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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러 '세리머니 대참사' 1초 기쁨이 바꾼 메달색, '2023년판 토끼와 거북이'의 교훈 [항저우 이슈]

롤러 '세리머니 대참사' 1초 기쁨이 바꾼 메달색, '2023년판 토끼와 거북이'의 교훈 [항저우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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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저우=안호근 기자
우승을 확신하고 세리머니를 하던 롤러 선수들이 최종결과에 황당해 하고 있다. 왼쪽부터 최광호, 정철원, 최인호. /사진=뉴스1
우승을 확신하고 세리머니를 하던 롤러 선수들이 최종결과에 황당해 하고 있다. 왼쪽부터 최광호, 정철원, 최인호. /사진=뉴스1

믿을 수 없는 대참사가 벌어졌다. 눈앞에 금메달이 보였으나 단 한 걸음을 앞두고 방심해 메달 색이 은빛으로 바뀌었다.


최인호(논산시청), 최광호(대구시청), 정철원(안동시청)으로 구성된 한국 대표팀은 2일(한국시간) 중국 저장성 항저우 첸탕 롤러스포츠 센터(Qiantang Roller Sports Centre)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롤러 남자 3000m 계주 결승에서 4분5초702를 기록, 2위로 들어왔다.


충격적인 '사고'였다. 1위는 4분5초692의 대만이 차지했다. 정확히 단 0.01초 차에서 승부가 갈렸다. 충분히 벌어지지 않을 수 있었던 상황이기에 충격파는 이어지고 있다.


놀라운 역주를 펼친 한국 대표팀의 마지막 주자로 정철원이 나섰다. 금메달을 확신했고 결승선을 앞에 두고는 두 팔을 번쩍들며 기쁨의 세리머니를 했다.


그러나 찰나의 기쁨을 표현한 대가로 치러야 할 대가는 너무도 뼈아팠다. 금메달은 은메달로 변했고 병역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최인호의 군 면제가 눈앞에서 날아갔다. 정철원은 이미 병역 의무를 다했고 최광호는 앞서 개인전 1000m 스프린트에서 메달을 획득해 최인호만 억울한 상황이 됐다. 정철원은 어쩔 줄 몰라했고 세 선수의 표정은 시상대에서도 침통하기만 했다.


황당해하는 롤러 대표팀 선수들. /사진=뉴스1
황당해하는 롤러 대표팀 선수들. /사진=뉴스1

1998년 나가노 동계 올림픽이 떠오르는 장면이었다. 쇼트트랙 남자 1000m 결승에서 2위로 레이스를 펼치던 김동성은 우승을 확신한 리자준(중국) 뒤를 바짝 추격하더니 날을 들이밀며 0.053초 차이로 우승을 차지했다. 여자 1000m에서 전이경도 양양A를 상대로 2위로 달리다 넘어지면서까지 날을 들이밀어 양양A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쇼트트랙 선수들 사이에선 날 들이밀기가 유행처럼 번졌다. 반대로 앞서가는 선수들에겐 끝까지 방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경각심을 심어주는 계기가 됐다.


승부의 세계에선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어릴 적부터 동화에서도 배우는 교훈이다. 마치 자신의 능력을 믿고 한참을 앞서가다가 방심해 낮잠을 자는 바람에 거북이에게 경주에서 패배한 토끼의 꼴과 같게 된 롤러 대표팀이다.


스포츠에서 흔한 상황은 아니지만 종종 벌어지는 일이다. 당장 올 초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강백호가 2루타를 친 뒤 세리머니를 하다가 2루에서 발이 떨어져 아웃을 당했고 호주전 1점 차 패배 후 예선에서 탈락하며 뭇매를 맞기도 했다.


물론 '인간 탄환' 우사인 볼트와 같은 경우도 있다. 여전히 육상 남자 100m 세계신기록(9초58)을 보유 중인 볼트는 현역 시절 압도적인 레이스로 결승선을 앞에 두고 속도를 늦추는 패턴을 반복했다. 일종의 자신감의 행동이었다. 스포츠 선수에게 권할 수 있는 태도는 아니었지만 그만큼 자신의 실력에 대한 자신감이 넘쳤다. 그리고 그걸 선수 생활 내내 증명했다.


우승 순간마다 속도를 늦추며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던 우사인 볼트(왼쪽). /AFPBBNews=뉴스1
우승 순간마다 속도를 늦추며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던 우사인 볼트(왼쪽). /AFPBBNews=뉴스1

그러나 승부의 세계에선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결승선을 통과하기까지는,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게 스포츠의 세계이다.


조직위에 따르면 경기 후 정철원은 "내가 큰 실수를 저질렀다. 결승선까지 전속력으로 달리지 않았다. 너무 일찍 경계를 늦췄다"며 "너무 미안하다. 팀원들과 응원해준 팬들게 사과드린다"고 늦은 후회를 했다.


대만 선수들로선 천운이 따른 금메달이었다. 후앙 유-린은 "감독님은 늘 침착하고 앞을 주시하라고 했고 마지막 코너에서 일부러 앞쪽으로 움직였다"며 "그들이 세리머니를 하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동안 나는 여전히 싸우고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불과 몇 미터도 안 되는 거리였다"고 말했다.


이어 "그때 아무 생각 없이 결승선까지 밀고 나갔을 뿐인데 그 사람(정철원)이 앞에 있어서 내가 이겼는지 몰랐다"며 "조금 부족해서 너무 아쉽다고 생각했는데 화면에 100분의 1초 차이로 승리했다는 결과가 떴다. 정말 기적과 같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후앙 유-린의 태도를 정철원과 한국 대표팀이 뼈저리게 새겨야 할 필요가 있다. 그는 전날 레이스에서 실격을 당한 뒤 "오늘 대회에 참가할 의사가 없다고 스스로 계속 다짐했다"면서도 "예전에 SNS에 올렸던 게시물을 돌아보며 스스로를 격려했다. 우린 모두 최소 10년 동안 팀에 있었고 어릴 적부터 함께 훈련해왔다. 매우 감동적일 뿐 아니라 모든 서포터들이 매우 행복해 한다는 걸 알고 있다. 자신을 믿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전했다.


시상식에서도 웃지 못하고 있는 정철원(왼쪽부터)과 최광호, 최인호. /AFPBBNews=뉴스1
시상식에서도 웃지 못하고 있는 정철원(왼쪽부터)과 최광호, 최인호. /AFPBBNews=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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