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우석 감독은 조금은 답답한 듯 했다. 스무 번째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를 내놓은 그는, 영화 속 유머에 대해 일반 관객과 평론하는 사람들 간의 괴리를 아쉬워했다. 회자되는 삼시세끼와 내비게이션 유머가 일반 관객들에겐 반응이 좋은 반면 평하는 사람들에겐 차가운 반응을 얻은 데 대해 열변을 토했다.
그는 "코미디는 학습효과"라면서 "코미디 장르 영화가 실종되다시피 하다 보니 (영화 많이 보는 사람들이)웃음에 어색해 한다"고 토로했다.
그럴 만도 한 게, 강우석 감독은 '고산자'를 준비하면서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내용에 곳곳에 유머를 심었다. 차승원과 김인권 콤비 뿐 아니다. 엄숙하기만 할 법한 흥선대원군 역의 유준상과 그의 심복 신원 역의 공형진도, 웃음에 참여한다. 드라마에 같이 쌓아 놓은 코미디가, 선입견에 차단되는 게 안타까운 듯 했다.
영화를 떠나 보내려다 '고산자'로 다시 붙든, 그리하여 고산자처럼 전국 산하를 헤맸던 그의 심정을 들었다.
-'전설의 주먹'을 끝낸 뒤 영화를 그만 둘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휴지기를 가졌다. 그랬다가 다시 '고산자'로 돌아온 이유는.
▶'이끼' 끝내고 난 뒤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영화 작업 자체가 너무 고달프고, 별스럽지도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흥행이 부담은 되지만 잘 된다고 마냥 기쁘지도 않고, 안 되면 회사가 어렵다는 것 외에 큰 감흥이 없어졌다. 편수만 늘지, 영화를 사랑한다거나 즐거운 마음은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았다. 영화를 그만 두라는 신호인가란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서 마음을 정리하려 가족을 두고 캐나다로 훌쩍 떠났다. 할 일이 없으니 그간 못 봤던 책이나 읽자란 생각으로 잔뜩 들고 갔다. 그 중에 하나가 박범신 작가의 '고산자'였다. 누가 영화로 한 번 해보라고 건네준 것이었다. '그리스인 조르바' 같은 무거운 책들만 읽다가 한국책 읽어보자란 생각으로 '고산자'를 펼쳤다. 처음에는 이걸 어떻게 영화로 두 시간 안에 녹이나,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하루에 한 번씩 꼭 '고산자'가 생각나더라. 다시 읽었다. 이야기 속 행간이 너무 근사했다.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면 새롭지 않을까란 생각이 훅 올라오더라. 박범신 작가에게 연락했더니 7년 만에 영화 만들자고 처음 연락해 온 감독이 당신이라고 하더라.
-최남단 마라도부터 백두산 천지까지 대한민국 곳곳의 사계절 풍광을 담았는데.
▶박범신 작가가 책은 글이니 글로 담을 수 없는 한국의 풍광을 영화로 담을 수 없겠냐고 하더라. 고마웠다. 원래 내가 풍광 찍는 그런 감독은 아닌데 이건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김정호 선생에 대해 숱하게 공부를 했다. 그러면서 이 분이 단순히 기존에 있는 지도를 연결한 게 아니라 답사를 안 가봤을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 각각의 지도들에 있는 산맥과 줄기 등이 다르기에 정확하게 연결을 하려면 실제 가보지 않으면 불가능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백두산 천지를 안 가보고선 그 줄기를 그렇게 정확하게 그릴 수 없을 것이다. 백두산을 몇 번 올랐네, 하는 건 식민사관이라고 쳐도, 북한에선 김정일이 김정호 선생이 두 번 백두산을 올랐다고도 했다던데, 그런 걸 다 차치하더라도 그 그림이 필요했다.
그래서 백두산 천지를 찍자고 결심했다. 이걸 안 찍으면 '대동여지도'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우여곡절 끝에 갔다. 너무 아름다웠다. 이래서 임권택 감독님이 풍광을 찍는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천지를 찍고 난 뒤, 미술팀을 소집해서 그 영상을 보여줬다. 미술이 백두산 천지에 지면 이 영화는 끝이라고 이야기했다. 백두산 천지가 전체 그림 중 일부로 느껴지도록 다른 장면들도 최선을 다하라고 했다. 2~3억원 들어서 세트 지어서 찍고 다 부셨다.
-소설 제목은 '고산자'인데 영화 제목은 '고산자: 대동여지도'다.
▶박범신 작가에게 제목을 그렇게 지어도 되겠냐고 했더니 '괜찮은 데 감당할 수 있겠냐'고 하더라. 대동여지도를 제목으로 짓는 순간 엄청난 무게를 느꼈다.
-아름다운 풍광을 일부러 영화 앞에 몰았다. 그렇게 해서 마지막 독도 장면과 대비시켰고. 풍광과 드라마를 연결시키지 않은 이유는.
▶나라고 그 고민을 왜 안 했겠나. 하지만 무슨 수로 드라마가 그 아름다운 풍광을 이기겠냐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 눈에는 백두산보다 독도가 더 아름답다.
-김정호가 얼어붙은 강 위를 걷는 장면을 찍기 위해, 북한강에 미리 헌팅을 갔다온 다음 나룻배를 정박해놓고 강이 얼기까지 3개월을 기다렸다던데. 그렇게 해봤자 영화 속에서 1분도 나오지 않는 장면 아닌가.
▶CG란 소리를 듣기 싫었다. 김정호 선생이 얼어붙은 강을 만났으면 실제로 그 위를 걷지 않았겠나. 강 위를 걷자면 배 하나는 있어야 그럴 듯 하고. 제목이 '대동여지도'가 아니었으면 다 CG로 했을 것이다. 그 만큼 정성을 들여야 했다.
-캐릭터가 단선적이다. 그래서 쉽다. 입체적인 캐릭터였다면 보다 풍성해질 수 있었을텐데 일부러 쉽게 만든 이유가 있다면.
▶처음부터 이 영화는 쉬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다 같이 볼 수 있는 영화여야 했다. 그래서 전체 관람가 등급인 것이고. 정직한 이야기를 정확하게 가자고 생각했다. 캐릭터를 꼬는 것이야 내 전공이지만 '고산자'는 편하게 가서 모두가 볼 수 있는 사람 이야기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삼시세끼, 내비게이션 류의 코미디가 회자되는데. 과거처럼 상황 코미디가 아니라 대사 코미디를 했는데. 맥을 끊는다는 지적도 있고.
▶난 '고산자'가 '투캅스' '공공의 적'보다 더 진화된 코미디라고 생각한다. 차승원이 '삼시세끼' 어촌편을 찍을 때 그 대사를 썼다. 차승원이라고 왜 우려하지 않았겠나. 하지만 3년 동안 집에 안 들어와 딸 얼굴도 잊은 아비가 뻘쭘하게 하는 말로 적합할 것이라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은 겁 나서 못하지만 이건 강우석이니깐 한다. 영화를 하는 사람들, 평하는 사람들은 일종의 엄숙주의가 있다. 그런 비평이 영화를 왜소하게 만든다. 그런 비평들이 내게 자기검열을 만들고 권태에 빠지게 한 게 아닌가 싶다.
일반 관객들과 '고산자'를 보면 알겠지만 이 코미디들은 폭 넓은 층에서 상당히 뜨겁게 반응한다. 흥선대원군과 신원의 코미디도 그렇고. 이렇게 쌓인 코미디가 나중에 비극을 더 극적이게 만든다.
-독도와 강치, 일본에 대한 이야기는 직설적이다. 직설적인 이야기는 때로는 촌스럽다고 여겨지는데.
▶사실이니깐. 왜 대동여지도에 독도는 나중에 추가 됐을까, 고민했다. 그렇다면 이건 가봤으니깐 넣었을 것이다고 생각했다. 일본인들이 독도 강치를 몰살시킨 것도 맞고. 그렇다고 이런 이야기를 일본인들이 싫어하는 그런 민족주의 시각일까라고 하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해적이고, 자기들은 못 만드는 대동여지도 같은 지도 기술을 배우고 싶어한다는 이야기 잖나.
-흥선대원군이 대동여지도 목판을 불태웠다는 식민 사관을 피하려 했기 때문인지, 영화 속에서 김정호와 대척점인 흥선대원군이 오히려 김정호의 문제를 해결한다. 악역은 당시 세도가였던 안동 김씨들이고. 그러다보니 갈등이 분산되지 않나. 역사적으로 올바른 해석을 위해 영화적인 갈등을 포기한 게 아닌가 싶은데.
▶일단 역사를 생각해보자. 실제 흥선대원군의 측근인 신원이 김정호의 최대 후원자였다. 당연히 대원군도 김정호를 알았을 것이다. 다만 지도를 나라에서 관리해야지, 민간에서 관리하면 안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대원군은 김정호를 이해하는 사람인 동시에 관리하려 했던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대척점에 안동 김씨 세력이 있었을 것이다.
극적으로 갈등을 몰고 가려 했다면, 김정호 대 흥선대원군으로 그리려 했다면 잔혹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 건 젊은 감독들의 몫이다. 그렇게 만들 생각이었다면 풍광을 담을 이유도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펼쳐진 갈등이 더 입체적이라고 생각한다.
-예고편이 공개된 뒤 '고산자'가 식민사관을 담은 영화일 것이란 비난이 많았는데.
▶시작할 때부터 가장 고민했던 게 식민사관이었다. 영화 그렇게 찍으면 망한다고 생각했다. 스태프들 중에서도 식민사관에 대한 우려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는 무조건 답사라고 이야기해줬다. 나도 1995년 대동여지도 목판이 발견되기 전에 이 영화를 만들었다면 식민사관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모르니깐. 식민 사관에 대한 우려는 이 영화를 보면, 납득할 것이다. '고산자'는 어른들이 아이들 손을 잡고 극장에서 보도록 만든 영화다. 왕도 장군도 아닌 평민이 이룬 위대한 업적을, 강요하지 않고 겸손하게 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김정호를 고독한 예술가가 아닌 평범한 사람이자 그러면서도 지독하게 한 길을 걸은 사람으로 그렸는데.
▶고독한 예술가로 그리는 건 난 못 한다. 예컨대 '곡성'은 나홍진이 잘 만들었는데 난 못 찍는다. '서편제'를 내가 못 찍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보고 '아가씨'를 찍으라고 하면 못 한다. 난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한다. 그게 '고산자'다.
-영화 속 김정호 집에 대추나무 한 그루가 세워진 설정을 넣었는데.
▶원래는 김정호와 딸이 같이 심었다는 장면이 있었다. 그런데 이야기가 튀더라. 그래서 딸이 아빠에 대한 서운함을 대추나무에 대신 푸는 것으로 녹였다.
-지도와 딸이 물에 같이 빠지면 뭘 구하겠냐는 중요한 질문이 나온다. 그건 한 평생 걸어온 자기 자신과 가족 중 선택에 대해 묻는 이야기인데. 강우석 본인도 한 평생 영화를 만든 사람으로 같은 질문을 받는다면.
▶애가 셋인데 딸은 무조건 구하고 아들은 좀 고민을 해봐야 겠다.(웃음) 글쎄, 내가 대답을 망설이는 걸 보면 쉽지 않은 질문이다.
-어떤 영화는 음악을 장면과 언발란스하게 넣어서 멋을 찾는데, '고산자'는 웅장할 때 웅장하고 비통할 때 비통하게 들어갔는데.
▶난 음악으로 언발란스하게 만드는 그런 계산 못한다. 그림에 음악이 붙는다면 오케이다.
-차기작은.
▶무조건 코미디다. 요 근래 코미디 영화가 사라졌다. 멜로도 사라졌다. 멜로처럼 코미디영화도 학습이 필요하다. 요즘은 두루뭉술한 영화만 나오고, 맨 칼로 쑤시는 영화만 나온다. 그래서 무조건 코미디영화를 만들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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