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순이 지났다. 귀가 순해진다는 60세를 훌쩍 넘겨 어느덧 63세다. 이준익 감독은 귀가 순해졌기 때문인지, 귀가 더 열려진 것 같다. 그가 새롭게 선보인 '자산어보'는 많이 듣고 많이 품고 많은 걸 담은 영화다. 그 많은 것들을 쉽게 쉽게 풀었으니, 더 깊어진 모양이다. 스스로는 흥행에 참패한 전작 '변산'에 대한 깊은 반성 때문이라고 했다. 바닥을 찍고 왔다고도 했다.
'자산어보'는 흑산도로 유배 간 정약전이 젊은 어부 창대와 같이 어류도감인 자산어보를 쓰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이준익 감독은 정약전에게서 자신을 본 듯 하다. 정약전은 멀고 먼 외딴 섬으로 유배 갔으면서도 그곳에서도 호기심을 잃지 않고 물고기를 연구하고, 어린 백성에게 배웠을 뿐만 아니라그 배움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잘난 사람들 가르치기 보다는 그저 백성의 삶에 도의 본질이 있다는 걸 알고 남은 생에 걸쳐 연구했다. 이준익 감독은 그런 정약전에게서 자신을 본 듯했다. 그리하여 '자산어보'는 뭉클하다. 이준익 감독에게 '자산어보'에 대해 들었다.이 인터뷰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자산어보'는 김훈 작가의 '흑산'에게서 영향을 받았나.
▶그건 아니다. 원래 근대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 조선에 대한 영화를 찍다보면 동어반복이 될까봐 점점 더 근대로 눈을 돌렸다. 정조의 근대성과 북학파에 대한 관심이 있어서 '열하일기'를 영화화하는 걸 고민하기도 했다. 그런데 중국에서 영화 찍는 게 허가가 안되서 그냥 덮었다. 그렇게 잊어먹고 살다가 황사영 백서를 쓴 황사영에 대해 알게 됐다. 공부를 하다가 '흑산'도 읽었고 이덕일의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도 읽게 됐다. 그렇게 황사영을 계속 공부하다가 충북 제천에 있는 여진천 신부님을 찾아 뵙다. 그 분이 황사영에 대한 논문을 쓰셔서 그것도 읽고 이야기도 들었다. 그 뒤 황사영에 대한 시나리오를 작가와 같이 준비했는데 다 쓰고 보니 내가 연출하기에는 스스로 공부가 될 됐더라.그래서 덮었다. 그 뒤 '변산'이 흥행에 참패하고 난 뒤 뭘 해야 할까 싶어서 황사영을 다시 펼쳤더니 그냥 뚝 하고 정약전이 떠오르더라.
정약용은 16부작으로 다뤄도 부족하고 황사영은 너무 일찍 죽어서 영화화하기가 쉽지 않다. 뚝 하고 생각난 김에 정약전에 관한 시나리오를 써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초심으로 돌아가 이쪽을 파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마침 '변산'을 쓴 김세겸 작가가 사무실에 찾아왔다. 이야기를 듣더니 자기가 '자산어보' 시나리오를 써봐도 되겠냐고 하더라. 우연히도 이 친구가 성균관대 동양철학과 출신이라 논어, 대학 등에 대한 지식이 풍부했다. 그래서 이런저런 이야기로 만들어보자고 의기투합했다. 감독이 부족한 지식을 작가가 갖고 있어서 운이 좋았다. '자산어보'에 논어와 대학의 구절들이 생활어와 자연스럽게 붙은 건, 다 작가 덕이다.
-그 말 그대로 논어와 대학의 구절이 영화와 자연스럽게 붙은 게 인상적인데.
▶대학에 격물치지 성의정심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란 말이 있다. 사물의 이치를 정확히 알고 이해하고 난 뒤에야 수신제가해서 치국평천하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 격물치지가 '자산어보'라 봤고, 수신제가가 정약용의 '목민심서'라 봤다. 영화 속에서 짱뚱어가 이름이 없는데 눈이 튀어나왔다고 해서 철목어라는 이름을 부여한다. 그게 격물치지라고 생각했다. 그 도움을 당대의 지식인인 양반이 천하다 할 수 있는 어린 어부에게 받는다. 그리고 그걸 숨기지 않는다. 그렇게 이름 지은 철목어를 먹는 방법을 고민해서 백성들이 배고플 때 먹고 살수 있게 한다. 그게 자산어보의 정신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흑산도에는 짱뚱어가 살지 않는다. 엄밀히 따지면 고증과 맞지 않는데.
▶맞다. 짱뚱어는 갯벌에 산다. 흑산도에는 갯벌이 없다. '자산어보' 시나리오를 여러분들에게 감수 받았다. '자산어보'를 번역한 분과 '현산어보를 찾아서'를 쓴 분에게 시나리오 감수를 부탁해서 50여군데 가량 지적을 받았다. 그 중에 하나가 흑산도에는 짱뚱어가 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다른 물고기로 바꾸려 노력해봤는데 결국 못 바꿨다. 관객이 그걸 쉽게 이해하는 데 짱뚱어 만 한게 없는 것 같더라. 고민 끝에 영화적인 허용으로 짱뚱어를 넣고 비판을 감수하자고 마음 먹었다.
-'자산어보'도 일종의 버디물이다. 정약전과 창대를 나란히 놓았다. 매 작품마다 버디물적인 특성으로 만드는 이유가 있다면.
▶비교 가치 때문이다. 한 사람을 또렷하게 만들려면 그 앞에 있는 사람을 뚜렷하게 만들면 된다. 정약용이 선명하면 정약전이 뚜렷해지고, 정약전이 뚜렷해지면 창대가 또렷해진다. 버디가 목적이 아니고, 브로맨스가 목적이 아니다. 비교해서 보아야 더 뚜렷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가거댁(이정은)을 통해서 이준익 감독의 페미니즘에 대한 생각을 영화에 담았는데. 시대상을 반영한 것도 같고, '박열'의 공부가 반영된 것 같기도 하고, 오래된 것을 통해 새 것을 이야기한 것 같기도 한데.
▶씨가 중요한 줄로만 알지, 밭이 중요한 건 모른다는 가거댁의 말은 정약용의 일화에서 가져왔다. 이미 그 시대에 그런 관점이 있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근거가 없이 억지로 뭔가를 하려 하고, 가르치려고만 하면 얄팍해진다. 그래서 최대한 있는 것들에게서 가져왔다.

-'자산어보'에는 시가 많이 등장한다. 시로 마치 랩배틀을 하는 듯한 모습도 그려지고. 힙합 이야기를 담았던 '변산'의 변주인 것도 같고, '변산'에서 그 힙합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걸 제대로 못 담았던 반성과 아쉬움이 담긴 것 같기도 한데.
▶자기 반성이 무의식적으로 담긴 것 같다. 일부러 한 건 아니지만 무의식 중에 자기반성과 그 결핍을 채우려 했을 수 있다. 분명한 건 '변산'이 없었으면 '자산어보'도 없었다. 사람이 넘어지면 누구나 초심을 생각하게 된다. 나도 초심을 돌아보니 정약전이 커보이더라. 그리고 그 시들은 조선의 사상들이 녹아있는 정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 시들을 찾았다.
-이준익 감독도 그렇지만 정약전 역의 설경구, 정약용 역의 류승룡도 바닥을 찍고 온 사람들이다. 그래서인지, 이 이야기를 표현하고 풀어내는 데 깊이가 상당한데. 현장에서 '우리는 바닥을 찍고 온 사람들 아니냐'는 말도 했다던데.
▶굳이 많은 설명이 필요 없었다. 워낙 연기를 잘하는 배우들이기도 하지만 그런 감정에 대한 이해가 있었다. 그냥 머리로 아는 것과 경험으로 체득한 건 다르지 않나. 정말 훌륭한 배우들이다.
-'변산' 이후인 터라 '자산어보'에 상업적인 부분도 고민했을텐데. 상업적인 부분에 대한 고민이라면 결국 사건에 대한 고민일텐데.
▶그건 나중에 찾았다. 정약용의 시 '애절양'을 꼭 넣고 싶었다. '애절양'은 군포를 더 걷기 위해 죽은 아비와 갓 태어난 아이 몫까지 걷었던 당시 사회상 때문에 남편이 더 이상 자식을 낳지 않겠다고 양근을 자르자 목 놓아 우는 아낙을 그린 시다. 시가 아니라 그 이야기를 넣고 싶었다. 그걸 시나리오에 박아 넣었더니 사건이 생기더라. 그 사건에 창대를 넣어야 했다. 백성을 다스리는 수령들을 교화시키려 했던 정약용의 '목민심서'에 감화됐던 창대가 다시 정약전에게로 돌아가는 명분으로서의 사건이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을까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아보지 못할까 걱정하라" "쥐에게도 가죽이 있거늘 사람에게 체면이 없으면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등 논어의 구절들이 대사로 생활어와 자연스럽게 대구를 이뤘다. 이런 대사들은 오히려 직접적으로 쓴 반면 자산어보에서 소개된 갑오징어에 대한 구절은 영화 하이라이트에 상징적으로 담겼는데. 갑오징어는 '자산어보'의 중요한 메타포 중 하나라 계속 반복돼 소개되기도 하는데.
▶갑오징어는 말하자면 창대에 대한 일종의 은유다. 갑오징어뼈는 버리는 것이냐고 묻는 정약전의 말에 약으로 쓴다는 창대의 답이 있다. 거기에 자산어보에서 실제로 쓰여있는 갑오징어에 대한 묘사로 창대를 그렸다. 갑오징어의 먹물이 다시 물에 들어가면 쓸 수 있다는 설명도 다 자산어보에 있는 말이다. 성리학에 대한 동경과 목민심서의 영향을 받아 세상에 꿈을 펼치고자 했던 창대와 성리학으로 상처를 받은 정약전,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너무 대놓고 이건 이런것이다라고 하면 가르치려 한다고 할까봐 조심스레 담으려 했다.

-'자산어보'를 흑백으로 만든 건 여러 이유가 있을테고, 결과물도 좋지만, 한편으로는 컬러인 '자산어보'도 궁금하다. 뭐가 더 좋을 것 같다는 게 아니라. 흑백으로 찍었기에 촬영지에 태풍이 세 번 왔는데도 큰 탈 없이 오히려 제작비를 줄여서 찍을 수도 있었을 테고, 흑백으로 찍었기에 컬러에 비해 정보값이 적어서 아쉬운 부분도 없진 않았을텐데.
▶'자산어보' 순 제작비는 42억원 가량이다. 촬영지에 태풍이 3번이나 왔는데 컬러로 찍었다면 촬영을 못했을 것이다. 미술이나 세트를 태풍이 왔을 때마다 다시 수정해야 했을테니. 태풍이 온다니 일단 피하고 갔다니 만회하자고 해서 오히려 회차를 줄였다. 위기가 오면 찬스라 생각했다. 예컨대 창대의 관아 하이라이트 장면은 남양주에 있는 '취화선' 세트에서 찍었다. 오래되다 보니 컬러로 찍었다면 미술을 다 다시했어야 할 판이었다. 그런 비용 절감 측면에서 좋은 효과를 얻었다. 물론 이 영화와 흑백이 맞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였고. 다만 흑백이다 보니 자칫 관객에게 정보값이 부족하진 않을까 고민은 했다. 그래서 물고기는 컬러로 할까도 생각해봤고. 결국 지금이 최선이라고 생각해서 만들었다. 다만 쌀에 모래를 섞는 장면은 아쉽더라. 겨와 모래가 흑백이다보니 잘 구분이 안 가는 것 같아서 아쉬움이 남았다.
-그럼에도 '자산어보'에는 컬러 장면이 세 번 나오는데.
▶밤하늘 별을 바라볼 때 한 번, 파랑새에서 한 번, 마지막 흑산도 장면에서 한 번 나온다. 별을 보는 장면은 우물 안 개구리에서 우물 밖 개구리라는 사실을 알게 된 심경을 보다 선명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원래 지구본을 발견하고 난 뒤 약전과 창대의 대화에는 '천원지방'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라는 유교적 우주관과 지구가 둥글다는 서구의 지구본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었다. 너무 가르치려 한다고 할까 편집했다. 그래서 그냥 창대가 그런 이야기하면 이 동네에서 못 산다는 부분만 남겼다. 그랬던 창대가 나중에 밤하늘을 보면서 보고 싶은대로 보지 말고 보여지는대로 보는 장면을 컬러로 표현하고 싶었다. 파랑새 장면은 자산어보에 창대가 말하길 밤송이새가 바로 그것입니다라는 구절에서 가져온 것이다. 당대의 지식인이자 양반이 자신의 책에 굳이 어린 어부 창대에게 들었다는 부분을 표기한 것이다. 그야말로 수평적 가치관이다. 그렇기에 파랑새는 창대를 의미하기도 하고. 또 마지막 흑산도 장면은 정약전이 처음에 본 흑산과 창대가 섬으로 돌아오면서 바라보는 흑산을 비교하고 싶었다.
-컬러로 그려진 파랑새는 이준익 감독의 다음 이야기가 동학으로 이어진다는 걸 암시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평소 조선의 근대를 다루고 싶어했고, 서학이 있었기에 동학이 있을 수 있었다며 영화를 만들 순서는 서학 다음에 동학일 것이라고 이야기했었는데.
▶한국인들이 파랑새로 녹두장군을 떠올리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그 노래에서 파랑새는 일제를 의미하지만. 아무튼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그걸 직접적으로 의도한 건 아니다. 의도하면 얄팍함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백성이 하늘이다라는 말이 '자산어보'에 직접적으로는 등장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그런 이야기가 없는 것도 아니다. 사극을 연출하는 사람으로서 그 시대를 성실히 쫓아가면 그 시대의 흐름과 만나기 마련이다. 그런 흐름이 영화에 담겼다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싶다. 관객들이 각자 여러 의미를 찾아가는 게 가장 좋을 것 같다.
-윤경호가 맡은 홍어장수 문순득은 실존 인물이다. 표류한 끝에 오키나와와 필리핀, 중국을 거쳐 돌아온. 실제로 정약전과 교류가 깊어서 그 표류기를 '표해시말'이란 책으로 만들기도 했고.
▶실제로는 정약전과 문순득의 교류가, 정약전과 창대의 교류보다 더 많았을 것이다. 정약전이 말년에 우이도에서 머물 때 거처를 순득의 집에서 했을 정도였으니. 사실 문순득의 이야기도 시나리오로 써놓은 게 있었다. 스케일이 워낙 커서 영화화 하기가 쉽지 않은 내용이다. '자산어보'에는 문순득이 창대의 유교적 가치관을 재구성하는 역할로 등장시켰다. 문순득의 이야기가 너무 커지면 정약전과 창대의 이야기가 중심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영화에서 정약전과 정약용 사이를 오가는 정약용 제자인 이강회(강기영)도 강진 18제자 중 정약용이 가장 아꼈다는 실존 인물인데.
▶원래는 그 역할을 정약용의 제자이자 자산어보 후반부를 정리한 이청으로 하려 했다. 자산어보는 정약전이 생전 완성시킨 게 아니라 정약용이 형의 유고를 제자인 이청에게 정리하게 하여 비로소 완성됐다. 그래서 처음에는 영화 속에서 둘 사이를 오가는 인물로 이청을 그리려 했으나 시나리오를 감수해준 분들이 고증상 이청과는 안 맞는다고 해서 이강회를 넣었다.
-'소원'에 이어 설경구와 다시 호흡을 맞췄다. '자산어보'에서 설경구의 연기는 정말 깊었는데. 특히 뭍에 나간 창대의 소식을 들은 정약전이 "잘 살면 고맙지"라는 대사를 할 때, 그걸 연기한 설경구의 얼굴은 정말 좋은데.
▶정말 좋았다. 나는 어릴 적에 할아버지와 방을 같이 썼다. 내 기억에서 할아버지는 평생 한복을 입고 사셨던 분이다. 선비의 풍모를 갖고 계셨다. 그런 풍모를 상상했을 때 설경구가 떠오르더라. "잘 살면 고맙지"라는 대사를 할 때, 실제로 정약전의 나이를 계산해보면 대략 58세 가량이다. 지천명이 지나 이순이 다가왔을 때다. 그 시대를 생각해보면 노년이다. 인생의 깊이를 아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자 표정인데 설경구가 그걸 제대로 했다. 영화 속에서 정약전이 창대를 정약용에게 보낸 뒤 창대가 섬에 돌아오는 모습을 보고 있을 때, 그의 표정 역시 대단하다. 저 놈이 약용을 만나면 세상으로 나가고 싶어할 텐데, 이런 마음을 갖고 있으면서도 동생에게 보내고, 그렇게 달라졌을 제자를 바라보는 표정. 불이 달궈져서 올 것인지, 글쎄 이것도 운명이지란 표정. 좀 더 길게 담고 싶었는데 너무 빨리 지나가버린 것 같아 아쉽기도 하다.
-창대를 맡은 변요한은 영화 속에서 점점 더 좋아지는데.
▶난 배우에게 항상 인물의 내면만 이야기한다. 외면은 배우가 알아서 하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창대는 10대 후반에 정약전을 만나 대략 14년을 그와 같이 보낸다. 그 순간들을 각 나이대에 맞도록 계산해서 연기하는 건 배우의 몫이다. 다만 중요한 건 배우가 그 내면에 성장을 담아서 보여줄 수 있느냐다. 변요한은 그런 점에서 창대가 정약용을 만나는 순간 그의 내면이 완전히 바뀐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장면에서 류승룡이 연기한 정약용은 , 창대에게서 형의 모습을 찾으려 한다. 변요한은 그걸 감응했는지, 자기도 모르게 정약용 앞에서 정약전과 닮도록 연기했다. 그 장면들에서 변요한은 여러 내면의 변화를 정말 잘 보여줬다. 그리고 그 전과 그 뒤가 달라야 한다는 것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 창대가 정약용을 만나고 온 뒤 스승과 대화할 때 왜 정약전이 수많은 한자 중에서 굳이 '윤'에 대해 설명하도록 했나.
▶그 윤(綸)은 임금만 쓰는 한자다. 임금이 백성에게 내리는 문서를 윤음이라고도 하고. 임금만 쓰는 한자를 목민심서에서 하나하나 찾아서 발견한 것이다. 그런데 그 윤은 사실 낚싯줄이란 뜻이다. 어부가 사용하는 낚싯줄을 어찌 임금만 쓸 수 있냐는 게 정약전의 뜻이라고 봤다.
-김의성이 연기한 창대의 아버지 역할은, 영화 속에서 정약전의 반대인데. 그렇다고 정약전이 선이고, 그 아비가 악으로 그려진 건 아니다.
▶그렇다. 그냥 그 인물은 삶을 아는거다. 네 뜻을 모르는 게 아니지만 세상은 그런 게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어른인 것이다. 지금도 많은. 그러니 아들이 그런 선택을 해도 나무라지 않고 왜 그랬냐고 먼저 묻는거다. 그렇기에 창대를 대하는 두 아비들을 동전의 앞뒤처럼 딱 잘라 이야기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정은의 "잘생겼어요"는 애드립인가.
▶아니다. 원래 시나리오에 있는 대사인데 이정은이 잘 살린 것이다. 영화에 웃음을 담기 위해 작가가 곳곳에 심어놓은 대사 중 하나다.
-다음 작품은 동학으로 가나, 아니면 다른 걸 준비하나.
▶'자산어보' 결과에 따라 다를 것 같다. 준비하고 있는 시나리오는 두 개가 있는데 어찌 될지는 '자산어보' 결과에 따라 다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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