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영화를 보는 김나연 기자의 사적인 시선.

이병헌의 생존을 위한 발버둥이 슬픈데 웃기다. 박찬욱 감독이 대중에 한 발 더 가까이, 전율까지 느껴지는 희비극을 완성해냈다. 영화 '어쩔수가없다'다.
'어쩔수가없다'는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됐고, 17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 중극장에서 기자 시사회를 통해 국내에 첫 공개됐다.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 작가의 1997년 발표작 소설 '액스'를 원작으로 하는 '어쩔수가없다'는 '다 이루었다'고 느낄 만큼 삶이 만족스러웠던 회사원 '만수'(이병헌 분)가 덜컥 해고된 후, 아내와 두 자식을 지키기 위해, 어렵게 장만한 집을 지켜내기 위해, 재취업을 향한 자신만의 전쟁을 준비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
박찬욱 감독은 2019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가장 만들고 싶은 이야기"라고 언급하며 깊은 애정을 보인 바 있다.
주인공 만수(이병헌 분)의 더없이 행복한 삶을 보내고 있다. 그의 노고에 감사하며 장어를 선물하는 직장이 있었고, 아름다운 아내 미리(손예진 분) 그리고 두 아이와 함께하는 가정은 평화로웠다.
"다 이루었다"고 기뻐하던 그는 갑작스럽게 해고 통보를 받게 되고, 그의 삶에는 균열이 생기게 된다. 재취업에는 3개월이 걸릴 것이라고 생각한 것과 달리 13개월이 흐르고, 도저히 취업의 문턱은 넘을 수 없다. 여기에 아들의 넷플릭스 구독까지 끊어야 할 만큼의 생활고까지 겹치며 만수의 조급함은 극단으로 치닫는다.

제지업계가 급속도로 위축되고 있는 탓에 취업의 문은 바늘구멍이고, 자신보다 막강한 경쟁자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민수는 상상 그 이상의 방식으로 해결 방법을 찾으려 한다. 바로 그 경쟁자들을 죽이고, 자신이 '1순위'가 되고자 했던 것. 터무니 없다고 느껴질 수도 있는 결심이 만수의 결연한 눈빛 앞에서는 정말 어쩔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은 '어쩔수가없다' 전반에 적용된다. '취업'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달려가는 만수의 절박하지만 허술한 '발버둥'에는 유머가 섞이며 벼랑 끝에서 웃음이 터져나오는 아이러니한 일이 발생한다.
박찬욱 감독은 자본주의가 평범하고 선한 한 사람을 벼랑 끝으로 밀어넣는지, 이 과정에서 어쩔 수가 없다고 합리화 할 수밖에 없는 비상식적인 상황, AI 발전 속에서 인간이 직면한 미래까지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진다. 그는 "제목에는 비겁한 정서가 담겼고, 충돌에서 빚어내는 비극을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다.
여기에 숨 막힐 듯 빼어난 미장센 또한 건재하지만, 서스펜스와 스릴감은 다소 부족하고, 이야기의 전개 또한 완벽하게 촘촘하지는 않다. 사건이 발생하고, 매듭지어지는 과정에서 누군가의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빈틈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어쩔수가없다'에서 그 빈틈을 메우는 것은 배우들의 힘이다.
만수 역의 이병헌은 표정부터 몸짓까지 말 그대로 능수능란한 연기력으로, '어쩔수가없다'를 이끈다. 심지어 핏줄까지 연기하는 느낌이 드니 '역시 이병헌'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박찬욱 감독에게 "웃겨도 돼요?"라고 질문한 열정과 걸맞게 '어쩔수가없다'의 유머를 담당하면서도, 그 처절함까지 뚜렷하게 담아낸다. 여기에 손예진, 박희순, 이성민, 염혜란까지 더할나위 없는 배우들이 힘을 보탠다.
"한국 영화를 늪에서 꺼내는데 도움이 되는 작품이었으면 한다"라는 박찬욱 감독의 바람은 이뤄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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