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이 바뀌어도 변치 않는 힘을 가진 것이 음악이다. 오랜 시간을 두고 들어도 위로가 되는 음악이 있어 가요팬들은 끊임없이 음악에 대한 사랑을 이어오고 있다.
하지만 '가는 세월 그 누구가 막을 수가 있나요'란 가사처럼 음악 역시 세월의 변화를 피해갈 수는 없는 법이다. 이 때문에 각 시대상을 반영한 단어들이 가사에 등장하곤 한다. 그 시절에는 자연스러웠던 단어들이 시간이 흐른 뒤 누군가에게는 추억을, 누군가에게는 웃음을 줄 수 있는 것이다.
1990년 발표된 015B 1집 타이틀곡 '텅 빈 거리에서'를 살펴보면 "떨리는 수화기를 들고 너를 사랑해 눈물을 흘리며 말해도 아무도 대답하지 않고 야윈 두 손에 외로운 동전 두개뿐"이라는 가사가 등장한다. 이 가사 속 '동전 두개 뿐'은 당시 공중전화 요금이었던 20원을 의미한다. 공중전화 사용이 보편적이던 1990년대 초의 분위기가 잘 묻어있는 가사다.
1999년 발표된 유희열 삽화집 '익숙한 그 집 앞'의 내레이션에도 "용기를 내어서 찾아간 공중전화 앞 하지만 전화 앞에 놓인 것은 외로운 동전 2개"라는 비슷한 가사가 나온다.
1990년대 중반이 되면서 공중전화 대신 호출기 일명 '삐삐'가 가사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1997년 발표된 산울림 13집의 '142434'의 가사에는 "삐삐를 쳤는데 연락이 안 오네 삐삘 놓고 갔나 약이 떨어졌나 일부러 안하나"라는 가사가 등장하고, 1996년 발표된 록그룹 지니 1집 수록곡 '보통 여자'에서는 "5분에 한 번씩은 삐삐를 받으며 아는 남자들은 모두 친한 오빠들이래 삐삐는 지하라서 항상 못 받고 변명으로 건전지가 닳았다고 말하며"라고 노래한다.
또한 삐삐 세대에게는 숫자로 단어를 표현하는 것이 익숙해 숫자들이 제목에 등장하기도 했다. 장종환의 '1010235'라는 곡은 '열렬히 사모'라는 말을 숫자로 표현한 것이다. 최근 발표된 다비치의 '8282' '빨리빨리'를 의미하는 숫자로 삐삐 세대에 한결 더 익숙하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휴대폰의 보급으로 문자메시지와 개인 홈페이지 사이트 싸이월드의 미니홈피가 새로운 사랑의 메신저로 떠올랐다.
최근 큰 인기를 모은 에이트의 '심장이 없어'의 랩 부분에는 "웃자 TV 속 연예인들처럼 웃자 너의 미니홈피 제목처럼 웃자 행복했던 내 어제처럼"이란 가사가 등장하고 빅뱅의 '천국'에는 "매일 들어가는 미니홈피 달콤한 향기 내 사랑을 전하기에는 짧은 문자메시지"라며 미니홈피와 문자 메시지가 연인과 소통할 수 있는 큰 통로가 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시대상을 반영한 가사들이 사용되는 이유는 뭘까. 이에 대해 대중문화평론가 강태규 씨는 "대중가요는 시대적 보편성을 구체화하기 위해 당대의 대표적인 세태, 구체적인 정황, 행태 등이 등장하는 것"이라며 "지금의 가요는 그런 것들과 유행어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강 씨는 "이전에도 시대상을 반영한 가사는 항상 있어왔지만 지금처럼 노골적으로 드러나진 않았었다"며 "전통적으로 가사에 차용했던 것보다 급진적이고 과격한 단어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 강 씨는 "이런 단어들이 익숙해진 것은 미디어의 역할이 컸는데 구체적인 물건 등의 가사가 남발되다 보니 가사가 식상해졌다"며 "시대의 정서를 예술적으로 표현해 거대 담론을 만들던 노랫말들이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많이 사라졌다"고 안타까워했다.
<저작권자 © 스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