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 킹'이 500만 관객과 만났다. 제작비 130억원. 기획 단계에서 투자사가 바뀌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럼에도 시국 탓인지, 시국 덕인지, 많은 이야기를 남기면서 흥행에 성공했다.
'더 킹'은 권력을 잡고자 검사가 된 남자의 20여년을 그린 영화. 조인성 정우성의 만남으로 개봉 전에는 화제가 됐지만, 개봉 이후에는 영화를 둘러싼 많은 말들이 쏟아졌다. 박사모의 보이콧 논란에, 정치검사 이야기가 현실과 닮았다는 둥, 외압이 있었다는 둥 여러 이야기가 켜켜이 쌓였다.
한재림 감독과 만나 여러 말들의 진위를 들었다.
-'더 킹'이 손익분기점을 넘어 흥행에 성공했다. 500만명이란 숫자는 흔하지 않은 결실인데.
▶너무 다행이다. 개봉하기 전에는 시국이 영화 흥행에 플러스일지, 마이너스일지 여러 말들이 있었다. 돌이켜 보면 양쪽 다 일 수도 있었겠다 싶다.
-'더 킹'은 같은 날 개봉한 '공조'에 초반에는 앞섰다가 결국 역전 당했는데.
▶솔직한 마음은 그럴 것 같았다. 나도 설 연휴에 TV를 보는데 어느 순간 예능 프로그램으로 채널을 돌리고 있더라. '공조'가 그렇다는 게 아니라 관객이 '더 킹' 같은 정치 이야기, 블랙 코미디보다 더 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래도 익숙하지 않은 블랙코미디, 내레이션에 이렇게 많은 관객이 봐주신 게 감사할 뿐이다.
-'더 킹'은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렸다. 무대인사에선 '갓재림'이라고 외치는 사람들도 있었고, 한편에선 친노판 '디 워'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극호와 극불호가 있는 것 같더라. 엄청 좋아해주는 분들과 엄청 싫어하는 분들이 있더라. '내부자들'처럼 센 영화를 바랬던 분들은 아쉬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론 현실이 영화적 상상력을 압도하니깐 덜 재밌어하는 분들도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나도 지금 시나리오를 쓴다면 훨씬 재밌게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감사한 건, 연출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많이 들은 건 처음이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여러 이야기를 해주셔서 감사하다. 어떤 분들은 연출이 다른 차원으로 넘어간 것 같다고도 하고, 어떤 분들은 너무 힘을 준 게 아니냐고도 한다. 이런 이야기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숙제인 것 같다.
-친노 판타지에 대한 이야기도 많다. 9일 유력 대선주자이자 친노의 한 명인 안희정 충남지사와 관객과 대화를 같이 하기도 하는데.
▶친노 판타지는 일정 부분 사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 스스로를 친노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저 노무현의 삶에 공감하고 기대했고, 또 실망한 부분도 있다. '더 킹' 대사에 "정치로 세상은 못 바꾼다"란 게 있지 않나. 그 말 그대로 이 영화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한 건 아니다.
오히려 '더 킹'이 정치적으로 확실하게 우리편이라고 생각했다면 이 영화를 이용하려 하는 분들도 있지 않았겠나. 안희정 지사 같은 분은 노무현을 사랑했던 사람이니깐 늦게라도 봐주는 것 같다. 만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했다면 상영 끝물에 관객과 대화를 하지는 않지 않겠나. 일종의 팬서비스일 것 같다. 문재인 전 대표 등 노무현을 사랑했던 분들은 한 번 '더 킹'을 보고, 검찰 개혁을 외쳤던 당시를 되돌아봤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더 킹' 현재 상영본이 134분이다. 그런데 영등위에 157분 버전도 심의를 받았다. 많은 사람들이 157분 버전을 감독판이라 생각하고 그 버전 개봉도 바라고 있다. 현실 가능성이 있나.
▶일단 투자배급사인 NEW에 157분 버전 상영을 제안하기는 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추가 비용이 드는 만큼 어떻게 될지는 상황을 봐야 할 것 같다. 편집도 다시 보고, 색보정도 해야 하니깐. 현재 상황으론 157분 버전은 상영은 못할 것 같고, 블루레이나 IPTV로는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한가지 확실히 해야 할 건, 지금 상영본이 감독판이란 점이다. 137분 버전이 감독이 결정한 버전이고, 157분 버전은 궁금증을 갖고 있는 분들에게 소개하는 일종의 팬서비스가 될 것 같다.

-157분 버전에는 어떤 장면들이 추가되나.
▶아무래도 조인성의 아내 역으로 나오는 김아중 분량이 많이 들어간다. 김아중 분량은 너무 아쉽다. 조인성의 파국에도 더 많은 영향을 주고, 주체적인 모습도 더 많이 들어간다. 태수(조인성)와 두일(류준열) 분량도 더 들어간다.
-조인성 정우성 등 정치검사로 등장하는 인물들이 광화문에서 말 달리는 장면도 찍기는 했지만 편집했는데.
▶그건 157분 버전에도 못 들어갈 것 같다. CG가 힘들다. 블루레이라면 서비스 장면으로 담길 수도 있을 것 같다.
-'더 킹'은 많은 화제를 낳긴 했는데 영화 외적으로 현실과 닿아있는 부분은 이야기들이 많이 됐다. 예컨대 박사모가 보이콧을 한다고 했다든지. 그런데 정작 영화 내적인 담론은 적었는데.
▶아쉽긴 하다. 감독 입으로 말하기는 그렇지만 '연애의 목적' '우아한 세계' '관상' 등 전작들과 '더 킹'이 다른 부분이랄지, 영화 연출론으로 더 많은 담론들이 있었으면 어땠을까란 생각도 없진 않다. '더 킹'이 현실과 붙으면서 마이너스가 된 부분이라는 생각도 든다. 박사모의 보이콧 같은 건 별로 담아두려 생각을 안 했다. 영화를 보고 비판한다면 상관없지만 정우성이란 배우가 싫어서 보이콧 한다는 게 글쎄. 그냥 안타깝다. '더 킹'에 대한 여러 반응들은 1,2년이 지나야 비로소 체감할 수 있을 것 같다. 예전에도 내 영화들에 대한 반응을 그 정도 지나야 체감하게 되더라.
-'더 킹'은 마틴 스콜세지의 '울프 오프 더 월스트리트'와 비슷하다는 지적과 한편으로는 왜 마틴 스콜세지 영화처럼 안 만들었냐는 지적이 동시에 나왔는데.
▶마틴 스콜세지 영화와 비슷하다는 지적은 하면서도 다른 점에서는 서운해 하더라. 글쎄, '더 킹'은 마틴 스콜세지 영화처럼 주인공을 거리두기 하지 않는다. 주인공을 따라가면서 그 감정에 동화됐으면 했다. 모니터링 과정에서도 내레이션을 안 쓰고 거리두기를 하고 19금으로 더 세게 찍었으면 좋겠다는 반응들이 있었다. 그랬다면 지금과는 다른 영화가 됐을 것이다. 연출적인 태도와 선택이 지금의 '더 킹'을 만들었다. 난 '내부자들'처럼 권력에 대한 혐오를 세게 보여주는 것보다 희화화하는 게 '더 킹'이라고 생각했다.
-'더 킹'을 둘러싼 숱한 말들이 나왔다. 편집본이 5시간 버전이 있다는 둥, 정치검사 영화라 검찰이 내사를 했다는 둥. 기사화도 됐는데.
▶와전과 해프닝이다. 검찰 내사는 아마도 그 이야기가 와전된 것 같다. 연출부가 어느 선술집에서 술을 먹고 있었다. 마침 그곳에 '더 킹'에 기자로 나온 김민재가 술을 먹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합석이 됐다더라. 그런데 김민재를 알아본 다른 일행이 팬이라며 사진을 찍고 명함을 줬다. 그 명함에 검찰이라고 써있어서 연출부들이 신기한 일이라도 했다더라. 난 그 자리에 있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마치 외압을 당한 것처럼 알려진 모양이다.
'더 킹' 편집본이 5시간 짜리가 있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처음 현장 편집본이 3시간 40분이었다. 그걸 A편집으로 다듬은 게 2시간 40분이었다. 다시 157분 버전과 최종적으로 134분 버전이 완성됐다. 개봉 전에 5시간 버전이 있다고 기사가 나길래 딱히 신경쓰지 않았다. 그런데 말들이 계속 퍼지면서 영화를 본 분들이 실제로 그런지 궁금해하더라.
이런 적은 있다. 아예 태수와 체육선생이 만나는 것부터 시작하는 걸로 편집해 본 적은 있다. 그러면서 과거 시절로 회상하는 버전으로. 그런데 그렇게 됐더니 어린 시절 분량이 10분 가량 줄게 되더라.
-영화가 개봉되고 정치검사들을 김기춘, 우병우를 염두에 둔 게 아니냐는 이야기들이 끊이지 않았는데.
▶일단 시나리오를 쓸 때는 두 사람이 그렇게 세상에 알려지진 않았다. 물론 조사를 하면서 김기춘, 우병우, 두 사람 이름을 접하긴 했다. 하지만 이들의 삶에 관심이 없었다. 그저 누구나처럼 작은 선택이 이런 괴물을 만든다는 것에 관심이 있었을 뿐.
-'더 킹'이 개봉한 뒤 실제 검사들의 반응도 더러 나왔다. 임은정 검사는 장문의 글을 올리기도 했고.
▶몇 분의 이야기를 직접 듣긴 했다. 평범하게 열심히 일하는 검사들의 이야기도 담아줘서 고맙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임은정 검사 글도 봤다.
-'더 킹'에 99% 검사는 열심히 맡은 일만 한다고 넣긴 했는데. 그건 일종의 안전장치가 아닌가.
▶안전장치가 맞기도 하다. 하지만 정치검사와 그렇게 맡은 바 일을 열심히 하는 그냥 검사들을 구분하지 않는 건, 작가적인 태도가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분리를 해야 정치검사 관련된 문제를, 사람들이 인식하고 또 잘 고칠 수 있지 않겠냐는 바람도 있었다.

-'더 킹'은 현대사와 매칭돼 영화 속 정치검사들이 상승과 하강 곡선을 맞는다. 더러는 그런 현대사에 영화가 너무 기댄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는데.
▶그런 지적도 감사하다. 영화를 깊이 읽어준 반응이니깐.
-'더 킹'에는 현대사 뉴스 클립이 많이 들어가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을 시작으로 노태웅, 노무현, 이명박 등 역대 대통령들이 다 등장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 탄핵 당시 웃는 장면 등 그런 뉴스 클립이 영화에 강렬한 인상을 준 게 사실이다. 그 선택과 편집의 묘는 어떻게 살린건가. '더 킹'은 죽은 영화도 되살린다는 편집의 달인인 신민경 편집기사가 참여했는데.
▶일단 뉴스클립은 MBC,KTV, YTN에서 약 5000만원 가량을 주고 샀다. 스태프들이 일일이 찾고 협상을 해서 얻은 결과다. 뉴스 영상은 한 꼭지에서 한 장면을 쓰든 전체를 쓰든 같은 가격을 봤더라. 일단 탄핵 장면은 신민경 편집기사가 많은 도움을 줬다. 그리고 앞뒤의 많은 실제 영상들은 나와 조감독 등 연출부들이 일일이 쪼개고 편집했다. 첫 장면 데칼코마니도 그렇고. 뉴스클립을 그렇게 샀다는 게 어떤 장면이 삽입돼야 할지 결정이 돼야 가능한 게 아닌가. 흔히 영화는 감독의 것이라고 하지만, 결국 종합예술이다. 참여한 사람들의 공이다.
-직접 세운 제작사 이름이 우주필름이다. SF영화를 만들고 싶나.
▶맞다. SF영화를 만들고 싶어서 우주필름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CG에 워낙 많은 돈이 들어가야 하니 다음 작품은 아니더라도 다다음 작품은 SF영화를 하고 싶다. 다음 작품은 내레이션 없고 블랙 코미디가 아닌 영화를 생각 중이다.(웃음)
-'연애의 온도' '특종:량첸살인기' 등을 제작했는데. 다음 제작영화는.
▶내가 제작을 하는 건, 이것저것 하고 싶은 건 많은데 다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에 제작할 영화는 '지존'이란 작품이다. 지존파 이야기다.
-'더 킹'의 일등공신이 누구라고 생각하나.
▶조인성이다. 믿어주고 기다려주고 흔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더 킹'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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