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 여름 극장가에는 한국영화 빅4가 관객을 맞을 채비를 하고 있다. '부산행' '인천상륙작전' '덕혜옹주' '터널', 100억 원대 제작비가 투입된 다른 색의 한국형 블록버스터 4편이 어떤 모습으로 관객과 만날지, 스타뉴스가 먼저 짚었다. 두 번째 주자는 '인천상륙작전'이다.
'인천상륙작전'은 오롯이 정태원 태원엔터테인먼트 대표의 손에서 출발했다. 이재한 감독과 한국전쟁 당시 학도병의 활약을 다룬 '포화 속으로'를 만든 그는, 한국전쟁 이야기를 더 영화로 만들어야 한다는 어떤 사명감을 갖고 있었다.
그는 "전쟁의 참화 속에서 아버지와 그 아버지들이 어떻게 싸우고 이 땅을 지켰는지 요즘 세대에게 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정 대표가 한국전쟁에서 굳이 인천상륙작전을 영화화하겠다고 결정한 건, 승리의 서사였기 때문이다. 휴전으로 남북이 고착된 한국전쟁에서 인천상륙작전이 가장 빛나는 승리의 순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가 '인천상륙작전' 후속으로 '서울수복'을 영화화할 생각을 갖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다. 인천상륙작전은, 결행이 어려웠지, 작전 자체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7만 여명이 넘는 미군이 상륙한 반면 맞서는 북한군은 10분의 1 규모도 되지 않았다. 2차 세계 대전 명운을 바꾼 노르망디 상륙작전처럼 큰 전투가 벌어지진 않았다. 스펙터클이 적기에 영화화하기 적합한 소재가 아니란 뜻이다.
정태원 대표와 제작진은, 인천상륙작전의 숨은 영웅들의 이야기를 찾았다. 좁은 수로를 밝히려 적군이 장악한 팔미도 등대를 탈환한 켈로부대, 그리고 정확한 정보를 전하기 위해 적진에 잠입한 해군첩보부대의 '엑스레이' 작전에 주목했다.
결국 제작진은 엑스레이 작전에 초점을 맞췄다. 켈로부대 전투는 단일 전투라 인천상륙작전의 시작부터 엮기가 어려웠던 탓이다. 인천상륙작전의 결행이 영화의 엔딩이라면, 그 엔딩을 위해 처음부터 작전을 펼치는 엑스레이가 더 적격이라고 판단했다.
그렇게 영화 '인천상륙작전'은 사방의 반대를 무릎 쓰고 인천상륙작전을 결행한 맥아더 장군, 인천상륙작전을 예상하고 준비했던 북한군 인천방어사령관 림계진, 그리고 엑스레이 작전을 이끈 장학수 대위의 이야기로 틀이 완성됐다.
영화는 맥아더 장군으로부터 시작된다. 당시 인천상륙작전은 반대가 심했다. 인천은 조수간만의 차가 커서 상륙작전에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이 많았다. 전차가 개펄에 빠질 우려가 컸고, 수로도 좁았다. 성공확률이 5000분의 1 밖에 되지 않았다. 맥아더가 인천상륙작전에 집착하는 건, 이 작전에 성공해 미국 대통령에 출마하려는 것이란 비아냥도 많았다.
그런 반대를 무릎 쓰고 작전을 결행하기 위해선 보다 정확한 현지 정보가 필요했다. 그 때문에 엑스레이 작전이 시작됐다. 북한에선 고위층은 인천상륙작전의 가능성을 애써 무시했다. 비슷한 이유였다. 림계진 홀로 인천으로 적이 온다고 주장했다.
결국 영화 '인천상륙작전'은 인천상륙작전을 반대하는, 또는 믿지 않는 사람들 속에서 고독하게 싸운 두 사람과 그 작전을 성공시키려 현지에 잠입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런 탓에 맥아더 장군을 맡은 배우가 가장 중요했다. 정태원 대표가 '인천상륙작전'을 준비하면서 맥아더 장군 역에 리암 니슨을 출연시키려 한다고 했을 때, 믿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4대 메이저 투자배급사도 모두 '인천상륙작전'에 손을 내저었다.
그래도 밀어 붙였다. 불도저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강한 추진력을 갖고 있는 정 대표이기에 가능했다. 그는 리암 니슨이 출연한 영화와 '포화 속으로' '태극기 휘날리며' 등 한국전쟁을 다룬 영화들을 편집해 리암 니슨 에이전시에 보냈다. 시나리오와 함께 보낸 뒤 설득작업을 계속 했다. 결국 하기로 했다. 한 차례 위기도 있었다. 에이전시가 다른 더 큰 할리우드 프로젝트에 욕심을 내면서 어그러질 뻔하기도 했다. 정 대표는 에이전시를 찾아가 "안 된다는 소리를 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될 수 있느냐를 이야기해달라"고 요구했다. 미국에서 촬영하겠다고 하면 오케이, 촬영 날짜를 조정하고 싶다면 그것도 오케이, 출연료도 올려달라고 하면 오케이, 를 내걸었다. 결국 에이전시에서 마음을 돌렸다.
오히려 리암 니슨은 한국영화이니 한국에서 찍는 게 당연하다며 출연료 등도 영화 규모에 맞춰줬다.

리암 니슨이 캐스팅되니 나머지는 일사천리였다. 사실 가장 캐스팅에 어려움을 겪었던 건 이정재였다. 그를 캐스팅하기 위해 갖가지 아이디어가 덧붙여졌다. 정 대표는 "좋은 아이디어와 참고할 게 많았다. 보다 이야기가 풍성해졌다"고 말했다.
'인천상륙작전'은 투자, 배급이 확정된 뒤 진행되기 마련인 여느 영화와는 진행 방식이 달랐다. 메인 투자자가 없었다. 4대 투자배급사가 거절한 탓이었다. 130억원 규모로 제작비를 예상했지만 들어온 돈은 없었다.
그런 차에 마침 이범수 소속사 모회사인 셀트리온에서 5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제안했다. 그 돈을 종잣돈으로 이곳저곳 찾아다녔다. 정 대표는 KBS를 찾아가 "이런 영화에 국영방송에서 투자해야 하지 않겠냐"고 설득했다. 결국 KBS는 KBS미디어와 함께 3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마침 리암 니슨 캐스팅 소식이 전해지자 투자하겠다는 곳이 속속 생겼다. '연평해전'에 투자했던 IBK기업은행도 참여했다. 당초 배급만 하기로 했던 CJ E&M도 30억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투자하겠다는 곳이 몰리자 셀트리온은 최종적으로 30억원을 투자하는 것으로 정리됐다.
촬영도 전쟁처럼 진행됐다. 2015년 12월 4일 촬영에 돌입했는데, 2016년 7월 말 개봉을 목표로 했기 때문이다. 전쟁 장면이 담긴 블록버스터를 CG 작업까지 해야 하는데, 물리적으로 7월 개봉은 불가능했다.
정태원 대표의 불도저식 작업 방식이 이번에도 빛을 발했다. 그는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할리우드 제작사 대표라 불린다. 감독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중간에 교체하고, 직접 진두지휘를 하곤 한다. 편집도 직접 하며, CG 작업도 그의 결제를 받는다. 최근 공개된 '인천상륙작전' 예고편도 그가 직접 편집했다.
정 대표는 빠듯한 촬영 일정을 고려해 '인천상륙작전' 촬영을 두 파트로 진행했다. 감정 장면 등은 이재한 감독에게 맡기고, 다른 장면은 다른 촬영팀이 진행하게 했다. 늘 러닝타임을 체크했다. 러닝타임이 오버될 것 같자, 촬영 중간에 시나리오 작가와 후반부 시나리오를 수정했다. CG장면은 영국회사와 자신이 운영하는 회사에 맡겨 속도를 높였다. 통상 CG 작업은 편집상 오케이컷에 하기 마련이다. 편집에 따라 CG가 달라지니, 오케이가 된 화면에 작업을 해야 한다. 정 대표가 현장과 CG업체를 총괄했으니, 작업 속도가 빨라질 수 밖에 없었다. 촬영과 시나리오 수정 작업, CG 작업이 동시에 진행됐으니 전쟁 같은 촬영장이라고 밖에 할 수 없었다.

3월10일 모든 촬영이 끝났다. 예상보다 일주일 가량 더 촬영이 진행됐다. 당연히 촬영비용이 늘어났다. 보통 촬영비용이 늘어나면, 메인 투자사가 비용을 충당하고, 제작사 지분을 더 가져오는 방식을 쓴다. 정태원 대표는 그 대신 국가보훈처를 찾아갔다. 7월 말 국가보훈 행사에 시너지를 낼 수 있다며, 이런 영화에 도움을 줘야 하지 않겠냐고 설득했다. 투자를 받았다.
결국 '인천상륙작전'은 한국에선 7월27일, 미국에선 8월12일 개봉한다. 유럽에도 팔렸다. 리암 니슨이 출연한 영화라는 점이 주효했다.
'인천상륙작전'은 국가주의 영화 혹은 우파 영화라는 지적을 받을 우려도 있다. 그가 제작한 '포화 속으로'도 포항이 배경이라 개봉 당시 MB영화가 아니냐는 비난을 받았다.
정 대표는 "그렇지 않다. '인천상륙작전'에 좌와 우가 있을 수 없다. 난 상업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다. 한국인이 긍지를 가질 수 있는 재미와 의미를 갖춘 영화를 기대해달라"고 말했다.
과연 그의 바람대로 '인천상륙작전'이 올 여름 극장가에 성공적으로 상륙할 수 있을지,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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