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월1일 개봉하는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에 대한 관심이 상당하다. '설국열차'는 기자시사회를 통해 베일은 벗었지만 여전히 영화에 대한 궁금증은 풀리지 않고 있다. 봉준호 감독과 제작자 박찬욱 감독, 총괄프로듀서 이태헌 오퍼스필름 대표, 배우 송강호의 인터뷰를 재구성해 '설국열차'에 대한 궁금증을 A to Z로 푼다.일부 스포일러가 담겨있다.
Adventure:'설국열차'는 모험영화이자 액션영화다. 일반적인 어드벤쳐 무비와는 다르지만 액션과 모험정신으로 충만하다. 봉준호 감독은 "돌직구이자 액션영화"라고 정의했다. 이태헌 대표는 "430억원이란 제작비가 한국은 최대지만 할리우드에선 중저예산영화"라며 "기획부터 모험과 도전이 충만했다"고 밝혔다.
Bong Joon Ho:봉준호 감독은 2004년 겨울 홍대 앞 만화가게에서 '설국열차'라는 프랑스 만화를 읽고 매료됐다. 선 자리에서 만화를 다 읽은 봉준호 감독은 그 때부터 영화로 제작해야겠다는 꿈을 품었다. '설국열차'에 틸다 스윈튼, 크리스 에반스, 존 허트, 에드 해리스 등 당대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참여한 것은 봉준호 감독 때문. 판권 구입도 봉준호 감독의 영화를 프랑스 원작자가 좋아해 수월했다는 후문. 송강호에 따르면 틸다 스윈튼은 봉준호 감독의 전작 중 '괴물'을 최고로, 크리스 에반스는 '살인의 추억'을 최고로 꼽았다. 덕분에 송강호는 봉준호의 페르소나로 외국배우들에게 대접을 받았다고.
CW-7:2014년 세계 정상들은 환경단체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구온난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냉각제인 CW-7를 하늘에 살포한다. CW-7은 그러나 지구를 급격하게 얼어붙게 만들어 빙하기가 도래하게 만든다. 박찬욱 감독은 "봉준호 감독이 바로 내년에 이런 일이 벌어지도록 설정한 건 먼 미래가 아니라 바로 인접한 미래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을 그리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영화 시작 CW-7을 살포하는 장면은 '괴물' 도입부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Drug:'설국열차'에는 일종의 마약인 크로놀이 등장한다. 열차 보안 설계자 송강호와 고아성 부녀는 크로놀 중독자이기도 하다. 크로놀은 영화의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다.
Engine:설국열차를 이끄는 맨앞칸에 존재하는 엔진은 무한동력이다. 엔진이 멈추면 기차도 멈춘다. 그렇기에 기차 속 사람들에게 엔진은 신성한 존재로 여겨진다. 때문에 엔진은 성스러운 상징 같은 모양이어야 했다. 봉준호 감독은 "기획부터 엔진룸 콘셉트를 가장 고민했다"며 "수백장의 스케치가 있다"고 말했다. 엔진을 찾아 떠나는 여정이기도 한 '설국열차'는 그래서 엔진룸에서 종교적이자 영화적인 대화와 액션이 벌어진다. 열차를 지배하는 에드 해리스와 꼬리칸 반란 리더인 크리스 에반스의 대화는 광야에서 기도 중인 예수님을 유혹하는 악마의 대화와도 닮았다. 보리수 밑에서 깨달음을 얻으려는 석가모니를 유혹하는 마라도 연상시킨다.
Fire:'설국열차'는 봉준호 감독이 과연 액션을 어떻게 연출할까란 궁금증을 풀게 해준 영화이다.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떼거리 액션. 봉준호 감독은 "미래를 배경으로 하지만 원시시대처럼 칼과 도끼로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불은 열차 초반 액션에 중요한 설정으로 등장하며, 유머와 철학이 영화적으로 유쾌하게 그려진다.
Ground:'설국열차'는 빙하기가 도래하고 사람들이 열차에 올라 17년을 보낸 뒤의 이야기. 열차 안에는 땅을 밟아봤던 사람들과 땅을 밟아보지 않은 채 태어난 사람들이 나온다. 봉준호 감독은 "각 세대를 빙하기 전에 살았던 사람들, 빙하기를 겪으며 열차에 탄 사람들, 열차에서만 살았던 사람들로 구성하고 싶었다.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엮으면 그것이 역사가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땅에 관한 그리움이 당연히 영화 속에 담겨있다.
Host:'설국열차'에는 봉준호 감독의 전작 '괴물'이 어른거린다. 당장 '괴물'에서 아버지와 딸로 출연한 송강호와 고아성이 그대로 출연한다. 막바지 액션에 송강호가 쇠파이프로 맞서 싸우는 장면은 '괴물' 마지막 장면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송강호는 "나는 '설국열차'가 '괴물'의 세계판 또는 연장선상이라고 생각했다"며 "'괴물'이 한강에 등장하는 괴물로 지금 한국을 풍자했다면 '설국열차'는 보이지 않는 괴물과 맞서며 지금 세계를 풍자한다"고 말했다.
International:'설국열차'는 기획부터 미국을 비롯한 세계시장을 겨냥했다. 당초 CJ E&M은 430억원의 제작비 중 120억원만 투입했었다. 나머지 제작비는 세계 영화투자사로부터 충당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미국에서 영화 완성본을 보고 투자하겠다는 바람에 촬영에 들어갈 때까지 제작비가 다 모이지 않았다. 결국 CJ E&M이 모든 제작비를 댔다. 이렇게 만들어진 '설국열차'는 한국영화 사상 역대 최다인 167개국에 선판매돼 영화 개봉에 앞서 200억원에 달하는 수출액을 기록했다. 프랑스와 영국, 일본, 동유럽, 호주, 러시아, 남미 지역에 배급계약을 성사했다. 미국에선 올 하반기 개봉을 놓고 협의 중이다.
Joke:'설국열차'는 곳곳에 봉준호 감독의 조크가 담겨 있다. 열차칸마다 진행되는 이야기에 독특한 조크가 등장한다. 횃불 전투로 이어지는 액션에 난데없이 등장하는 "해피 뉴이어", 상류층 앞칸으로 등장할 때 나오는 초밥 장면, 상류층 아이들을 교육하는 교실칸 등등은 그 자체로 조크다. 봉준호 감독의 전작에서 송강호를 통해서 드러나는 너스레 유머 장면은 적지만 상황을 통해 전해지는 불균형한 유머는 이 영화의 백미.
Korean:'설국열차'는 영어 영화지만 한국어가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송강호와 고아성이 한국어를 쓰기 때문. 송강호는 영어를 못해 통역기로 한다는 설정이며 고아성은 영어와 한국어를 같이 쓴다. 설국열차에 전 세계 다양한 사람들이 탑승한다는 설정이기 때문. 통역은 영화 초반 웃음을 자아내는 설정이기도 하다. 송강호는 "애국주의 때문이 아니라 영화의 맛을 내기 위해 한국어로 연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 덕에 송강호는 촬영 도중 카메라가 도는데도 정해진 대사를 다른 것으로 바꾸라는 봉준호 감독 지시에 진땀을 뺐다는 후문. 영어 대사는 바꾸진 못해도 한국어 대사는 봉준호 감독이 평소 습관대로 즉석에서 종종 대사를 바꿨다고.
Leader:이 영화는 지도자의 덕목에 대해서 많은 생각할 거리를 전한다. 꼬리칸 사람들의 절대적인 신뢰를 받는 존 허트, 그리고 열차의 지배자 에드 해리스. 꼬리칸 혁명의 주동자 크리스 애반스는 각각 다른 지도자다. 이들은 지도자의 역할에 대해 각각 다른 방향으로 생각한다. 이들이 생각하는 지도자상은 영화의 아주 중요한 설정 중 하나다.
Marlboro:말보로 라이트. 송강호는 이 얼어붙은 세계에서 마지막 남은 담배를 태운다. 그가 꺼내 문 담배는 바로 말보로 라이트. 그가 담배를 피우는 장면은 애연가라면 그 자리에서 따라 피우고 싶은 욕망이 들만큼 매력적이다. 촬영현장에서 송강호가 담배 피우는 장면을 보고 외국배우들이 "섹시하다"고 연발했다는 후문. 송강호는 이에 "쿳쿳"이라고 답함. '설국열차'에 등장하는 모든 것들이 연결돼 있듯이 담배도 이야기의 중요한 설정 중 하나.
Namgungminsu:남궁민수. 송강호의 극 중 이름. 봉준호 감독은 외국 사람들이 발음하기 어려운 한국이름을 고민하다가 자신의 친구 이름인 남궁민에게서 착안. 극 중 외국배우들이 성을 놓고 남궁과 남을 헷갈리는 장면도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반전은 송강호가 꼬리칸 출신이 아니라는 점. 그는 보안설계자인 엘리트였다. 영어 한 마디 못하는.
Oldboy:기차에서 벌어지는 액션 중 일부 장면이 '올드보이' 장도리 액션의 오마주인 것 같은 인상이 든다. 제작자가 박찬욱 감독이란 점에서 그런 생각이 드는 건 당연지사. 혹자는 박찬욱 감독의 그림자가 '설국열차'에 드리워져 있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박찬욱 감독은 "감독이 제작자이기에 더욱 다른 감독의 연출이 자유롭도록 할 뿐"이라고 말했다. '올드보이' 오마주도 아니라고 강변. 봉준호 감독은 "열차에서 벌어지는 액션이기에 옆으로 펼쳐져 보일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Protein bar:꼬리칸 사람들은 영양분을 프로틴바라는 양갱 닮은 물질을 먹으며 섭취한다. 앞칸에선 스테이크를 먹는다며 한탄하는 것도 당연지사. 모든 혁명은 배고픔과 차별에서 출발하는 법. 역시 '설국열차'의 모든 이야기들이 연결돼 있듯 이 프로틴바와 스테이크도 영화의 주요 설정 중 하나.
Quartz:시계. 영화 초반 중요한 소도구 중 하나. 뿐만 아니라 시간 또한 이 영화의 주요 설정 중 하나. 영원을 상징하는 도구. 이 시계가 어떻게 되는지 살펴보는 것도 깨알 같은 재미.
Revolution:혁명. '설국열차'는 억압 받는 사람들이 체제를 바꾸고자 싸우는 이야기를 얼개로 한다. 봉준호 감독은 "멀리는 스파르타쿠스부터 가까이는 아큐파이 운동같이 언제나 있어온 이야기"라고 말했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기차칸마다 죽어나가는 이유에 대해서는 "체제를 바꾸기 위해선 그만큼 희생이 크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봉준호 감독은 "시스템에서 자리 바꾸기 말고도 또 다른 방법이 있으니 그게 바로 송강호의 방법"이라고 밝혔다. 봉준호 감독은 송강호 역할에 대해 긴 김밥에서 옆구리에 튀어나오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Shoes:구두. 선종 화두에 남전참묘라는 게 있다. 남전스님이 동당 서당에 각각 거주하고 있는 스님들이 왔다갔다하는 고양이를 놓고 동당의 고양이다, 서당의 고양이다라고 싸우자 "바르게 말하면 고양이를 살려줄 것이고 바르게 말하지 않으면 고양이를 죽이겠다"고 한다. 대중이 말이 없자 남전스님은 고양이의 목을 벤다. 출타했던 제자 조주가 돌아오자 남전스님이 있었던 일을 이야기한다. 이에 조주는 신발을 머리에 이고 아무말없이 밖으로 나간다. 남전스님은 "조주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고양이는 죽지 않았을텐데"라고 말한다. 사물의 본성에 관한 화두다. '설국열차'에는 영화 초반 이와 비슷한 구두와 관련된 일화가 등장한다. 그 또한 영화의 주요 설정이자 이야기의 연결고리다. '설국열차'는 불교라는 세계관에 유일신을 태우고 가는 것 같다.
Train:기차. 봉준호 감독과 제작진은 설국열차를 총 1001칸으로 설정했다. 제작자 박찬욱 감독은 "돈이 더 많았다면 더 다양한 기차칸들을 보여줄 수 있었을텐데"라며 못내 아쉬워했다. 기차칸에는 한 칸마다 대략 1000명씩, 대략 10만명 가량이 탄다고 설정했다. 그랬다가 꼬리칸과 앞칸이 인구수가 달라야 한다고 다시 착안, 인구수를 꼬리칸일수록 많게 앞칸일수록 적게 구성했다. 인구도 역시 주요한 설정 중 하나.
Violin:바이올린 연주자. 체제 안에 순응되면 어떻게 사람이 바뀔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인물 중 하나. 권력에 봉사하는 예술가의 표상. 그와 반대로 영화에는 역사를 그림으로 그려내는 화가도 등장한다. 눈 밝은 관객이라면 이 화가가 벽에 붙여놓은 그림들 중에 사람들이 열차를 탔을 때 광경도 볼 수 있다. 이 화가가 그린 그림은 '설국열차' 원작자가 직접 그렸다. 이 역시 모든 게 연결돼 있는 설국열차 키워드 중 하나.
Wilford:에드 해리스가 연기한 설국열차의 창조자이자 지배자. 시스템이자 창조자이자 지배자이자 독재자이자 자본가이자 어쩌면 신 같은 인물. '매트릭스3'에서 네오가 마지막에 만나는 인물과도 닮았다.
X(Axe):도끼. 무엇을 말하랴, 도끼 액션은 영화 초반 시선을 뺏길 수밖에 없는 장면 중 하나. 총과 도끼는 모든 게 연결돼 있는 이 영화의 주요한 설정 중 하나.
Yona:'설국열차'에 송강호 딸로 등장하는 고아성의 극 중 이름. 성경에서 선지나 요나가 레비아탄에 삼켜졌다가 나왔다는 일화에서 착안. 봉준호 감독은 "고아성이 '괴물'에서 괴물에 삼켜졌다가 송강호가 끄집어내지 않나. 거기서 착안했다"고 말했다. 요나는 '설국열차'에서 희망의 상징 중 하나. 이 이름과 마지막을 연결시켜 생각해본다면 또 다른 재미를 준다.
Z:마지막. 창조는 철저한 파괴가 있어야 비로소 이뤄진다. '설국열차'에 마지막까지 탑승한다면 봉준호 감독의 의도를 경탄하며 바라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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