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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이석훈 감독 "사람이 있으니 가는 거다"(인터뷰)

'히말라야' 이석훈 감독 "사람이 있으니 가는 거다"(인터뷰)

발행 :

김현록 기자

영화 '히말라야'의 이석훈 감독 인터뷰

'히말라야' 이석훈 감독 / 사진=홍봉진 기자
'히말라야' 이석훈 감독 / 사진=홍봉진 기자


오는 16일 개봉하는 영화 '히말라야'(제작 JK필름)의 감독은 이석훈(43)이다. 코미디만 내리 연출한 '댄싱퀸', '해적:바다로 간 산적'의 감독이 히말라야에 동료 시신을 찾으러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다니. 연출을 맡았다는 소식부터 뜻밖이었다. 이석훈 감독도 "저도 의외였다"고 조용히 웃었다.


하지만 그는 '웃음' 못잖게 '감동'에도 강한 따뜻한 감독이고, 이미 100억대 대작을 솜씨있게 주물러 본 경험자이기도 하다. 물론 한국에선 제대로 만들어진 적 없는 산악영화가 쉬운 도전은 아니었다. 이미 알려진 실화와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웃음과 눈물이 있는 영화를 뽑아내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는 기어코 전국 방방곡곡을 뒤져 히말라야가 될 법한 바위틈을 고르고, 몽블랑과 네팔 4500m 고지를 돌며 영화를 완성해 냈다.


이 감독이 그렇게 해서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이었냐고 물었다. 그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 그것이 죽은 사람이라도"이라며 "사람이 거기 있으니까 가는 거다. 그 사람을 구조하고 데려오는 데 얼마가 드냐, 위험하냐. 머리 속으로 따지는 건 우리가 이런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답했다. 지금 '히말라야'를 해야 하는 이유가 있었던 거다.


-의외였다. '댄싱퀸', '해적'의 이석훈 감독이 '히말라야'를 연출한다는 게.


▶저도 의외였다. JK필름이 '히말라야'를 준비하는 걸 알았고, 시나리오 모니터도 했었다. 당시가 '해적' 촬영이 끝나고 후반작업이 진행 중이었을 때인데, 얼굴이나 보자고 찾아갔다가 제안을 받았다. 윤제균 감독님이 황정민이 출연하기로 했고 감독을 찾아야 하는데, 둘이서 제 이야기를 하며 동의했다고 하시더라. 그러고 거절할 생각으로 다시 만났다. 그런데 그 말이 안 나오더라. 의리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선택이 잘 된 건지는 결과를 봐야 한다. (웃음)


-의리만으로 할 수 있는 결정은 아니다. 고민도 많았을 텐데.


▶개인적으로는 '해적'으로 힘들었는데 끝나자마자 해야하나 생각도 들었고, 큰 영화라 산악영화가 흥행이 될까 걱정도 했다. 그냥 싫다고 안 할 수는 없지 않나. 하지만 '못하겠다'고 설득할 자신이 없더라. '국제시장' 전이긴 했지만 누가 뭐래도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연기 잘하는 배우와 최고 제작자가 만들고 투자배급사 CJ가 나서는 영화다. 거절한다면 내가 배부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은 못해서 안달인데 왜 나는 거절할 이유를 찾고 있나, 배가 불렀구나' 했다.


-일단 하기로 한 뒤 가장 먼저 고민한 것은?


▶이걸 어디서 찍느냐였다. 히말라야의 그림을 담아야 하고 많은 스태프와 배우, 대규모 장비가 갈 수 있는 곳이어야 했다. 첫 촬영 땐 배우 한 사람이 의상과 장비를 착용하는 데 1시간이 걸렸다. 신발만 몇 겹에 혼자 입기도 어려워했다. 숙달돼서 빨리빨리 한 게 30분이었다. 이런 상황에 큰 산을 세트로 만들 수도 없고, 미니어처로 찍어 CG를 입힐 수도 없고, 그렇다고 훈련받지 않은 배우와 스태프를 데리고 7000m를 오를 수도 없는 일이었다.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 일이다. 대강의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비슷한 지형을 찾아 인공적으로 눈을 뿌리고 스크린을 설치해 배경을 합성한다. 하지만 눈을 뿌리면 히말라야처럼 보이는 장소가 어디인가. 별별 헌팅을 다 다녔다. 답은 채석장밖에 없더라. 그나마도 작업 안 하는 구역도 발파를 하면 돌이 떨어질 수 있어 상당히 위험했다. 영월 촬영장은 아주 큰 채석장인데 멀리서 발파한다고 사이렌이 울리면 대피했다 다시 촬영하길 반복했다. 마침 지난 겨울은 따뜻해서 더 안 좋았다. 충분히 춥지 않아 인공눈이 부족해 돌아오길 1주일을 계속한 적도 있다. 그렇게 2월이 되니 답이 안 나오더라.


-그래서 네팔 현지 외에도 몽블랑으로 촬영을 갔나.


▶원래는 크레바스 장면을 찍는 후보지였다. 하지만 크레바스만 찍으러 가기엔 비용 부담이 커서 고민이었다가 그 즈음엔 '그렇다면 몽블랑으로 가자'가 된 거다. 문제는 거기서는 전기를 사용할 수 없어 특수효과 장비나 강풍기를 못 쓴다. 한 이틀은 날씨가 너무 좋았고, 또 한 이틀은 날씨가 아무것도 안 보일 정도로 나빴다. 대신 혹한에 앞이 안 보이는 설정을 촬영할 수 있었다.


사진='히말라야' 포스터
사진='히말라야' 포스터


-통제가 심해서 황정민이 나서서 관계자랑 옥신각신 한 적도 있었다던데.


▶한 명이라도 다치면 안되니까 통제가 엄격했다. 하지만 저희 입장에서는 여기까지 왔는데 조금이라도 더 좋은 그림을 담고 싶지 않았겠나. 하지만 저는 저대로 '위험한 곳으로 사람 보내자'고 하기가 좀 그랬다. 그럴 때 황정민 선배가 총대를 매 줬다. 골목대장 같은 느낌이 있다. 배우도 당연히 욕심이 나지 않겠나. 16좌를 했다는 설정인데 크레바스에서 멀찍이 떨어져 찍으면 무서워서 못 간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 그걸 보며 가이드도 조금씩 이해해 주셨고 고마웠다.


-등반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면 얼굴이 거의 보이지 않는데 배우들 얼굴을 얼마나 드러낼 것인가도 고민이었겠다.


▶딜레마였다. 리얼리티를 위해선 얼굴이 나오면 안된다. 고글이며 모자로 다 뒤집어써야 하는데 그러면 연기적 표현이 안 되는 거다. 그동안 산악영화를 총망라해서 이 딜레마를 어찌 해결했나 검토했다. 답은 단순하더라. 그냥 드러내는 거다. 잘 쓰고 있다가 말할 때는 벗는 정도로. 리얼리티가 물론 좋지만 어쩔 수가 없다. 배우들도 관객들 눈치채지 못하게 알아서 자연스럽게 하시더라. 물론 반드시 써야 하는 신이 있었다. 고글이 덜 반사되게 하거나 어떻게든 해결을 하려 했다. 분장에도 더 신경쓰고.


-'히말라야'가 제목이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산 자체가 영화의 주인공 중 하나다.


▶배경으로서만 있는 게 아니라 중요한 의미의 공간이었다. 라디오 인터뷰 장면을 보면 '산 타는 사람은 정복이란 말을 하지 않는다', '산이 잠시 머물게 허락했을 뿐', '진정한 자신을 볼 수 있다'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줄거리 상 중요한 신은 아니고 관객을 가르친다는 느낌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산에 대한 그들의 철학을 보여주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제작진도 고민이 많았다. 이 사람들이 산에 왜 가느니 답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으면 쓸데없이 산에 갔다가 죽은 사람이 되지 않을까. 그 답을 딱 해드릴 수가 없더라. 모호하지만 알 것 같다는 거지. 그걸 관객에게 설명하려고 애썼다. 별을 보는 장면, 해가 뜨는 장면도 그 차원에서 기능한다고 생각한다. 고락을 함께하는 동료, 정상에 올라 얼싸안으며 느끼는 희열 등등. 설명할 순 없지만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다면, 그래서 산에 갈 수도 있겠다고 이해하신다면 괜찮지 않을까.


-더 웃기고 더 슬플 줄 알았다. 윤제균 감독이 제작자지만 '이석훈의 영화'라는 생각도 들었다.


▶JK필름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있으니 상대적으로 허전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구나 싶다. 더 웃길 수 있는데, 더 울릴 수 있는데 자제한 건 아니다. 주어진 상황에서 재미있게 하려 한 것이다. 다만 실화다 보니 조심스럽고 바꾸기 힘든 부분이 있었다. 드라마적으로 어떤 장치를 한다면 꽝 때리는 감동이 있을 텐데 대단한 반전을 만든다거나 할 수가 없었다. 왜곡할 수가 없으니까. 윤제균 감독님은 전혀 강요하지 않으셨다. 실화기 때문에 조심하신 게 있는 것 같다. 오히려 억지로 하지 말라고, 음악도 강요하듯 크게 하지 말라고 하셨다.


-실화 자체의 무게도 있지만, 이미 정해진 이야기가 있어서 전형성을 피해가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보통 영화보다 주인공 중 하나가 상당히 일찍 목숨을 잃는다. '왜 이렇게 빨리 죽지?'하는 느낌을 만회해보려고 중간중간 플래시백과 사연을 넣었다.


또 조난당해 사망하신 분들의 사연은 어느 정도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다 돌아가셨기에 실제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박무택의 시신이 8750m 지점에 있다는 것, 김재현 캐릭터는 혼자 내려오다 실종됐고, 김인권씨가 맡은 박정복이란 캐릭터가 혼자 구조하러 가 박무택을 만났고 죽음을 확인하고 내려오다 실종됐다는 것은 사실이다. 당시의 분 단위 상황이 긴박한 일지로 남아 있다. 영화에는 묘사되지 않지만 베이스캠프는 바로 구조하러 갈 수가 없고, 최종 캠프4에는 산소호흡기도 적어 여러 사람이 갈 수 없어 2명씩밖에 못 가고 셀파들이 올라갔다 포기하고 내려오기도 했다. 이를 토대로 왜 이렇게 됐는지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상상해 만들었다.


-실제 사망자가 세 사람이다. 처음엔 왜 박무택만 찾으러 간다고 하나 갸우뚱했는데 영화를 보니 균형이 있더라.


▶내부적으로도 이런저런 논의를 많이 했다. 죽은 사람은 셋인데 박무택만 구하러 가는 것처럼 되면 나머지는 뭐냐고. 아무리 엄홍길과 박무택이 친형제 같아도 너무하지 않냐고. 사실도 그렇지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그리 보일 여지가 많다. 그래서 박정복에 대해 이야기하는 강연신도 만들어 넣고 더 위대한 인물로 보이게 하려고 애썼다. 중간중간에도 계속 다른 인물들을 상기시킨다. 이들이 박무택만을 찾으러 산에 오른 게 아니라는 걸 알려주려 했다.


'히말라야' 이석훈 감독 / 사진=홍봉진 기자
'히말라야' 이석훈 감독 / 사진=홍봉진 기자


-팀원들의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균형감이 있고, 전형적이면서도 감동적이다.


▶실제 원정대는 방송팀도 있는 더 대규모였는데 영화적으로는 소수가 큰 희생을 치러냈다는 걸 강조하려고 사연들을 만들었다. 저는 '당연히 갑시다'하고 모이는 게 아니라 다들 뭔가를 버리고 포기하고 가는 걸 소개하는 게 좋았다. 지루할 수 있지만 정공법으로 가는 게 맞지 않냐 생각하고 한 사람 한 사람애게 장면을 할애했다. 라미란씨가 맡은 여성 대원이 '왜 정상 갈 때는 다른 애들만 데려가고 내게 궂은 일만 부탁하느냐'고 섭섭한 마음을 터뜨리는 신도 일부러 넣었다. 그 사람들이 들러리가 아니라 멤버로 역할을 하게 하고 싶었다. 모든 멤버가 단골집에 모이는 장면이 전형적인 신 아닌가 할 수 있다. 저는 텐트에서 노래하는 신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데 몰입해서 보신다면 손발이 오그라들지 않으실 거다. 배우들이 연기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미묘하게 느낌이 다르니까. 전형적인 부분은 있지만 부담은 아니다.


-연말 극장가에서 100억 넘는 예산이 든 대작 '대호'와 함께 붙는다. 자연을 마주하는 인간의 모습 등이 뜻밖에 비슷한 점들이 꽤 있다.


▶사실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했다. 호랑이와 사람 이야기라 생각하다가 예고편을 보면서 지리산이 상당히 중요한가보다 했다. 저는 못 봤지만 그런 느낌을 받았다는 분들이 있더라. 경쟁이 부담이기도 하고, 운이 좋다는 생각도 든다. 어떤 감독이든 본인의 영화가 많은 관객을 만날 수 있는 상황이 되길 바란다. 나는 두 작품이 여름과 겨울에 개봉하니 운이 좋은 셈이다. 다만 예산이 크다보니 상당한 스코어도 실패로 보일 수 있다. 민폐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큰 영화가 실패하면 투자를 기대하던 다른 영화에 악영향이 갈 수 있지 않나. 투자 기다리는 신인감독이라면 큰 영화가 망해서 영화계가 경색되면 내가 원망스럽지 않겠나. 그런 감독이 안 되려고 발버둥치는 것이다.


-'히말라야'를 통해 분명히 전하고픈 메시지가 있다면.


▶사람이 중요하다는 거다. 돌아가신 분일지라도 말이다. 사람이 거기 있으니까 가는 거다. 그 사람을 구조하고 데려오는 데 얼마가 드냐, 위험하냐. 머리 속으로 따지는 건 우리가 이런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리저리 따지고 돈을 셈하는 걸 너무 당연하게 하고 있으면 안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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