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마리의 종달새를 가둘 수는 있지만 그 노래까지 멈추게 할 수는 없다."
영화 '헝거'(Hugner)는 이 짧은 싯귀를 남긴 아일랜드의 젊은 독립운동가 보비 샌즈를 주인공으로 삼은 영화다. 북아일랜드의 독립을 주장하는 IRA(아일랜드 공화국군, Irish Republican Army)의 일원이었던 그는 1977년 테러리스트 혐의로 14년형을 언도받고 북아일랜드 수도 벨파스트의 메이즈교도소에 수감됐다. IRA 수감자들은 정치범 지위를 요구하며 죄수복을 거부하는 '담요투쟁', 샤워를 거부하며 불결함으로 맞서는 '샤워투쟁' 등을 했지만 '철의 여인' 대처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살인범이 있을 뿐 정치적 살인범은 없다'며 대화도 거부했다. 27세의 보비 샌즈는 1981년 3월 1일 목숨을 건 단식 투쟁(Hunger Strike)에 나섰다. 그리고 66일째가 되던 날 그는 앙상한 몸으로 결국 숨을 거뒀다. 그 이후에도 9명이 더 죽었다. 음부까지 뒤진 간수들의 철저한 통제 속에 외부와 단절됐던 수감자들은 돌돌 만 화장지에 깨알같은 글을 남겨 밖으로 보내곤 했다. 노래를 멈출 수 없다는 보비 샌즈의 글귀 또한 그렇게 남겨졌다. 그러나 대처는 끝내 IRA 수감자의 정치적 지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헝거'의 시작은 보비 샌즈가 아니라, 그와 함께 감방에서 모진 탄압을 견뎠던 다른 젊은 IRA 조직원들이다. 그들은 오물로 뒤덮인 감방에서 간수들의 폭행에 시달리면서도 꿋꿋이 맞선다. 그들의 리더 격인 보비 샌즈(마이클 배스벤더)는 마지막 수단을 결심한다. 죽기를 각오한 단식 투쟁이다.

'헝거'의 시선은 독특하다. 말이 사라진 감옥 안 풍경처럼 카메라는 그저 담담히 사람들을 비춘다. 감옥에서도 맨몸 투쟁을 계속하는 젊은이들이 있지만, 그 곁엔 생명의 위협 속에 살면서 상처난 주먹에 괴로워하는 간수도 있고, 진압봉을 들고 죄수들을 두들겨 패다 끝내 흐느끼는 또 다른 젊은이도 있으며, 총과 폭탄을 들고 나선 이도 있다. 스티브 맥퀸 감독은 심지어 보비 샌즈를 그저 긍정하거나 영웅으로 묘사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의 결심을, 바짝바짝 말라가는 몸을, 사그러들어가는 생명을 그저 비출 뿐이다.
전라 노출을 마다하지 않으면서 무려 14kg을 감량하고 아사 직전의 보비 샌즈를 그려낸 마이클 패스벤더의 투혼은 기가 막힌다. 당시의 마이클 패스벤더가 '300'에 출연한 근육질 스파르타 병사 중 하나로 소개되던 신인급이었고, '헝거'가 그의 첫 주연작임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영화의 압권은 그가 단식투쟁에 돌입하기 직전 도미니크 신부(리암 커닝햄)와 나누는 대화를 담은 롱테이크다. 무려 24분간 이어지는 둘의 대화에서 카메라는 16분간 꿈쩍도 하지 않고 가만히 둘을 응시한다. 그리고 갑작스런 언어의 홍수가 몰아친다. 옳다고 믿는 신념을 위해 목숨을 걸 수 있다는 보비 샌즈, 그건 자살이라며 한 치의 물러섬 없이 맞서는 도미니크 신부, 다시 '내겐 타살과 다름없다'고 외치는 보비 샌즈… 이런 논쟁에 정답이 있을 리 없다. 팽팽하게 이어지는 대화는 보는 내내 숨소리 한번 크게 내기 힘든 긴장이 흐른다. '팝 매터스'는 "40년이 넘는 아일랜드 투쟁의 역사를 16분에 응축했다"는 평을 남기기도 했다.
영화감독 이전부터 비주얼 아티스트로 명성이 높았던 스티브 맥퀸 감독은 데뷔작인 '헝거'로 2008년 칸 국제영화제 주목할만한시선 상을 수상하며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무려 8년이 지나 한국에 개봉하지만 이상하리만치 지난 세월이 느껴지지 않는다. '신념을 위한 투쟁'이란 묵직한 주제 자체가 시대며 장소와 무관한 탓일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아일랜드에서나 한국에서나 제 몸을 마지막 보루로 삼은 저항은 몸뚱이 하나 말곤 가진 게 없는 약자의 마지막 몸부림인 탓이다. 물론 '헝거'가 오늘의 영화로 느껴지는 데는 그때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는 마이클 패스벤더의 노안도 한 몫을 한다.
3월 17일 개봉. 러닝타임 96분. 청소년관람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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