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남자가 한 여자를 만났다. 아마 클럽 쯤 된다. 그 남자의 마음, 2가지 버전이다.
#1. Doridori = 남자가 이런다. '..서로를 본 순간 알 수 없는 무거운 중력에 이끌려가/ 감성만이 지배하는 상태 지금 당장의 설레임에/ 어차피 다시는 안 볼 사이 오늘밤만 즐기면 되는 사이/ 집착하지마 우린 그냥 외롭지 않기 위해/ 영혼을 숨겨둔 채 즐겼을 뿐..' 어떤 마음인지 명약이 관화하다.
#2. Dance With Me = 남자가 이번엔 이런다. '..그녀는 마치 오아시스 같이/ 척박했던 나에게 나타났어/ 어질 적 읽던 동화에서나 보던/ 거짓말처럼 나의 눈을 멀게 했어/ 난 이제 멈춰버렸어..그대 나와 함께 춤춰요/ 노래 불러요 달아나지 마요..' 경어체까지 동원하는 이 남자, 뭐지?
여자 입장에서라면 호불호가 갈릴 상황. 하지만 이 2가지 버전이 '텍스트'를 벗어나 밴드 '사운드'를 올라타면, 그 호불호 선택이라는 게 쉽지가 않다. 판타스틱드럭스토어(보컬-기타 임원혁, 기타 이형욱, 베이스 강연욱, 드럼 김교진)가 노래하고 연주한다.
#1-1. Doridori = 이미 힌트는 초반에 있었다. 개러지록밴드의 첫 정규앨범의 첫 트랙을 어쿠스틱 기타로 시작하는 이 변칙. 마치 전세계 오디오파일들을 숨죽이게 한 캐나다 기타리스트 제시 쿡의 그것처럼. 하지만 이내 일렉 기타의 빠르고 촘촘하며 리드미컬하고 파워풀한 질주가 시작된다. 이 속도감, 이 아찔함. 텍스트에서는 그냥 지나쳤던, 소위 '사비'가 가슴에 박힌다. '..내게 와 내게 와..' 이 남자, 멋있다.
#2-1. Dance With Me = 마찬가지다. 개러지록밴드의 첫 정규앨범의 마지막 트랙을 이렇게 서정적으로, 그것도 밴드 사운드를 한 풀 죽이면서까지 내놓다니. 그리고 한없이 나긋나긋할 것만 같았던 이 남자, 목소리를 들어보면 그게 아니다. 보드라운 듯하지만 은근히 거칠고, 결이 고운 듯하지만 은근히 강하다. 그리고 어느새 따라부르게 되는 '사비'. '..지금 너에게 지금 너에게 지금 너에게..' 이 남자, 멋있다.
지난 5월30일 나온 판타스틱드럭스토어의 정규 1집 'DANCE WITH ME'는, 어쩌면 이 땅의 수많은 '보컬음반'이 목표로 삼은 그 '경지'에 조금은 다가선 오디오북이다. 텍스트(가사)가 사운드(작곡, 편곡, 연주, 녹음, 마스터링)를 만나 전혀 다른 의미 혹은 성숙한 의미를 띄고, 사운드는 텍스트를 만나 더 깊은 울림을 갖게 되는 그런 경지. 더욱이 보컬이 최소 2개 이상의 사운드를 상대해야 하는 밴드 음반에서 이런 경지에 오른 점은 놀랍다. 임원혁의 보컬은 때로는 앞으로 나서고, 때로는 뒤로 물러서는데 어떤 경우에도 사운드에 묻히는 일이 없다.
11곡이 담긴 이 앨범은 전체적으로 매끄럽고 자유롭다. 남자의 결이 전혀 다른 두 마음처럼, 1번트랙 'Doridori'부터 11번트랙 'Dance With Me'까지 어디 한 구석에 얽매이질 않는다. 연주 스타일의 이러저러한 아집, 지루한데다 고루하기까지 한 장르적 족쇄, TV 오디션 프로그램용 보컬의 정석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그냥 매끄럽고 자유롭다(사실 이게 강호의 고수가 다다를 수 있는 경지이지만). 오디오적인 쾌감은 'Doridori'와 타이틀곡 'Wonder Woman'이 가장 앞서고, 밴드사운드적인 쾌감은 'Can't Take My Eyes Off You', 'Old Man', '마른 하늘에 비가 내린다'가 앞선다. 'Dance With Me'는 머리보다 몸이 먼저 짜릿짜릿 반응하는 대표곡. 이 밴드, 이 음반, 모든 걸 다 떠나 멋있다.
그런데 '대놓고인디' 시리즈 마지막을 장식한 이 밴드가, 아뿔싸, 이미 무기한 활동중단을 선언한 상태다. 이들을 가까이서 지켜봐온 미러볼뮤직 이창희 대표의 말은 그래서 숨죽여 귀담을 만하다.
"2012년 4월경 어느 목요일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유통 문의 음악들을 모니터링하고 있었다. 그 중 낯익은 이름이 보였다. '판타스틱드럭스토어'. 2011년 가을 갭 본 투 록 넥스트 인디스타 부문 인터넷 심사를 맡았는데 그 중 유독 눈에 띄는 밴드가 있었다. 그 밴드가 바로 판타스틱드럭스토어였고 이 밴드는 그해 인디스타 부문 1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쌈지 사운드 페스티벌의 숨은 고수에도 선정되었다.
그 밴드가 몇개월 후 마스터링까지 직접 해치워버리고 미러볼뮤직을 찾아온 것이다. 마치 오래 전부터 알고 있던 사이처럼 반가웠다. 이렇게 그들은 첫 EP를 발표하고 2012년 한 해 동안 홍대의 인디신을 종횡무진했으며 제법 인기있는 신인 밴드가 되었다. 그러나 늘 아쉬운게 있었다. EP 앨범의 제작이 가내수공업 형태였다보니 그 퀄리티를 다음 앨범에서는 높이고 싶었다. 그래서 정규앨범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2013년 5월30일 판타스틱드럭스토의 정규 1집이 발매되었다. 마스터의 질감이 달랐다. 정말 생동감이 넘쳤다. 모든 사운드가 두터워지고 날카로워졌다. 그들은 다시 질주하였다. 밴드 스스로 기획한 장기 공연 '판타스틱먼쓰'(Fantastic Month)는 6월 한 달 내내 홍대 클럽을 뜨겁게 달궜다. 7월부터 10월까지 여러 록 페스티벌과 클럽 공연을 소화했다. 대학 축제 섭외도 많아졌다. 록 밴드로서 생명력이 더욱 강해졌다. 이 모든 것이 음악의 힘이었으리라.
그러나 그들은 더 높이, 더 멀리 뛰기 위해 제법 많이 움츠리기로 했다. 11월23일 콘서트를 마지막으로 잠정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그들은 음악의 중요성을 이 한 해 동안 많이 느꼈다고 말하며 더 좋은 음악을 창작하기 위해 무기한으로 활동을 중단했다.
대한민국에서 록 음악을 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어떤 현실이 존재하는 걸까? 아티스트로서, 작가로서 삶과 태도는 어때야 하는 것일까?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인간의 노동으로서 음악은 어떤 위치에 있는 것일까? 아티스트와 작품이 중심이되는 시장은 자본주의에서 가능한 것일까? 록 음악, 인디음악신 한 가운데 있지만 계속 질문에 질문을 던지게 된다."
아쉽고 안타깝다. '대놓고인디'에 '대놓고'를 집어넣어야 할 정도로 척박하기만 한, 이 쏠림현상 가득한 국내 음악소비시장에서, 아티스트가, 밴드가, 제작사가, 배급사가 힘들어 하는 그 모든 것이. 'Doridori'에서 들려준 그들의 흥겨운 질주는 결국 위태로운 뒷걸음질이었고, 'Dance With Me'에서 들려준 달콤한 속삭임은 고민의 늪에서 터져나온 단말마였던 건가. 이 감정이 부디 과장된 착각이길. 대중미디어의 한 기자로서, 한 평범한 음악 팬으로서 판타스틱드럭스토어에게 이 노래 2곡을 들려주고 싶다. '..내게 와 내게 와 망설이지마 돌아보지마 너도 원했잖아..'(Doridori), '..어디라도 난 달려갈 수 있어 지금 너에게 지금 너에게 지금 너에게..'(Dance With Me)
cf. [대놓고인디]2013 올해의 음반 20선 = ①로맨틱펀치 2집 'Glam Slam' ②옥상달빛 2집 'Where' ③민채 EP 'Heart of Gold' ④프롬 1집 'Arrival' ⑤장미여관 1집 '산전수전 공중전' ⑥불독맨션 EP 'Re-Building' ⑦비둘기우유 2집 'Officially Pronounced Alive ⑧어느새 1집 '이상한 말 하지 말아요' ⑨김바다 EP 'N.Surf Part.1' ⑩야야 2집 '잔혹영화' ⑪라벤타나 3집 'Orquesta Ventana' ⑫서상준 EP 'Wannabe' ⑬10cm EP 'The 2nd EP' ⑭강백수 1집 '서툰말' ⑮윤석철트리오 2집 'Love Is A Song' 16. 선우정아 2집 'It's Okay, Dear' 17. 권영찬 EP 'Op.01' 18. 아마도이자람밴드 1집 '데뷰' 19. 김목인 2집 '한 다발의 시선' 20. 판타스틱드럭스토어 1집 'Dance With Me'
김관명 기자minji2002@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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