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心스틸러] 김의성

배우 김의성이 1987년 극단에서 본격 연기를 시작한 지 어언 30년째. 1995년 영화 '네온 속으로 노을지다'로 스크린에 데뷔한 지도 20여 년이 훌쩍 지났다. 10여 년의 공백에도 어느덧 한국영화계에서 없어선 안 될 배우가 되어버린 김의성과 함께 '각별한' 작품들을 꼽아봤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전에 없던 영화의 탄생
1996년 나온 홍상수 감독의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은 김의성의 첫 주연 영화이자 한국영화의 새로운 시대를 알린 작품이었다. 김기덕 감독의 데뷔작 '악어'가 같은 해 나왔고, 이듬해엔 이창동 감독의 '초록 물고기'와 김성수 감독의 '비트', 박찬욱 감독의 '삼인조'가 나왔다. 김의성은 비루한 3류 소설가로 분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스스로 "그 전까지 한국에 없던 영화"라 애정하는 '돼지가 우물에 바진 날'과 함께 그 역시 새 흐름에 동참할 줄 알았다. 하지만 김의성은 얼마 지나지 않아 훌훌 털고 영화계를 떠났다. 그러나 10여 년 후 돌아온 그에게 힘이 된 작품 또한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었다.
"지금 활발히 일하는 감독 세대가 1996년 대학 1~2학년이었던 분들이에요. 그래서 제가 밥을 벌어 먹고 사는 거거든요. 다시 연기를 시작했을 때 참 막막했어요. 10년이 통째로 비었잖아요. 남자 배우로서 가장 좋은 시기를 날려버린 셈이고, 아무 것 없이 나이 먹은 남자배우가 되어 버렸는데 뭘 할 수 있을까. 누가 나와 연기를 할까. 그 때 발동을 걸어준 게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죠. 그걸 기억하고 저를 환영해 준 감독들이 있어 꾸준히 일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관상'...김의성의 한명회, 그가 돌아왔습니다!
'북촌방향'(2011)으로 컴백한 김의성을 여러 관객들이 진정 알아본 작품이 있었다면 단연 2013년의 추석 흥행작 '관상'이다. 수양대군의 찬탈 음모를 막으려 했던 관상가의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에서 그는 한명회 역을 맡았다. 목소리로만 등장하던 그가 기묘하게 고개를 꺾고 어둠 속에서 얼굴을 드러낸 순간, 김의성 또한 그의 얼굴을 제대로 드러내 보였다.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의 정몽주와 함께 어떻게든 변모할 수 있는 그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던 순간!
"복귀에 3단계가 있었죠. '북촌방향'을 보며 '어 김의성이 있었네' 하다가 '건축학개론'을 보곤 '저 사람이 상업영화도 나올 건가 보다' 했고, 그 다음이 '관상'이었어요. 한재림 감독이 딱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본 세대예요. 재수할 때 보고 충격을 받아 홍상수 감독 연출부에 지원한 적이 있었다더라고요. 주연인 송강호에게 제 사진을 보여주며 '어때요' 하니 '딱이야, 어떻게 그 생각을 했대' 그랬대요. 한명회가 잔인한 가운데 멀쩡한 느낌이 필요했다고 해요. 어쩌면 그때부터 시작된 거죠. 신선한 얼굴인데 요 정도 역할이면 믿고 맡길 수 있겠단 생각을 하셨기에 작은 역할을 여럿 맡을 수 있었죠."

◆'26년'..."왜 아무도 잘 했다고 안 할까요? ㅎㅎ"
잠깐 한 해를 거슬러 올라가자. 김의성은 '관상'보다 한 해 앞서 영화 '남영동 1985'와 '26년'에 거푸 출연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5공 전두환 정부를 직접 겨냥하는 작품들이다. '남영동 1985'에선 민주화 운동가를 괴롭히는 고문전문가를 돕는 강과장 역을, '26년'에선 '그 분' 계신 곳을 관할하는 경찰 최계장 역을 맡았다. 그중 '26년'의 최계장은 그가 "내가 보기에 연기를 잘했다"고 꼽는 캐릭터다.
"'26년'은 다른 분들은 말씀을 잘 안 하시는데 제가 연기를 진짜 잘 했어요. 되게 잘 했는데 아무도 잘했다고 안 해서 서운해요. 저 혼자 진짜 잘한 것 같아요. 그냥 자기 일 하는 사람이잖아요. 이 사람이 주인공들을 도와줄 것 같은데 끝까지 안 도와주잖아요. 마지막엔 한혜진씨 따라 크레인에 올라가서 끝까지 제지하려고도 하고. 힘들었죠. 팔이 짧아서 그랬나 봐요."

◆'소수의견'...애정할 순 없어도 특별했던 홍검사
용산참사를 모티프로 삼은 '소수의견'(2015)에선 검사로 분한 김의성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아들을 잃고 진압 경찰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철거민을 어떻게든 잡아넣으려는 홍재덕 검사 역을 맡았다. 그저 시대에 순응해 흘러가다 보니 나쁜 놈이 되어버린 김의성의 '평범한 악인들'을 대표하는 캐릭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의성은 "제가 만약 고시를 봐야겠다고 생각해 고시를 패스하고, 검사를 할까 말까 하다가 검사를 하고, 공안통 선배가 있어서 그 밑으로 가면 홍재덕처럼 살 수도 있는 것"이라 말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역시 저에게는 '소수의견'의 홍재덕 검사예요. 모든 역할에 애정이 있지만 이 역할은 특별한 것 같아요. 스스로도 더 잘해야 했다는 아쉬움이 있고요. 무엇보다 저와 가까운 역할이에요. 제가 멀리서 찾지 않아도 되는, 제 안에 굉장히 찾기 쉬운 곳에 있는 캐릭터라서요. 애정한다고 할 수 없지만 제게 큰 영향을 준 캐릭터예요."

◆'부산행'...듣도 보도 못한 악역 "그냥 세게 해주세요"
올 여름 1000만 좀비영화 '부산행'의 유일한 악인, 발암 캐릭터 용석 또한 김의성의 몫이었다. 힘겹게 좀비들을 헤치고 살아나온 공유-마동석 일행을 사지로 내몰고, 내 한 몸 살자고 남을 희생시키는 짓도 서슴지 않는 인물이다. 김의성은 용석을 "거울을 보면 보이는 인물로 그리고 싶었다"면서 "그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 최선의 선택이 나만의 위한 것이었다는 게 문제다. 모든 사람이 그런 식으로 최선의 선택을 한다면 사회는 유지될 수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연기할 당시엔 '이거 너무한 것 아니야', '정말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최선을 다해 정당성을 부여하려 했다. 사실 그가 원하는 연기는 아니었단다.
"과장되고 평면적인 연기였다고 생각해요. 이런 면, 저런 면, 머뭇거림도 있을 테지만 연상호 감독이 '그냥 제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사람처럼 해 주세요, 형님 그냥 세계 해 주세요' 하더라고요. 그럴 때 저는 감독 말을 듣는 편이에요. 그대로 했어요. 물론 연상호 감독에 대한 신뢰가 있었고, 그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해요. '부산행'은 캐릭터 하나하나가 얼마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느냐가 중요한 영화가 아니라고 봐요. 굉장히 빠른 속도의 퍼즐이 있고 배우들은 그 속에서 각각의 기능을 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어요. 확실한 감독의 영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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