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상에 사로잡히면 우상을 제대로 볼 수 없다. '우상'은 그런 영화다. 이 제목은 메타포이자 맥거핀이다.
차기 경남 도지사로 뜨거운 지지를 받고 있는 도의원 구명회. 청렴하고 도덕적이란 이미지로 인기가 높다. 당도 그의 행보를 주목한다. 구명회는 도지사 경선을 앞두고 아들이 뺑소니를 쳤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단순히 뺑소니가 아니다. 시체를 집까지 가져와 유기하려 했다. 아내가 도왔다.
구명회는 숨길 수 있는 비밀은 없다며 아들을 자수시킨다. 다만 시체 유기가 아니라 뺑소니로. 시체는 사건 장소로 옮겨놓는다.
자위까지 대신해 줄 정도로 정신지체가 있는 아들에 대한 사랑이 끔찍했던 유중식. 그는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다. 정말 아들이 뺑소니로 죽었는지, 즉시 병원으로 옮겼으면 살았을 수 있었을지, 온통 의문이다. 뿐만 아니다. 아들과 결혼한 중국동포 련화가 사라졌다. 그날의 진실을 알고 있을 터이고, 아들의 아이까지 갖고 있는 여자 련화.
명회는 남몰래 련화를 찾는다. 말이 샐까 은밀하게 심부름센터를 이용한다. 중식은 경찰도 자기 말을 안 믿어주자 점쟁이까지 찾는다. 나라의 가장 큰 사람 목을 자르면 찾을 수 있단 말이나 듣는다. 전단지를 돌리며 련화를 찾던 중식은 자신이 련화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단 사실을 알게 된다. 그렇게 명회와 중식은, 실종된 련화에게 가까이 가게 된다. 련화는, 이 수수께끼의 여인은, 비밀 그 이상을 품고 있다.
'우상'은 '한공주'로 주목받은 이수진 감독의 상업영화 데뷔작이다. 감춰진 비밀을 지독하게 파고드는 연출은 보다 깊어졌다. 더 불친절해졌다. 누군가의 감정을 따라가려 하면 낭패다. 감정을 쫓아 이입하려하면 우상에 사로잡힌다. '우상'은 철저한 거리두기로 우상을 이야기한다.
'우상'은 명회와 중식과 련화, 세 축으로 이야기를 꾸렸다. 축은 세 개이되 하나의 시점은 없다. 통상 이런 영화라면 아들의 죽음을 둘러싼 비밀을 파헤치려는 아버지의 시점이 전체 이야기를 관통하기 마련이다. '우상'은 다르다. 중식의 첫 등장부터 롱테이크로 그의 뒷모습을 담는다. '우상'은 부성이란 우상을 쫓는 영화가 아니라는 선언 같다. 그 선언은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와 독재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광화문의 우상 목을 날리는 것으로 이어진다.
명회는 권력이란 우상을 쫓는다. 무엇을 믿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믿게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다. 그 우상을 위해 필요하다면 자식도 버릴 수 있다. 광화문 앞에서 무너진 그의 우상은, 그러나 공고하다. 무엇을 믿게 하느냐를 알고 있다면, 언제든 다시 세울 수 있다.
련화는 우상이 없다. 필요한 건 생존과 이름뿐. 생존을 위해 자신을 부정하는 모든 걸 지우려 한다. 그렇게 살아남는 것만이 최우선인 련화가, 중식과 명회의 우상을 파괴하는 건 그래서 아이러니하다. '우상'은 짐짓 생존이 우상보다 중요하다고 지독하게 말하는 것 같다.
이수진 감독은, 이 세 축을 정반합으로 영화로 옮겼다. 우상에 우상을 더한 뒤 그 우상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답을 거칠게 끌어냈다. 이 방식은 불친절하다. 그럼에도 긴장감이 넘친다.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계속 관객이 우상에 사로잡히도록 만든다. 그렇게 쌓아올린 우상들을 한순간에 무너뜨린다.
'우상'의 카메라 워킹과 구도는 매우 인상적이다. 이수진 감독은 캐릭터는 거리를 두게 하는 대신 좀처럼 보지 못한 카메라 구도로 관객을 붙들려 한 것 같다. 명회의 시선은 늘 위에서 아래다. 그를 담는 카메라는 그를 올려보게 만들거나 그를 쫓아 내려보게 만든다. 첫 등장부터 뒷모습으로 등장하는 중식은, 가로로 보다 넓게 잡는다. 그의 색이 따뜻한 노랑과 녹색에서 차가운 파랑과 검정으로 변하는 동안 점점 더 그를 외롭게 잡는다. 초반에는 그의 절규를 가까이 잡았다가 마지막에는 멀게 잡는다. 의도가 명확하다.
련화는 붉다. 생명의 색이자 끔찍한 색이자 생존의 색이다. 눈썹이 없다가 눈썹이 그려졌다가 다시 눈썹이 사라진다. 정체성이 없다가 가짜로 만들어졌다가 다시 사라진다. 그 사라짐이 련화다.
중식을 맡은 설경구와 명회를 맡은 한석규, 련화를 맡은 천우희. 불친절한 이 영화를 꽉 붙드는 건, 세 배우의 몫이 아주 크다. 설경구는 '우상'에서 내려놓는 법을 배운 듯하다. 힘이 빠지는 순간순간이 그대로 스크린에 전달된다. 천우희는 탁월하다. 비중이 가장 적은데도 가장 약동한다. 다만 이수진 감독은 두 남성 캐릭터의 서사를 위해 여성 캐릭터를 소비했다는 지적은 피할 수 없을 듯하다. 그럼에도 천우희가 그 이상을 표현했기에, 련화의 생존이 도구 그 이상의 생명력을 얻었다.
'우상'엔 모성도 우상이다. 단단히 붙잡고 있는 것, 그렇게 하리라고 믿어지는 것, 그 자체가 다 우상이다. 이 영화 속에선 은밀한 정치권력 이야기들은 커피숍에서, 교회 예배에서 나눠진다. 어차피 믿고 싶은 걸 믿을 테니 열린 장소는 상관없는 듯하다. 오히려 닫힌 장소들에서 우상을 벗어던진다. 음향과 음악이 간혹 대사를 짓누르지만 긴장을 증폭시킨다.
'우상'은 묻는다. 형식이 질문이요, 주제다. 우상을 은유하되 우상을 쫓으면 그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형식으로 이야기한다. 작가 이수진의 탄생이다.
3월 20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추신. 15세 이상 관람가 등급이지만 여백의 수위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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