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
Starnews Logo

'조선마술사' 어리고 찬란하고 낡은 조선판 로미오와 줄리엣

'조선마술사' 어리고 찬란하고 낡은 조선판 로미오와 줄리엣

발행 :

전형화 기자

[리뷰] 조선마술사

사진


어리다는 건 어리석다의 다른 말이다. 어려서 어리석고, 어려서 오만하고, 어려서 주제도 모르며, 어려서 찬란하며, 어려서 가능성이 무한하다.


김대승 감독의 새 영화 '조선마술사'는 어린, 어려서 어리석은, 어려서 찬란한 남녀의 사랑 이야기다.


평안도 의주 최대 유곽인 물랑루. 조선 뿐 아니라 청나라 사람들까지 즐겨 찾는 이곳의 보배는 젊고 잘생긴 마술사 환희(유승호)다. 그의 손짓에, 눈빛에, 마술에, 사내들은 돈을 던지고, 기생들은 옷고름을 푼다.


매일 밤 박수갈채가 쏟아지지만 정작 환희는 방황한다. 기생의 품에 안겨 술을 찾고 약에 빠진다. 어릴 적 청나라 마술사 귀몰(곽도원)에게 학대받은 기억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양쪽 눈 색깔이 다르다는 점도 괴롭다. 마술을, 기적인양 받아들이는 가련한 사람들도 괴롭다. 환희는 그저 이곳을 떠나,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는 곳에서 자유롭게 살고 싶어한다.


눈 먼 기생이자 누이인 보음(조윤희)은 그런 환희가 애달프다. 어릴 적 귀몰에게서 같이 도망쳐 몸을 팔고 웃음을 팔아 겨우 정착했건만, 환희를 위해 자신을 죽이고 살았건만, 어리석음에 몸을 내던지는 그가, 그런 그를 바라보지만 속내는 감춰야 하는 자신이, 애달프다.


하루하루를 그저 살아가는 환희에게 어느 날, 희망이 당도한다. 오빠들의 출세를 위해, 거짓 공주가 되어 청나라 왕자에게 시집가야 하는 소녀가 눈 앞에 나타난 것. 낭떠러지에 몸을 던지려는 그녀가, 어째 자신과 닮은 듯해, 내버려둘 수가 없다. 자꾸 눈에 밟혔다.


소녀는 오빠들을 위해, 가문을 위해, 자신을 죽여가며 가짜 공주가 됐다. 여기저기서 흉보는 소리가 귀에 들린다. 숨이라도 돌리고자 저잣거리에 나섰다가 우연희 환희를 만난 소녀는, 삶에 희망을 얻는다. 소녀는 환희의 공연에 심장이 뛴다.


그런 소녀가 공주인 줄 모르는 환희도 삶이 새롭다. 술도, 약도 멀리하고, 사람들에게마저 친절하다. 위태위태한 두 사람의 사랑은 그렇게 커간다.


공주의 호위무사 안동휘(이경영)는 공주의 처지가 애달파 두 사람을 말없이 지켜본다. 보음은 자신의 마음은 모른 채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진 환희를 보니 속이 찢어진다. 주위의 걱정 어린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하루하루 사랑을 쌓아가는 두 사람에게, 환희에게 복수를 하려는 귀몰이 찾아온다. 그렇게 사랑의 위기가 시작된다.


'조선마술사'는 이야기와 만듦새가 닮았다. 어리고 미숙하고 찬란하되 낡았다. 뻔한 이야기지만 낡은 이야기는 아니건만, 낡게 만든 건 감독의 탓이다.


'번지점프를 하다' 등에서 짙은 감성을 다루는 데 장점을 발휘했던 김대승 감독은, '조선마술사'를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숱한 장애에도 첫눈에 사랑에 빠져 결혼과 죽음까지 5일밖에 걸리지 않았던 어린 남녀의 미숙하지만 찬란한 사랑. '조선마술사'도 어린 남녀가 첫눈에 사랑에 빠져 모든 것을 버리고 목숨을 걸게 되기까지 10여일에 달하는 짧은 시간밖에 걸리지않았다.


김대승 감독은 이 익숙한 이야기를, 다르게 보이기 위해 마술을 선택했다. 눈속임이지만, 믿으면 물 위까지 걷게 만드는 마술. 그는 사랑이란 믿으면 물 위까지 걷게 만드는 것이라 이야기하고 팠던 것 같다.


하지만 고루한 전개와 예고된 위기, 극적이지 않은 죽음, '번지점프를 하다'를 빼닮은 결말까지, 그는 과거의 정서를 가져오되 과거 작법에 매몰 된 것만 같다. 감성을 쌓는 방식이 오래된 게 아니라 펼쳐놓기만 한 게 낡았다. 쌓이지 않는 감정, 고조되지 않는 갈등, 자막에, 에필로그까지, 지나치게 친절하다. 비밀이 폭로된 마술사를 보는 것 같다.


전역 후 첫 작품으로 '조선마술사'를 택한 유승호는 아름답다. 잘 자란 그는 분명 아름다워졌다. 그럼에도 미숙하다. 어려서 찬란하지만 어려서 미숙하다. 그가 방황하고 사랑하고 절망하고 분노하며 쌓았다고 주장하는 감정은, 잘하는 학예회를 보는 것 같다. 어리고 찬란하고 미숙하다. 아직 유승호만으로 두 시간을 버티긴 힘들다.


고아라는 tvN '응답하라 1994'에서 반의 반 걸음 정도 나갔다. 여전히 예쁘고 활기차지만, 여전히 예쁘고 활기차기만 하다. 어린 배우를, 어린 자리에만 놓여있게 한 것도, 결국 감독의 몫이다. 악역을 맡은 곽도원, 충신을 맡은 이경영, 남의 옷을 입은 것 같다.


'조선마술사'는 잘 자란 유승호를 보고 싶은 팬들에겐, 종합선물세트다. 시계 한 번 보지 않고, 122분을 견딘다면 진정한 팬이다.


12월30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주요 기사

    연예-영화의 인기 급상승 뉴스

    연예-영화의 최신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