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흔히 '신스틸러'(Scene Stealer)라고 한다. 영화에 등장해 비중과 상관없이 관객의 시선을 훔쳐가는 이들을. 어느덧 감초 조연의 동의어가 되어버린 이 말에 잠시 회의를 품었다. '신스틸러'라 불린 배우들 대다수가 "신 하나를 훔치려고 연기하는 게 아니다"고 입을 모은 탓도 컸다. 스타뉴스는 나올 때마다 어느덧 관객의 눈길과 마음을 훔쳐 가버리는 한국영화의 얼굴을 다른 이름으로 조명하려고 한다. 이름하여 심(心)스틸러. 그 한국영화 대체불가의 배우들을 만난다. 첫 주자는 사랑스러운 상남자, 배우 마동석이다.
◆배우 마동석. 본명 이동석. Don Lee
◆1971년 3월 1일생
◆별명 마요미 마쁜이 마블리
◆데뷔 영화 '천군'(2004)
보이는 건 늘 전부가 아니다. 이건 배우 마동석(45)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다. 그를 마주하면 탄탄한 근육질 몸매와 거친 마스크가 먼저 보인다. 이전보다는 근육량이 많이 줄었다지만 자신의 활동기를 110kg 시절, 100kg 시절, 90kg 시절로 구분한다는 다부진 몸 덕에 그는 시작부터 마초 냄새 물씬 나는 상남자 역할을 주로 맡았다. 형사 아니면 깡패, 아니면 군인, 아니면 이도저도 없는 나쁜 놈 역할이 주로 주어졌다.
하지만 사람들은 곧 발견했다. 거친 상남자의 근육 뒤에 감취 진 수줍은 미소를. 우락부락하지만 어딘지 귀엽고 왠지 정이 가는 마동석의 캐릭터들은 그를 '마요미', '마블리', '마쁜이'로 바꿔놨다. 여전히 힘 주면 와이셔츠 단추가 터져나갈 듯한 근육질 몸매를 어쩌지 못하는 모습으로 마주 앉은 마동석은 "마음에 드는, 고마운 별명들"이라며 배시시 웃었다. 그의 시작을 생각하면 실로 드라마틱한 변신이다.

인생 드라마는 쉽게 쓰이지 않는다. 30대가 되어서야 본격적인 연기 활동을 시작한 그는 정말 쉴 새 없이 작품을 찍었다. 프로필 상 발견할 수 있는 출연작이 약 50편. 그러나 마동석은 "실제 출연한 작품은 70편 쯤 될 것"이라고 했다. 단역부터 시작해 조연과 주인공, 특별출연까지 가리지 않은 왕성한 활동 덕분이다. 그는 "다들 다음 작품에선 더 큰 걸 원하기 마련이지만, 난 단역부터 한 사람"이라며 "내게는 더 큰 걸 하는 것보다 계속 연기하는 것 자체가 중요했다"고 겸손하게 말했지만, 애정과 열정이 없다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마동석은 신작 영화 '부산행'이 화제몰이를 하고 있는 와중에도 OCN '나쁜 녀석들'에 출연하면서 생방송이나 다름없는 촬영 스케줄을 소화하며 쉴 틈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동시에 차기작 '신과 함께'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 너무 바빠 읽지 못한 시나리오도 그를 기다리는 중이다.
"어떻게 그렇게 많이 작품을 하냐고요? 일하는 게 좋아서 끊임없이 해요. 예전 운동선수 할 때도 사람들이 그랬어요. 운동을 하고 시합을 하고 트레이닝을 하다가도 보통 쉬는 날이 있잖아요. 저는 그런 날도 책을 찾아본다든지 쉬지 않고 계속 뭔가를 했어요. 따로 힐링하지 않아요. 일로 피로를 풀고 스트레스도 풀고요. 지금도 그래요. 영화 촬영을 하다 보면 쉬는 날도 있는데, 그럴 땐 운동도 하고 대본도 보면서 스트레스를 풀어요. 덜 쉬어야 괜찮은 것 같아요."
10대 시절부터 배우의 꿈을 꾼 마동석이지만 그 출발은 더뎠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1989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떠났다. 새로 시작해야 했다. 10대의 동양인에게 미국에서의 생활은 결코 녹록치 않았다. 그가 보디빌더와 헬스 트레이너로 활동하면서 꽤 입지를 쌓았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이야기다. 전 UFC 챔피언 마크 콜먼의 퍼스털 트레이너로도 활동했다. 그는 출연작 '퍼펙트게임'(2011) 속 역전 한 방의 주인공 박만수의 이야기를 하다 지난 시간을 잠시 털어놨다.

"제 입으로 고생했다는 말 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게 미국 사람들에게는 자존심 같은 운동이에요. '어디 감히 동양인이' 이런 시선이 있죠. 치고 올라가기 쉽지 않은 분야였고 한계도 있었어요. 제가 유명한 트레이너가 돼 체육관에 돈을 많이 벌어다 주는데도 마무리 청소를 7년 했어요. 그런걸 하다 보니까 박만수 같은 날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하지 않았겠어요. 이런저런 고생 끝에 홈런은 아니지만 안타 정도는 쳤던 것 같아요. 유명인이 저를 찾게 되고, 동양인이 운동해서 돈 못 번다는 편견을 깨주는 점도 있었고요."
그 시절 이야기를 싫어하지만, 잠시 열거해봐야겠다. 60kg 대였던 몸무게를 무려 110kg의 근육질로 바꿔놓을 만큼 선수로, 트레이너로 열정적으로 성장하던 시절에도 마동석은 생계를 위해 수많은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2개 3개씩 하기가 일쑤였다. 클럽 보디가드도 했고, 분유도 팔았고, 낚시 바늘 공장에서 찌에 그림도 그렸다. 중식당 일식당을 오가며 설거지도 했고, 벼룩시장에서 의류 도매도 했고, 그냥 막노동도 했다. 고달픈 시절이었다.
"저는 그게 연기에 도움이 됐는 지 잘 모르겠어요. 먹고 살아야 된다고 했던 거예요. 그런 경험이 연기에 자양분이 된거라고 생각하면서 일한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하나는 생겨요. 그렇게 지내 온 시간이 지금의 어려움을 견디게 해줘요. 늘 '난 더한 것도 했었다'고 생각하면 어떤 인내심이 생겨요."
하지만 배우의 꿈은 늘 지니고 있었다. 미국을 터전 삼아 살던 그는 2002년 현지에서 영화 '천군'(2005) 오디션을 봤고, 캐스팅되자 아예 미국에서 생활을 접고 한국에 돌아왔다. 촬영이 차일피일 끝내 2년이 미뤄지는 동안 2편의 영화를 찍었지만 개봉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계속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했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인 작품들이 지금의 마동석을 만든 셈이다.

2007년 드라마 '히트'의 남성식 형사는 대중들에게 배우 마동석을 각인시킨 캐릭터다. 첫인상은 조폭이지만, 알고 보면 의리파에 귀엽기까지 한 강력반 형사는 이후 마동석을 대표하는 이미지 중 하나가 됐다. 험상궂은 외모의 액션 히어로인 동시에 수줍은 귀염둥이 '마요미'일 수 있는 배우가 어쩌면 그때 탄생했는지 모른다. '귀요미'란 말 자체가 없었던 당시엔 별명이 '미키 성식'이었다. 당시 유철용 PD와 고심하며 골랐던 티셔츠 캐릭터가 미키마우스였던 탓이다. 마동석은 "신의 한 수"였다며 웃음지었다.
'미키성식'에서 드러나는 캐릭터에 대한 인간적인 접근, 반전의 매력은 마동석이 그려온 인물들에서 발견할 수 있는 요소들이다. 짬이 날 때면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 제작에도 나설 만큼 스토리와 캐릭터를 만드는 데 흥미를 느끼는 마동석은 리얼한 캐릭터, 입체적인 인물을 만드는 데 공을 쏟는다. 허무맹랑한 캐릭터가 마동석을 만나 진짜같은 기운을 풍기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연쇄 살인범을 무지막지하게 두드려 패는 '이웃사람'(2012)의 수상한 남자 안혁모나, 개봉도 전부터 마동석이 좀비를 맨손으로 때려잡는다며 화제를 모은 '부산행'(2016)의 예비아빠 상화를 보라. 아, 드라마 '나쁜 녀석들'(2014)의 나쁜 놈 잡는 나쁜 놈 박웅철도 있다.

"'이웃사람'의 안혁모 경우는 특히 통쾌한 쾌감이 있죠. 박웅철도 그렇고 사실 엇비슷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는 상관이 없었어요. 그렇게 쾌감을 드릴 수 있다면요. 배우가 여러 스펙트럼을 가지고 다양하게 변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사람의 브랜드를 좋아하는 관객을 충분히 충족시킬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족하다고 생각해요. 로버트 드 니로 같은 사람은 정말 다른 모습으로 여러 가지 연기를 펼치잖아요. 하지만 성룡은 늘 성룡의 연기를 보여주죠. 저는 그 양쪽을 모두 왔다갔다 하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조짐이 남다른 '부산행'에서도 통쾌하고 후련한, 그러면서도 내 여자에게만은 사랑스러운, 그러면서도 눈물을 쏙 빼는 배우 마동석의 진가를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지난 5월 칸 국제영화제는 드라마 '38사기동대'를 찍느라 다녀오지 못했지만, 당시 마동석이 좀비들을 때려눕힐 때마다 칸의 관객들이 얼마나 환호하던지 함께 보던 한국 기자단들마저 신이 났을 정도다. 극장에서 소리를 지르는 게 한국 극장 문화는 아니지만, 한국의 관객들 또한 그 시원시원한 쾌감을 분명 느끼리라. "칸에 못 가서 아쉽지만, 영화가 호평 받아 더 기쁘다"고 했던 마동석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한국 관객의 평가를 기다렸다.

"그냥 오락적인 상업영화라고 생각하고 편안하게 봐주시면 좋겠어요. 여름에 보러 가는 재미있는 영화요. 윌 스미스가 나온 영화 '나쁜 녀석들'을 보러 갈 때처럼 그냥 즐겁게 가볍게 보러 가셔서 재미있게 즐기시면 어떨까 해요.
"시간이 지나서 마동석이란 배우를 설명할 때, 뭐라고 하면 가장 행복할 것 같은가요." 짧은 물음에 마동석은 꽤 곰곰이 시간을 들여 생각했다. 그리고 "잘 견뎌낸 배우"라고 말했다. "여긴 제 필드가 아니었다. 전 운동하는 사람이었다"는 마동석은 "새로운 세계에 와 그것도 연기라는 걸 하는 게 힘들지만 그걸 잘 견디고 오래 가는 배우였으면, 그런 배우란 이야기를 들었으면 좋겠어요"라고 설명을 이어갔다.
"제가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 '네가 배우로 잘 되면 내 손에 장 지진다'는 사람이 많았어요. 깡패3 정도 하다가 그냥저냥 끝날 거란 이야기도 많이 들었죠. 그것 때문에 기분이 나빴다기보다는, 뭐랄까요. 오기가 생겼다, 이것도 아니고요. 그냥 이렇게 생각했어요. 그 말도 일리가 있지만 내가 생각하는 방향은 다르다고요. 그런 부분마저 계속 가져가면서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고,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노력하면 기회가 생길 거라고요. 그게 전부는 아니라고요."

마동석은 실베스터 스탤론의 영화 '로키'를 좋아한다. 몸뚱이 하나 말곤 가진 것 없는 운동선수 록키는 비록 험한 일을 하고 남을 때리는 운동으로 생계를 유지하지만 순하고 착한 사람이다. 그리고 모두가 승산이 없다고 생각했던 챔피언과의 싸움에서 자신만의 존재를, 그 가치를 입증해 보인다.
"그 영화를 보며 '사람이 저 정도 뚝심은 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어렸을 적부터 했던 것 같아요. 그걸 스스로도 지키려 하는 편이고요. 제가 뭘 갖고 태어난 것도 많이 없고, 잘난 것도 없다고 스스로 그렇게 생각해요. 그런 사람이 잘 버텨내려면 그만큼 노력을 해야 하고 발전하도록 고민도 해야 한다고도 생각하고요. 제가 보여줄 수 있는 것 중에 관객들이 보고 싶어하는 게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그걸 해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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