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지배하지만 본국선 근본적 변화·불확실성 직면"

전 세계를 사로잡은 한국 대중문화가 내부적으론 심각한 구조적 위기를 맞고 있다는 영국 언론의 분석이 나왔다.
영국 가디언지는 28일(현지시간) "'거의 붕괴': 한국 영화 위기의 이면, 그리고 K팝도 안전하지 않은 이유(Almost collapsed: behind the Korean film crisis and why K-pop isn't immune)"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두 산업 모두 세계를 지배하고 있지만, 이제 본국에서 근본적인 변화와 불확실성에 직면해 있다"고 보도했다.
가디언은 한국 문화 예술 수출액이 2024년 151억8000만 달러(약 22조 원)를 기록하며 문화 강국 입지를 굳혔지만, 정작 한류를 만든 두 축인 영화와 케이팝이 생존 전략 자체가 창의성의 기반을 훼손할 수 있는 전환기를 겪고 있다고 진단했다.
영화 산업 "거의 붕괴" 수준
영화 산업의 쇠퇴가 가장 극적이다. 가디언에 따르면 한국 영화 관객 수는 2019년 약 2억2600만 명에서 1억2300만 명으로 45% 급감했고, 박스오피스 매출도 13억 달러에서 8억1200만 달러로 떨어졌다.
투자가 급격히 둔화되면서 한때 연간 40편 이상의 한국 영화를 개봉하던 배급사들이 2025년엔 약 20편만 내놓을 것으로 예상되며, 2026년은 "더욱 심각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팬데믹 시기 적체됐던 작품들이 소진되고 신규 제작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명량' 등 이순신 3부작을 연출한 김한민 감독은 지난해 국회에서 "영화 산업이 거의 붕괴됐다(almost collapsed)"고 가장 직설적인 경고를 던졌다.
한양대 제이슨 베처베이즈 교수는 "단기 침체가 아니라 구조적 약화"라며 "수년간의 마진 축소와 비용 상승이 신인 감독들이 성장하고 기존 영화 제작자들이 실험하던 중간 예산 제작을 고갈시켰다"고 분석했다. 그는 "인재 파이프라인의 상당 부분이 이제 투자가 더 안정적이고 제작 일정이 예측 가능한 스트리밍 플랫폼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극장 개봉과 스트리밍 공개 사이의 '홀드백 기간'도 많은 작품에서 불과 몇 주로 짧아지면서 관객들이 극장 티켓을 살 이유가 줄어들고 있다. 이런 압박은 이미 역사적인 통합을 촉발했다. 롯데시네마와 메가박스 체인 운영사가 총 1682개 스크린 통합을 계획하고 있는 것이다.
극장들이 아이맥스와 돌비 같은 프리미엄 포맷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지만, 국내 영화의 안정적인 공급 없이는 이런 업그레이드만으로 지속적인 회복을 이끌어낼 수 없다는 게 업계 내부자들의 지적이다.
케이팝의 전환점
영화만 압박받고 있는 게 아니다. 가디언은 한국의 가장 강력한 문화 수출품 중 하나로 여겨지던 케이팝도 불확실성의 시기에 접어들고 있다고 진단했다.
2024년 피지컬 음반 판매량이 10년 만에 처음으로 19.5% 감소했다. 1억1520만 장에서 9270만 장으로 떨어진 것. 가디언은 2025년 말까지도 이 하락세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전했다. 여기엔 해외 발매도 포함되지만, 한국 차트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주요 기획사들은 다른 곳에서 활로를 찾았다. 콘서트 수익이 이제 전통적인 음반 판매를 넘어서며 글로벌 투어로 피벗하고 있는 것.
애리조나주립대 정아름 교수는 "K팝 기업들이 점점 더 가장 헌신적인 팬들을 우선시하기 시작했다"며 "K팝 기업들은 주로 핵심 팬덤에 맞춰가기 시작했고,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겠다는 생각은 어느 정도 포기했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기업들이 핵심 팬덤의 니즈에 맞출 때, 핵심 팬덤은 돈을 쓰고 지지한다"며 "이런 좁은 초점이 이제 아이돌을 모집하고, 훈련하고, 마케팅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가디언은 이 슈퍼팬 중심 모델이 현재 한국 외 산업들에 의해 복제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정 교수는 이런 접근법이 BTS나 블랙핑크를 정의했던 케이팝 황금기 같은 돌파구적 글로벌 현상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했다.
한편 한때 실험과 다양성에 필수적이었던 소형 기획사들은 상승하는 제작 비용과 팬 지출의 축소된 점유율에 짓눌려 생존 투쟁을 벌이고 있다.
한국 문화 개념의 탈한국화
가디언은 동시에 한국 문화 아이디어의 글로벌 성공이 더 이상 한국 기업들이 수익을 얻는다는 것을 보장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즈'가 플랫폼에서 가장 많이 본 애니메이션 영화가 됐다. 이 영화는 한국계 캐나다인 매기 강이 공동 감독했고 여러 한국계/한국계 미국인 성우들이 참여했지만, 한국 미학을 기반으로 한 미국 제작물이었다.
정 교수는 이를 "진정한 케이팝 제품이라기보다는 탈영토화된, 혼종적 케이팝 아이디어"라고 정의하며, 한국 문화 개념이 한국의 참여 없이도 국제적으로 재현될 만큼 이식 가능해졌다고 분석했다. 한국식 방법론으로 훈련된 유사 그룹들이 이제 일본과 동남아시아에서 등장하며 직접적인 경쟁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럼에도 정 교수는 관객들이 여전히 한국 문화와의 현실 세계 만남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영화 개봉 후 박물관, 식품 브랜드, 화장품 회사들이 화면에 등장한 아이템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경험했다는 것이다.
베처베이즈 교수는 창의적 역학 관계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지적했다. 국내 제작이 더욱 공식화되면서, 미국 스튜디오와 한국 디아스포라 창작자들이 '미나리', '성난사람들(비프)', '케이팝 데몬 헌터즈' 같은 작품에서 보듯 한국 문화 요소를 끌어내기 시작했다는 것. 그는 "한국이 할리우드의 장기였던 영역에서 할리우드를 이겼지만, 이제는 마치 할리우드가 한국의 장기인 영역에서 한국을 이기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정부 대응과 해외 확장, 그러나...
가디언은 한국 정부가 5년간 51조4000억 원(260억 파운드) 규모의 포괄적인 문화 투자 계획으로 대응했다고 전했다. 이는 한국의 글로벌 문화적 영향력 확대와 콘텐츠 수출부터 예술 교육, 관광, 스포츠에 이르는 광범위한 문화 산업 강화를 목표로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또한 JYP 엔터테인먼트 설립자이자 케이팝 거물인 박진영을 새로운 대통령 문화위원회 공동의장으로 임명해 국제적으로 한국 대중문화 확산을 촉진하도록 했다.
하이브와 SM엔터테인먼트 같은 주요 기획사들은 동남아시아, 인도, 중국에 새로운 자회사를 열고 있다. 그러나 비평가들은 해외 확장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한때 한국의 문화적 부상을 견인했던 국내 인프라를 간과할 위험이 있으며, 원래 국제 관객을 끌어들였던 문화적 진정성을 침식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정 교수는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이런 방식으로 계속 수익을 낼 것"이라면서도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을 사로잡은 '케이팝 데몬 헌터즈' 같은 걸 만들어내긴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재정적 성공만으로는 창의적 재생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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