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즌 막바지 매 경기 한국시리즈급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두산 베어스. 그리고 '원조 화수분' 야구를 펼쳤던 두산에 또 한 명의 깜짝 신인이 등장했다. 갑작스럽게 마운드에 올라 정신없이 치른 데뷔전에서 깜짝 쾌투를 펼친 주인공. 만원 관중 앞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증명한 그의 이름은 바로 윤태호(26)다.
두산은 16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펼쳐진 KIA 타이거즈와 2025 신한 SOL 뱅크 KBO 리그 정규시즌 홈경기에서 9회 4-3 끝내기 승리를 거뒀다. 이로써 두산은 3연승을 질주하며 위닝시리즈를 예약, 48승 5무 59패를 마크했다. 반면 KIA는 2연패에 빠진 채 53승 4무 52패를 기록했다.
이날 두산은 3회 뜻하지 않은 변수를 맞이했다. 선발로 나선 최승용이 투구 도중 좌측 검지 손톱이 깨져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 채 강판당한 것. 여기에 안방마님 양의지마저 좌측 서혜부 통증을 호소한 끝에 결국 보호 차원에서 교체됐다.
그리고 이날의 깜짝 영웅. 최승용을 대신해 윤태호가 갑작스럽게 마운드를 밟았다.
상인천초-동인천중-인천고를 졸업한 윤태호는 2022년 2차 신인 드래프트에서 5라운드 전체 49순위로 두산 베어스 유니폼을 입었다. 입단 계약금은 6000만원. 190cm, 88kg의 건장한 체격 조건을 자랑하는 윤태호는 그해 11월 현역으로 입대했다. 당시 어깨가 좋지 않아 구단 차원에서 빨리 군 문제를 해결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국방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한 그는 지난해 5월 27일 병장으로 만기 전역했다.
전역 후에는 퓨처스리그에서 활약하며 몸 상태를 서서히 끌어올렸다. 특히 올 시즌을 앞두고 호주 시드니 1차 스프링캠프에 합류하며 큰 기대감을 모았다. 그러나 캠프 도중 오른쪽 상완 이두근에 통증을 느끼며 불의의 부상으로 귀국하고 말았다. 이후 재활에 전념한 윤태호는 지난달 10일 퓨처스리그를 통해 실전 무대에 복귀했다. 그리고 지난 13일 처음 1군 엔트리에 이름을 올린 그는 데뷔전에서 일을 냈다.
윤태호는 마운드에 오르자마자 김태군을 우익수 직선타로 유도한 뒤 박민을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이어 박찬호마저 중견수 뜬공으로 처리하며 삼자 범퇴로 데뷔전 첫 이닝을 출발했다.
4회에는 선두타자 김호령을 우익수 뜬공 처리한 뒤 김선빈에게 중전 안타를 내줬다. 이날 자신의 첫 피안타이자 유일한 피안타였다. 다음 타자 최형우를 풀카운트 끝에 10구째 슬라이더로 루킹 삼진 처리한 뒤 위즈덤을 좌익수 뜬공으로 솎아내며 4회를 삭제했다.
5회 윤태호는 선두타자 나성범에게 볼넷을 허용했다. 하지만 오선우를 3구 삼진으로 솎아낸 뒤 김태군을 유격수 앞 병살타로 유도하며 무실점 행진을 이어갔다. 6회에도 마운드에 오른 윤태호. 또 삼자 범퇴였다. 박민을 3루 땅볼, 박찬호를 좌익수 뜬공, 김호령을 3구 사진으로 각각 잡아내며 이날 자신의 투구를 마쳤다.
윤태호는 팀이 2-1로 앞선 7회 마운드를 최원준에게 넘기며 승리 투수 요건을 갖춘 채 마운드를 내려왔다. 비록 9회 김택연이 동점을 허용하며 승리가 날아가긴 했지만, 이날 데뷔전은 그야말로 강렬했다.
4이닝 1피안타 1볼넷 4탈삼진 무실점. 총 투구수는 55개. 속구 30개, 슬라이더 21개, 커브 4개를 각각 섞어 던진 가운데, 속구 최고 구속은 153km(평균 149km)까지 나왔다. 스트라이크는 37개, 볼은 18개를 각각 던졌다.


역대 두산 베어스 소속 국내 투수가 데뷔전에서 4이닝 이상 무실점 투구를 펼친 건 윤태호가 3번째(KBO 리그 22번째)다. 1호 기록은 장호연(1983년 4월 2일 잠실 MBC전, 선발 9이닝 무실점), 2호 기록은 박노준(1986년 3월 29일 무등 해태전, 구원 8⅓이닝 무실점)이 각각 보유하고 있다. 무려 39년 만에 두산 역사에 이름을 새긴 것이다. 아울러 리그 전체로는 삼성 허윤동(2020년 5월 28일 사직 롯데 선발 5이닝 무실점)이 최근 이 기록 보유 선수다.
두산 전력분석팀 관계자는 이날 윤태호의 투구에 관해 "속구 회전수는 물론 제구가 아주 좋다. 속구는 포수 사인에 역구가 거의 없다. 포수가 원하는 곳에 넣는다. 아주 씩씩하고 타자와 맞붙는 템포가 빠르다"며 높이 평가했다. 조성환 감독대행도 경기 후 "윤태호의 배짱 있는 투구를 칭찬하고 싶다. 포수 사인에 고개 한번 흔들지 않고 과감히 던지는 모습이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앞으로 마운드 운용에 큰 힘이 될 것 같다"며 찬사를 보냈다.
경기 후 윤태호는 "1이닝만 생각하고 마운드에 올라갔다. 타자마다 '이기자'고 생각하다 보니 좋은 결과가 나왔다. 준비 상황이 갑작스럽지는 않았다. 충분히 풀고 올라갔다. 오히려 그 덕분에 더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고 입을 열었다. 이어 베어스 역대 3호 기록에 대해 "생각지도 못했다. 쟁쟁한 선배님들 이름 옆에 내 이름이 더해질 수 있어서 영광스럽다. 앞으로도 좋은 기록들 많이 쌓고 싶다"고 전했다. 그는 "데뷔전이라는 긴장감 덕분에 도파민과 아드레날린이 더해지면서 더 좋은 결과가 있었다. 만원 관중의 함성을 처음 들어보는데 짜릿했다. 자주 듣고 싶다"며 다음을 기약했다.
두산은 올 시즌 그야말로 재능있는 신인이 속출하고 있다. 야수 쪽에서는 최대어로 꼽혔던 고졸 루티 박준순이 주전 자리를 꿰차며 내야의 한 축을 책임지고 있다. 사령탑인 조성환 감독대행은 "박준순은 정말 잘해주고 있어서 흔들 생각이 없다. 내야수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조건은 안정감이다. 그런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선수가 내야의 주전이 될 것"이라 말했다. 박준순은 올 시즌 63경기에 출장해 타율 0.306, 3홈런, 13타점, OPS(출루율+장타율) 0.740의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야수 쪽에 박준순이 있다면 투수 쪽에는 최민석이 있다. 최민석은 올 시즌 12경기에 등판해 3승 2패 평균자책점 2.86을 마크하고 있다. 총 56⅔이닝 43피안타(5피홈런) 21볼넷 38탈삼진 20실점(18자책) 이닝당 출루허용률(WHIP) 1.13, 피안타율 0.213의 빼어난 성적을 거두고 있다. 무엇보다 마구와 같은 투심을 주무기로, 지저분한 공을 던지며 상대 타자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조 대행은 "마운드에서 최민석이 던지는 모습을 보면, 물론 우리 (최)민석이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손민한 선배가 던지는 느낌이 살짝 나기도 하는 것 같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날 두산은 대부분의 투수가 3연투에 걸리면서 마운드에 오르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에 경기 전 불펜 자원인 김정우를 콜업하기도 했다. 김정우 역시 2군에서 실력을 갈고닦다가 약 2개월 만에 1군에 복귀, 이날 1이닝 1피안타 1탈삼진 무실점으로 홀드를 챙겼다. 두산은 올 시즌 초반부터 성적 부진과 함께 이승엽 전 감독이 자진 사퇴하는 등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물론 순위는 9위로 사실상 가을야구에서 멀어졌지만, 계속해서 유능한 신예 자원이 솟아나는 상황. 두산 팬들은 매 경기 신인들의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내년 시즌을 기대케 하는 '원조 화수분 야구' 두산의 남은 경기에 팬들의 기대감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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