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망고문이 따로 없다.
보이 그룹 빅뱅(BIGBANG)과 전 멤버 탑(T.O.P, 본명 최승현)의 얄궂은 행보가 도를 넘었다. 각자의 길을 걷겠다고 쿨하게 선을 그어놓고선, 정작 결정적인 순간마다 서로의 그림자를 교묘하게 밟으며 대중의 향수를 자극하고 있다. 쿨한 척하지만 미련이 뚝뚝 묻어나는 이 모순적인 태도는 결국 십수 년간 이들을 지지해 온 팬덤을 상대로 한 지독한 희망고문에 불과하다.
최근 빅뱅은 데뷔 20주년을 기념하는 신곡 'BiiiG' 발매를 앞두고 타이틀 포스터를 공개했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 팀에서 탈퇴한 탑 역시 자신의 첫 아시아 팬미팅 투어 티저 포스터를 내놓았다. 문제는 두 포스터가 마치 짠 것처럼 완벽한 평행이론을 달리고 있다는 점이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빛이 새어 나오는 거대한 문, 그리고 그 빛을 향해 걸어가는 실루엣까지. 누가 봐도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동일한 세계관의 연장선이다.
빅뱅은 멤버 3인(지드래곤, 태양, 대성)의 실루엣에 화려한 삼원색을 입혀 굳건한 3인 체제를 강조했고, 탑은 무채색의 흑백 톤으로 홀로서기를 연출했다. 연예계에서 흔히 쓰이는 연출 기법이라 핑계를 댈 순 있겠지만, 하필 이 타이밍에 이렇게 노골적으로 유사한 미장센을 선보인 것은 시각적 희망고문이자 다분히 의도적인 노이즈 마케팅으로 보인다.

이들의 앞뒤가 안 맞는 행보는 올해 초부터 본격화됐다. 탑이 첫 솔로 정규앨범 'TOP SPOT - 다중관점 (ANOTHER DIMENSION)'을 발매하자 지드래곤, 태양, 대성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개인 SNS에 스트리밍 인증샷을 올리며 공개적인 서포트에 나섰다. 심지어 지드래곤은 탑의 컴백 소식을 전하는 한 매체의 SNS 게시물에 버젓이 '좋아요'를 누르며 화제의 중심에 섰다.
더욱 황당한 것은 탑의 신곡 가사다. 탑은 수록곡 'OVAYA (A SMALL, FILTHY SHOW WINDOW)'를 통해 "I'm so sorry but I loved '난 떠나 BIG-BANG!'"이라는 가사를 불렀다. 빅뱅의 히트곡 '거짓말'의 시그니처 구절을 교묘하게 비틀어 자신의 그룹 탈퇴를 못 박은 것이다. "난 떠났다"며 선을 긋는 당사자나, 그런 당사자를 향해 공개적으로 박수를 쳐주는 남은 멤버들이나, 대중의 눈에는 그저 기괴한 '그들만의 리그'로 비칠 뿐이다.
이 기만극의 정점은 최근 개설된 빅뱅의 데뷔 20주년 기념 공식 SNS 계정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현재 이 공식 계정의 팔로우 수는 단 5명이다. 지드래곤, 태양, 대성,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 그리고 놀랍게도 탑이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팀에 막대한 피해를 안긴 채 떠난 멤버를 20주년 공식 계정에서 버젓이 팔로우하고 있는 이 촌극을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탑의 과거 행적을 되짚어보면 이 상황은 더욱 씁쓸하다. 탑은 지난 2016년 대마초 흡연 혐의로 기소돼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으며 사회적 지탄을 받았다. 이후 그는 개인 SNS를 통해 연예계 은퇴 의사를 밝혔고, 결국 도망치듯 빅뱅에서도 탈퇴했다. 하지만 그는 지난 2024년 12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 시즌2의 후광에 숨어 슬그머니 연예계로 복귀했다.
아티스트 개인 간의 친분과 우정을 탓할 이유는 전혀 없다. 십수 년을 동고동락한 세월이 하루아침에 끊어질 리 만무하다. 무대 뒤에서 함께 술잔을 기울이든, 서로의 앞날을 응원하든, 그것은 온전히 그들의 사생활이다.
하지만 그 우정을 굳이 공개적인 영역으로 끌고 나와 판을 까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팬들은 이미 탑의 사회적 물의와 무책임한 탈퇴 과정에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은 세 멤버를 지키기 위해 20주년이라는 시간을 묵묵히 버텨온 이들이다.

이런 팬들 앞에서 보란 듯이 엇갈린 문턱을 연출하고, 탈퇴를 조롱하듯 인용한 가사를 부르며, 20주년 공식 계정의 팔로우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려두는 행위는 무례함을 넘어선 폭력이다.
단절할 것이라면 철저하게 단절해야 한다. "우리는 여전히 끈끈하다"는 식의 알량한 과시는 팬들의 곪은 상처를 헤집는 짓이다. 더 이상 서로의 이름에 기대어 대중의 혼란을 부추기는 이기적인 희망고문은 멈춰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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