘을 조절한 느낌이다.
▶이제는 연기가 직업같다. 예전보다 힘이 많이 빠졌고 편해졌다. 소위 경제적으로 풍족해졌기 때문일 수도 있고, 경험이 쌓여서일 수도 있다. 비단 이 작품 뿐 아니라 늘 더 힘을 빼야겠다고 생각한다. 선배님들 보기엔 아직도 멀었다.
욕심을 버리고 힘을 빼야겠다는 건 연기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제 삶의 모토 중 하나다. 저희 집에 가면 액자로 걸어 놓은 경주 최부자 6연이 있다. 그 첫 번째가 자차초연(自處超然)이다. 스스로를 비워내며 초연하게 살라는 것이다. 연기 뿐 아니라 매사 비우고 편안하게. 물론 제가 세 보이려 하지 않아도 원래 좀 세 보이는 부분이 있다. 눈빛이 강하다는 이야기도 늘 듣고. 그러다보니 조금만 힘을 줘도 아주 세 보이는 부분이 있긴 하다.
-이번 캐릭터는? 사실 주연에 비해 분량이 적기도 하다.
▶해랑은 기존에 선보인 캐릭터와 많이 달랐다. 그래서 더 해보고 싶었다. 배우로서 한 가지 이미지로 고착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늘 희한한 것, 이것저것 다양하게 연기해보고 싶었고, 내 나이때만 연기할 수 있는 역을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래서 '각시탈'을 했고, '풀하우스2'에서 가수 역할도 재밌게 했다. 어떤 분들은 '전략적으로 한 우물 파는 게 낫지 않느냐'고도 한다. 하지만 저는 지금이 좋은 것 같다. 해랑을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 줄어 아쉬운 건 사실이지만 배역의 크기에 개의치 않는다.
-주요 배우 중 가장 늦게 캐스팅됐다. 어떻게 캐스팅됐나.
▶감독님은 잘 할 것 같아서 캐스팅했다고 그러셨다. 저는 잘 모르겠는데, 정말 고민을 많이 했다. 당시에 '각시탈'이 막 끝나고 작품이 정말 많이 들어왔다. 드라마는 더 많이 들어왔고. 더욱이 지난 3년간 정말 저랑 친한 감독님들과만 연기했다. 직접 전화를 받고 캐스팅이 되고, 과거 일했던 사람들과 다시 일을 하게 되는 거다. 이게 무슨 복인지, 스태프가 아니라 형들과 일을 하는 거다. '은밀하게 위대하게'처럼 아는 사람이 없는 현장도 처음이었다. 하지만 이미 캐스팅된 선배님, 후배들도 다 함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점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잘 할 것 같았다'는 이야기가 공감된다. 최근 작품마다 늘 깊은 인상이 남았다.
▶제가 좀 거품이 많다.(웃음) 갈수록 어렵다. 내가 뭘 어려워하는지, 또 뭘 더 해야하는지를 예전보다 잘 알겠다. 따져보면 또래보다 다작을 했다. 이래저래 작은 역할까지 다하면 30개 정도 작품을 했더라. 다른 이유 없이, 연기가 진짜 하고 싶어서 그랬다. 막 하고 싶고 기회가 왔는데 안 할 수가 없지 않나. 마침 생활을 위해서도 연기를 해야 했다. 점점 시간이 지나 입에 풀칠은 하고, 차에 기름은 넣을 수 있을 정도가 됐을 때는 또 다른 이유가 생겼다. 작품에 들어가면 깊이 빠지는 편이다. 거기서 헤어나려고 여행을 가는 사람도 있고 취미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는데, 저는 다른 캐릭터를 몸에 익히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더라.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엔가 다작을 하게 되고, 촬영을 안 하고 잡힌 계획이 없는 지금이 어색할 정도가 됐다.
-'은밀하게 위대하게' 바람이 심상치 않다. 어떤가.
▶겁난다. 어찌될 지 모르겠다. 좀 더 잘할 걸 하는 생각만 한다. 이렇게 잘 되는 영화를 하는 게 '최종병기 활' 밖에 없었다. 100만 넘긴 영화는 '싸움의 기술' 딱 하나가 더 있다. '활' 때도 관객이 막 드는데 무섭더라. 하면서 좀 더 잘할 걸 하는 생각만 들고. 지금도 그렇다. 좀 더 잘할 걸. 미치겠다. 좋긴한데 이를 어쩌나.(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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