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일 잠실구장. 0-1로 뒤진 넥센의 9회초 마지막 공격. 2사 2루 기회. 마지막 타자는 유한준이었다. 이때까지 두산 선발 마야는 '노히트' 투구를 펼치고 있었다. 초구는 파울. 2구는 파울. 이어 제 3구째. 마야의 바깥쪽 공에 유한준의 방망이가 헛돌아갔다. 마야의 136구 역투. 경기 종료. 마야가 노히트노런을 달성했다.
이후 마야는 두 주먹을 불끈 쥔 뒤 모자를 땅으로 내동댕이치며 포효했다. 하늘로 두 팔을 번쩍 든 채 자신의 가슴을 쿵쿵 쳤다. 그는 포수 양의지와 뜨거운 포옹을 나눴다. 곧이어 두산 선수들이 마운드로 달려왔다. 이들은 물병 안에 든 물을 뿌리며 마야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두산 마야가 넥센전에서 9이닝 동안 피안타 없이 8탈삼진 3볼넷 무실점으로 노히트노런을 달성했다. KBO리그 통산 12번째 노히트노런. 아울러 지난해 6월 24일 찰리(NC)가 LG전에서 역대 11번째 노히트 노런을 달성한 뒤 9개월 보름여 만에 나온 대기록이었다. 외국인 투수 통산 2호. 두산 선수로는 1988년 4월 2일 장호연 이후 역대 두 번째 노히트노런이었다.
참으로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마야의 격한 세리머니로 감동은 배가 됐다. 더욱이 넥센 강타선을 상대로 달성한 노히트노런이기에 그 의미가 컸다. 지난 시즌 찰리에 이어 2년 연속 외국인 노히트노런 투수 탄생 순간. 그동안 노히트노런이란 대기록은 외국인 선수 출전 제도가 도입된 1998년 전까지 토종 선발들의 차지였다.
1984년 방수원(해태), 1986년 김정행(롯데), 1988년 장호연(OB), 1988 이동석(빙그레), 1989년 선동열(해태), 1990 이태일(삼성), 1993년 김원형(쌍방울), 김태원(LG), 1997넌 정민철(한화), 2000년 송진우가 마지막이있다. 이후 14년 만인 지난해 6월 찰리의 노히트노런이 나왔다.
이날 넥센의 선발은 밴 헤켄이었다. 밴 헤켄은 지난해 20승을 올리며 다승왕을 차지한 국내 최고의 외국인 투수. 이날도 그의 호투는 이어졌다. 밴헤켄은 6이닝 5피안타 3볼넷 4탈삼진 1실점(1자책) 역투를 펼쳤다. 그러나 팀 타선의 침묵으로 고개를 숙였다. 밴 해켄은 6회를 마친 뒤 마운드를 조상우에게 넘겼다.

넥센은 지난 7일 두산과의 주중 3연전 중 첫 경기에서 17-4 대승을 거뒀다. 당시, 넥센은 역대 팀 최다 안타 신기록(27개)을 작성하며 두산 투수진을 초토화시켰다. 두산 쪽에서는 토종 에이스 유희관이 선발로 나왔으나 5⅔이닝 5실점으로 첫 패전의 멍에를 썼다. 그 뒤를 이어 오현택, 함덕주, 이현호, 김수완, 장민익이 차례로 마운드에 올랐으나 모두 실점을 내줬다. 넥센 타자들은 물 만난 고기처럼 수시로 안타를 쳐냈다.
두산은 8일 넥센전에서 11개의 안타를 몰아친 끝에 9-4로 승리했다. 이날 넥센의 투수진은 김대우-김동준-이상민-김영민-구자형 순이었으나 두산의 화력을 막지 못했다. 두 경기 동안 특히 눈에 띈 것은 토종 투수들의 부진. 토종 불펜진이 난타를 당한 끝에 계속해서 큰 점수 차로 승패가 갈렸다. 앞서 양 팀은 56개의 안타를 때려냈다. 하지만 폭발했던 방망이도 정상급 외국인 투수인 밴 헤켄과 마야 앞에서는 철저하게 침묵했다.
류현진이 메이저리그로 떠난 이후, 실력 있는 토종 선발로는 윤성환, 양현종, 손민한, 김광현, 장원준 등이 꼽히고 있다. 그러나 외국인 투수 둘이 5선발 중 2자리를 매번 차지한 가운데, 힘 있는 토종 선발은 더욱 찾기 힘들어졌다. 5선발이 제대로 돌아가는 팀 역시 많지 않다. 이 모든 것이 토종 선발들의 부진과 실종에 맞물려 벌어진 상황. 외국인 선수의 2년 연속 대기록 달성과 동시에, 토종 투수들의 현주소를 볼 수 있었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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