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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하일성씨, 11살부터 혼자 하숙 - 파월장병- 교사- 해설..'파란만장'

故하일성씨, 11살부터 혼자 하숙 - 파월장병- 교사- 해설..'파란만장'

발행 :

김재동 기자
故 하일성 야구해설가.
故 하일성 야구해설가.


8일 송파구의 사무실에서 숨진 채 발견된 야구해설가 하일성씨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유복한 유년시절을 거쳤던 그는 군장성 출신인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혼하면서 초등학교 5학년인 11살 나이부터 하숙생활을 시작했다. 아버지는 전방부대로 발령받고 어머니는 홍콩으로 이주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서울에서 공부해야 큰 사람이 된다’는 이유로 그를 혼자 남겨두었다. 그는 생활비에 부족함은 없었으나 김밥을 싸갈 수 없어 소풍이나 운동회 때는 결석을 일삼았다고 당시의 외로움에 대해 회고한 바 있다.


성동고등학교 재학 중이던 1964년부터 야구를 시작, 1967년 야구특기생으로 경희대에 진학했다. 군 입대 후 휴가 중 민간인과 불의의 싸움에 휘말리며 영창 대신 월남행을 택해 파월장병으로 1년을 보냈다. 월남서 돌아와 복학을 하면서는 야구선수 아닌 교사의 길로 진로를 바꾼다.


1974년 양곡종합고등학교 체육교사로 부임했을 때 만난 제자와 결혼에 이른 그의 로맨스는 유명하다. 그는 환일고 체육교사 신분이던 1979년 6월 TBC 라디오서 청룡기 고교야구를 중계하며 야구해설에 입문한다. 입문 당시 그는 허스키한 목소리로 인해 첫 방송 직후 퇴출될 뻔 했다고 한다.


교사와 야구해설을 병행하던 그는 1983년 교사직을 그만두고 야구해설에 전념한다. 그는 경기 3시간 전엔 무조건 경기장을 찾아 코칭 스태프와 선수들을 샅샅이 사전 인터뷰해 중계 데이터를 쌓아온 것으로 유명하다. 프로야구 한 시즌을 치르고 나면 자차 주행거리가 4만km가 넘는다는 하소연이 그의 입버릇이기도 했다.


해설가로서 그의 입담은 유명해서 골프공조차 본 적 없던 시절 펑크 난 골프방송도 입심으로 때운 이력이 있고 90년 베이징 아시안 게임때는 레슬링경기 해설에 동원된 전력도 있다. 그의 활발한 활동은 일본 NHK 방송도 주목, 동아시아 각국 명사를 탐구하는 ‘후즈 후’(Who’s Who)라는 프로그램에서 정몽준씨와 함께 한국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란 타이틀로 20분짜리 다큐멘터리를 제작, 방영하기도 했다.


2002년 심근경색으로 건강에 큰 위기를 넘긴 이후 위 종양 제거 수술, 담낭 제거 수술을 받는 등 투병의 과정을 거치기도 했다.


2006년 5월부터 2009년 3월까지는 제11대 KBO 사무총장을 역임했다. 야구 국가대표팀이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와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준우승할 당시 야구단 단장으로 대표팀을 이끌었다.


그는 2009년 다시 야구해설위원으로 방송에 복귀했지만 2014 시즌 이후 야구해설에서 손을 뗐다.


그는 한때 유산으로 물려받은 서초동 땅을 팔아 테헤란로 인근의 모텔을 인수하는 등 재력이 택택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최근엔 "부동산 사기로 빌딩을 잃고 양도세만 떠안아 이를 갚다 보니 경제적으로 힘들었다"고 심경을 밝히기도 했다.


최근 하씨는 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지기도 했다. 부산지검 형사4부(김정호 부장검사)는 7월18일 지인으로부터 ‘아는 사람 아들을 프로야구구단에 입단시켜 달라’는 청탁과 함께 5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하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이에 대해 하씨는 프로야구단 입단 청탁은 없었고, 그냥 빌린 돈이라고 주장하며 억울함을 호소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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