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메이커](130)더 텔 테일 하트 김형군 대표
[편집자주] [편집자주] [스타메이커] 스타뉴스가 스타를 만든 '스타 메이커'(Star Maker)를 찾아갑니다. '스타메이커'는 대중의 사랑을 받는 스타 뿐만 아니라 차세대 스타를 발굴한 국내 대표 '엔터인(人)'과 만남의 장입니다.

2010년 8월 데뷔한 잠비나이는 이일우(기타, 피리, 태평소), 김보미(해금), 심은용(거문고), 최재혁(드럼), 병구(베이스)로 구성된 5인조 밴드다. 전통악기를 중심으로 하드코어 펑크, 메탈, 포스트록, 프리 재즈 등을 뒤섞은 실험적이고 참신한 음악을 선보여 온 이들은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네 차례나 수상, 2018 평창동계올림픽 폐회식에 참여하며 독보적인 위치에 올라섰다.
이런 잠비나이에 대한 수식어 중 하나가 바로 '해외가 먼저 주목한 아티스트'다. 그만큼 해외에서 남다른 성과를 써내려 왔다는 의미다. 코첼라(미국), 글래스톤베리(영국), 프리마베라사운드(스페인), 헬페스트(프랑스), 로스킬레(덴마크) 등 세계 주요 음악 페스티벌들 무대에 선 잠비나이는 매년 50회가 넘는 해외 공연을 다녔다.
잠비나이가 이 자리에 올라서기까지 좋은 음악은 필수 요소였지만, 이와 더불어 중요한 역할을 맡아 온 한 사람이 있다. 소속사 더 텔 테일 하트의 김형군 대표다. 자신을 "성공한 잠비나이 덕후"라고 말한 김형군 대표는 잠비나이의 음악에 대한 믿음과 애정 하나로 열렬한 서포트를 보내온 한 사람이다.

-더 텔 테일 하트라는 회사와 대표님이 하시는 일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더 텔 테일 하트는 직원이 한 명이예요. 저뿐이죠. 앨범 제작 전반, 매니지먼트, 해외 업무 총괄을 비롯해서 포스터 디자인, MD제작까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고 있어요. 운전 빼고는 다 해요. 면허를 최근에 땄습니다.
-음악적으로는 관여를 안 하시나요.
▶음악에는 전혀 개입하지 않아요. 아티스트가 하는 대로 따르는 게 저의 철칙이에요. 저는 아티스트가 만들고 난 결과물을 어떻게 잘 전달할 것인가 고민하는 직업이에요.
-하드코어·펑크 전문 레이블 GMC레코드에 몸담고 계시다가 2015년 잠비나이와 함께 더 텔 테일 하트를 론칭하셨어요. 잠비나이와 첫 인연과 회사를 론칭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잠비나이 리더인 이일우 씨가 몸담고 있는 49몰핀스라는 밴드가 GMC 소속이었어요. 이 팀도 국악전공자가 세 명 있었어요. 2010년쯤 상상마당 레이블마켓 행사에서 갤러리 공간에서 특별 공연을 하게 됐는데, 49몰핀스 음악을 국악으로 편곡한 무대를 보여줄 수 있는지 물어봤어요. 이일우 씨가 그건 힘들다면서 대신 다른 친구들과 하는 프로젝트가 또 있다고 하면서 그걸 해보면 어떻겠냐고 물어봤어요. 이일우 씨의 음악적 재능은 충분히 잘 알고 있으니, '일우가 하는 건 재밌겠구나'라는 생각으로 노래도 안 들어보고 오케이 했어요. 그게 바로 잠비나이였어요.
그 때 보여준 무대가 잠비나이 초기 단계라서 지금보다 호흡이 더 길고 실험적이었어요. 10분동안 엠비언스 스타일로 흘러가는 노래도 있었어요. 당시 관객이 150~200명 정도 있었는데, 아티스트 정보가 하나도 없는 상황에도 모두 빨려들어갔어요. '이걸 진지하게 해보는 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대화를 나누고 EP작업을 시작하고 계속 같이 하게 됐어요.
2014년까진 GMC레코드에서 일을 하면서 당시 다른 소속 아티스트가 많았는데, 잠비나이에 신경 쓰니 다른 아티스트를 위해 일 할 여유가 없더라고요. 서로에게 실례가 될 것 같다는 생각에 GMC레코드를 그만두고 잠비나이만 담당하는 더 텔 테일 하트를 만들었어요. 회사라는 게 사업자만 내면 되거든요. 그렇게 일을 하다 보니 다른 욕심도 있어서 개인적이 취향의 셀렉션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에 개인 프로젝트 같은 것들을 하고 있어요. 제 취향의 아티스트 중에 다른 사람들이 케어하지 않는 아티스트를 서포트한다거나, 해외 아티스트들의 내한 공연을 진행하는 식으로요. 빌리카터라는 국내 밴드도 초기 EP 두 장을 맡아서 했고, 진저 루트(Ginger Root)라는 미국 아티스트의 아시아 일을 도와주기도 했어요. 일본 포스트록 밴드인 모노(MONO), 토리코(tricot) 내한 공연을 만들기도 했고요.
-회사 이름이 독특하네요.
▶에드거 앨런 포 소설의 제목이에요. 한국어로는 '고자질하는 심장'이라고 해석되는데, 나한테 솔직한 작업을 해볼 수 있는 공간을 생각하고 이름 지었어요. 엄청난 돈을 벌겠다는 목적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걸 해보겠다는 마음을 담았어요.

-잠비나이 하면, '해외에서 먼저 알아본 밴드'라는 수식어가 있어요. 해외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 시점과 계기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사실 잠비나이는 처음부터 해외진출을 노린 팀은 아니었어요. 저나 일우 씨나 하드코어씬에서 출발했는데, 하드코어와 펑크는 언더그라운드 장르라 국제 교류가 잘 이뤄지고 있어요. 그들만의 세계가 있어요. 아주 예전엔 서로 카탈로그를 주고 받고, CD를 트레이드해서 팔고, 티셔츠도 서로 사고 팔았어요. 그냥 공연하러 가서 공연도 하고요. 인터넷이 발전하면서 이메일로 주고받을 수 있게 되면서 교류가 더 커졌죠. 언더그라운드씬에서는 이런 교류가 자연스러웠어요.
결론적으로 잠비나이는 '해외를 겨냥해 음악을 하자'가 아니라, '우리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어느 곳이든 갈 수 있다'라는 마음이었어요. 처음엔 고민이 많았어요. 자본이 넉넉하지 않아서, 해외에서 초청을 받아도 비행기 표값을 어떻게 마련할까 고민이었죠. 예술경영지원센터 서울아트마켓 팸스초이스에 선정되면 1년에 한 번씩 항공권을 지원해주더라고요. 운 좋게 2012년 팸스초이스 선정돼서 아트마켓 공연 시장을 경험하게 됐어요. 그 후에 브라질, 노르웨이 등 해외에서 공연 러브콜이 오면서, 이걸 좀 더 적극적으로 해보는 것도 방법이겠구나 싶었어요.
그 다음에 멤버들이 얘기를 했어요. 월드뮤직엑스포(WOMEX, 워멕스)에 가고 싶다고. 워멕스는 유럽 최대 뮤직마켓인데, 팸스초이스의 음악적 인터네셔널 버전 행사에요. 2013년엔 여기에 지원하기 위해 준비하면서, 그 기간동안 저희가 지원할 수 있는 국내 모든 음악 쇼케이스를 다 지원했어요. 운 좋게 지원한 모든 곳에 다 선정됐고요. 울산 아시아퍼시픽뮤직미팅(APaMM, 에이팜), 서울 뮤콘(MU:CON), 잔다리에서 WOMEX까지. 불과 한 달 반 사이에 다 이어졌고, WOMEX가 마지막이었는데 그간 쌓인 반응이 여기서 터졌어요. 그리고 2014년에 본격적으로 해외투어를 시작했어요.
-해외에서 잠비나이를 이렇게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몇 가지 포인트가 있어요. 첫 번째는, 일단 라이브에서 아티스트가 보여주는 아우라가 있어요. 팔불출 같은 말이지만, 압도적이에요. 저는 잠비나이 공연을 3~400회는 봤어요. 한 번도 지루하다고 생각해본 적 없어요. 음악 자체가 갖고 있는 서사, 그걸 라이브에서 구현하는 아티스트와 사운드오퍼레이터의 호흡, 서로의 능력이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순간. 잠비나이는 모든 게 압도적이에요. 그게 공연을 본 모든 분들의 잠비나이의 매력으로 가장 먼저 손에 꼽는 이유예요.
두 번째는 대부분 생각하는 이유일 거예요. 굉장히 전통음악적이지 않는 음악을 전통악기로 연주하는 특이점. 해외 관객 혹은 그런 장르 팬들에겐 익숙하게 들릴 수 있는 문법인데, 그걸 다른 악기를 가지고 연주하고 있다는 거죠. 제가 생각하기엔 이건 첫 단계 같아요.
저도 종종 페스티벌 디렉터들에게 물어봐요. 그러면 잠비나이는 처음 볼 때는 특이하고, 이질감이 있자만 결국 공연에서 남는 정서는 보편성이라고 해요. 어떤 분들은 잠비나이에게 보편성이 없는 게 아니냐고 얘기하는데, 조금 더 들어보면 정말 보편성을 갖고 있어요. 순수한 아름다움 같은 거죠. 접근성과 보편성을 헷갈려하시는데, 잠비나이가 접근이 용이한 음악은 아니에요. 접근이 용이하지 않다고 그게 보편적이지 않는 건 아니다. 잠비나이는 에센셜(essential)한 미(美)를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인터뷰②로 이어짐
공미나 기자 mnxoxo@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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