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물원에는 동물이 있다. 사자, 고릴라, 북극곰, 나무늘보, 기린 등 많은 동물들이 있다. 이 동물들이 가짜라면? '해치지 않아'는 당연한 걸 꼭 당연하지 않아도 된다고 착하고 웃기게 이야기한다.
대한민국 굴지의 로펌에서 수습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태수(안재홍). M&A 전문 변호사로 정규 로펌 직원이 되고 싶지만, 하고 있는 일이라곤 허드렛일뿐이다. 변호사 배지만 반짝일 뿐이다. 수습 딱지를 떼고 싶은 마음에 로펌 윗사람들에게 90도로 인사하는 게 일상이다.
그런 태수에게 기회가 찾아온다. 다 망해가는 동물원 동산파크를 회생시켜 제값에 되팔 수 있도록만 한다면, 로펌에 M&A 전문 변호사 자리가 약속된다. 태수는 부픈 마음을 안고 새 동물원장으로 동산파크를 찾는다.
웬걸. 동산파크는 빚에 허덕여 있던 동물들마저 다른 동물원에 팔아넘긴 뒤였다. 있는 동물이라곤, 이상 증세가 있는 북금곰과 미어켓, 새들 몇 마리가 전부다. 동물들을 새로 사들이는 것도 쉽지 않다. 동물원에 동물이 없으니 손님을 불러모으는 건 불가능한 일일 터.
태수는 고심 끝에 동물원 직원인 소원(강소라), 박원장(박영규), 건욱(김성오), 해경(전여빈) 등과 동물탈을 쓰고 동물 행세를 하기로 결심한다. 동물원에는 동물이 있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며. 말이 되냐고 반대하던 직원들도 동물원을 살리자는 태수의 설득에 합류한다.
그렇게 기상천외한 사자, 고릴라, 북극곰, 나무늘보, 기린이 탄생한다. 당연한 걸 당연하지 않게 했지만, 사람들은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해치지 않아'는 동명의 웹툰을 손재곤 감독이 영화화했다. '달콤, 살벌한 연인' '이층의 악당' 등을 연출했던 손재곤 감독은 '해치지 않아'로 꼭 10년만에 돌아왔다.
설정은 기발하다. 가짜라도 진짜라는 믿음이 있는 곳에 있으면 진짜로 믿는 세상. 이 상식을 착하게 뒤집는다. 상식이 착하게 뒤집어질 때 오는 즐거움이 동산파크에 있다. 온갖 악의와 부조리도, 동산파크에 오면 착해진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어차피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세상에, 보이는 것만이라도 진심을 담으려는 착한 노력들이 있기 때문이다.
'해치지 않아'는 그래서 착한 영화다. 가진 자들의 위선적인 행태, 그런 행태를 보더라도 가진 자가 되고 싶어하는 마음, 어쩌면 당연한 것들이 동산파크에선 당연하지 않아도 된다. 안재홍이 맡은 태수는, 그런 당연한 것들을 당연하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착하게 이끈다.
'해치지 않아'는 착하다. 남을 비하하면서 웃기지도, 때리면서 웃기지도, 욕하면서 웃기지도, 맞으면서 웃기지도 않는다. 착하게 웃긴다. 그렇기에 웃음의 강도는 덜하다. 자극적인 웃음이 판치는 세상에 착한 웃음은 약하다. 대신 따뜻하다. 이 착한 웃음이 '해치지 않아'의 장점이자 약점이다. 동산파크와 닮았다.
서사는 정해진 길을 걷는다. 더 웃기기 위해 더 한고비를 넘지 않는다. 더 감동을 주기 위해 더 쥐어짜지 않는다. 이 착한 서사도 동산파크와 닮았다. '해치지 않아'는 내용과 결과 형식이 닮았다. 동산파크 사람들과도 닮았다.
손재곤 감독 특유의 시니컬한 웃음은 줄었다. 위악적인 웃음도, 서사에 숨겨놓은 비밀도 없다. 주인공들보다 박혁권, 한예리 등 조연들이 더 손재곤 감독 영화 속 인물들 같다. 착한 이야기인 탓이다. 다만 남들이 당연하다고 믿는 걸, 당연하지 않게 바라보는 손재곤 감독의 시선은 더 깊어졌다. 더 가진 자가 되려 남을 짓밟는 게 당연하지 않는 세상, 동물원에 동물이 있는 게 당연하지 않은 세상, 그런 세상을 착한 웃음으로 풀어냈다. 모순이 착하게 교차한다.
동물탈과 CG는 관객이 충분히 공감할 만큼, 적절하다. 안재홍은 안재홍 같고, 강소라는 강소라 같다. 상업영화의 전여빈은 반갑고, 오랜만에 스크린을 찾은 박영규는 여전히 웃기다. 김성오는 착한 김성오 같다. 로펌 대표로 출연한 박혁권은 히든유머이며, 특별출연한 한예리의 "나 그린피스 회원이야"는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해치지 않아'는 콜라 같은 톡 쏘는 맛이 아니라 따뜻한 쌍화탕 같은 영화다. 추운 몸을 훈훈하게 덥혀준다. 겨울에 가족이 같이 나누기에 적합하다.
1월 15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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