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뭘까? 포근한 낮잠. 달콤한 꿀. 가족과 친구들이랑 햇살 쏟아지는 언덕에서 나누는 식사. 멍하니 바라보는 흰 구름. '곰돌이 푸'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들이다. '곰돌이 푸 다시 만나서 행복해'를 보면 동의하고 싶어진다.
크리스토퍼 로빈이 떠났다. 꿀을 좋아하는 곰돌이 푸와 꼬리가 용수철인 호랑이 티거, 소심한 분홍 돼지 피글렛, 우울한 당나귀 이요르와 같이 뛰놀던 헌드레드 에이커 숲에서 떠났다. 이제 학교에 가고 어른이 돼야 했다. 푸는 기다린다. 그가 돌아오길.
크리스토퍼 로빈이 어른이 됐다. 아버지가 죽고, 가장이 됐다. 사랑하는 여인을 만났고, 아이가 생겼다. 전쟁에서 살아남고 돌아왔더니 뱃 속의 아기가 훌쩍 자라 예쁜 공주님이 됐다. 로빈은 바빴다. 살아남기 위해. 가족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일을 했다. 푸와 친구들의 기억을 조그만 상자 속에 담았다. 푸는 기다린다. 로빈이 돌아오길.
크리스토퍼 로빈은 힘들다. 일이 고되다. 가방 만드는 회사에 다닌다. 비용이 절감 안되면 사람들을 자르라 한다. 멍청한 사장 아들은 일을 떠넘긴다. 일이 바쁜 로빈은 아내와 딸과 같이 보낼 시간이 없다. 딸과 춤을 출 시간도, 딸과 여행을 같이 할 시간도 없다. 일을 위한 시간만 있을 뿐. 딸과 아내는 시골로 떠났다. 그런 로빈에게 푸가 찾아온다. 친구들이 사라졌다며. 로빈이라면 찾아줄 수 있다며.
크리스토퍼 로빈은 곤란하다. 말하는 곰인형이 사람들 눈에 띌까 곤란하고, 일하는 시간이 아까워 곤란하다. 그는 푸를 고향의 헌드레드 에이커 숲에 돌려보내려 기차를 탄다. 기차에서도 일을 한다. 푸는 창밖을 바라보며 풍경을 말하는 놀이를 한다. 푸는 로빈에게 행복하냐고 묻는다. 가장 중요한 게 서류 가방에 들어있냐고 묻는다. 로빈은 일이 바쁘다고 말한다.
크리스토퍼 로빈이 헌드레드 에이커 숲에 돌아왔다. 다시 모험이 시작됐다.
'곰돌이 푸'는 1926년 출간된 영국 작가 A.A. 밀른의 글과 E.H.쉐퍼드의 일러스트가 담긴 동화책으로 100여년 동안 전 세계에서 사랑받았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돼 널리 알려졌다. 소년 로빈이 곰돌이 푸랑 친구들과 헌드레드 에이커 숲에서 벌이는 행복한 모험을 그린다. 그런 '곰돌이 푸'를 디즈니에서 '정글북' '미녀와 야수'에 이어 라이브 액션(실사영화)으로 재탄생시켰다.
슬프다. 이미 어른이 돼버린 소년의 이야기는. 뻔하다. 동심을 잃은 어른이 다시 어린 시절 친구들과 뛰놀며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는 이야기는. 로빈 윌리엄스가 '후크'로 보여줬다.
그래도 '곰돌이 푸'는 정겹다. 슬프고 뻔한데 정겹다.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알고 있어도 잊고 지내는 이야기라, 어쩌면 살아남기 위해 외면했을 이야기라 슬프고 정겹다. 반갑다. 다시 만나서 반가운 이야기다.
'정글북'과 '미녀와 야수'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그대로 실사로 옮겼다. '곰돌이 푸'는 다르다. 마크 포스터 감독은 곰돌이 푸를 어른들을 위한 동화로 만들었다. 곰돌이 푸와 같이 헌드레드 에이커 숲을 뛰놀았을 어른들. 이제는 다들 살아남기 위해, 버티기 위해, 곰돌이 푸를 잊었을 어른들. 그 어른들에게 아이들 손을 잡고 같이 곰돌이 푸랑 숲을 뛰놀라고 만들었다.
그리하여 '곰돌이 푸'는 빛바랬고 낡았다. 추억이니깐. 이 빛바랜 낡은 추억이 더없이 포근하다.
딱히 모험이랄 것도 없다. 곰돌이 푸의 모험이야, 상상으로 만들고, 상상으로 이겨내는 아이들의 모험이니깐. 결론도 단순하다. 가족과 친구들과 햇빛 포근한 언덕에서 같이 밥을 먹는다. 맞다. 그게 곰돌이 푸다. 이 단순한 소중함을 '곰돌이 푸'는 다시 기억하게 해준다.
CG로 만들어진 곰돌이 푸는 유독 낡았다. 티거나 피글렛, 이요르와 비교해도 특히 낡았다. 그 낡음이 시작부터 슬프다. 처음 본 순간부터 눈물이 난다. 눈물이 나면 당신도 어른이다.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는 어른이 된 당신에게 건네는 작은 위로다. 잠깐 멍해도 괜찮아. 꿀이랑 친구, 흰 구름, 햇살, 그리고 가족이 있으니깐.
10월 3일 개봉. 전체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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