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9월 미국 원정 평가전 2연전(미국·멕시코전)은 의미가 컸다. 본격적으로 월드컵 본선에 대비하는 첫 시험대였기 때문이다. 홍명보 감독이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에서 활용했던 포백이 아닌 스리백 전술을 중점적으로 실험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선수들에게도 의미는 남달랐다. 이제 지난 월드컵 예선 여정은 과거의 일이 됐다. 이제는 강팀들을 상대로 어떠한 경쟁력을 보여주느냐, 바뀐 전술에 빠르게 녹아들 수 있느냐를 보여주는 게 중요했다. 월드컵 최종 엔트리 승선 경쟁을 위한 치열한 내부 경쟁은 결국 얼마나 출전 시간을 받느냐가 시작이었다.
이 과정에서 단 1분도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한 선수들은 5명이나 된다. 미국 원정길에 올라 열흘 가까이 훈련을 함께 했지만, 정작 실전 경기에선 교체로도 출전 기회를 얻지 못했다. 물론 A매치 2연전에 소집되고도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하는 사례들은 적지 않았다. 다만 이번엔 월드컵 예선이 아닌 평가전 2연전이었다. 미국전과 비교해 멕시코전 선발 라인업이 9명이나 바뀌는 등 과감한 로테이션도 가동됐다. 그럼에도 기회를 받지 못한 이들은 진한 아쉬움 속에 귀국길에 올라야 했다.

최전방 공격수 오세훈(26·마치다 젤비아)이 대표적이었다. 오현규(24·KRC 헹크), 손흥민(33·로스앤젤레스FC)과 더불어 공격수로 분류돼 이번 대표팀 명단에 포함된 오세훈은 2경기 모두 벤치만 지켰다. 이번 시즌 소속팀에서 단 2골을 기록하는 데 그칠 만큼 활약이 저조한데도 대표팀에 승선한 건 결국 193cm의 장신을 활용한 포스트 플레이라는 뚜렷한 장점 덕분이었다. 그러나 정작 2연전에서 그의 높이가 시험대에 오를 기회가 없었다.
반면 손흥민과 오현규는 각각 미국과 멕시코전 원톱 선발로 번갈아 나서는 등 2경기 모두 출전해 나란히 골까지 터뜨렸다. 더구나 오세훈은 지난 7월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풋볼 챔피언십(동아시안컵)에서도 대회 3경기 중 단 1경기만 교체로 출전하는 데 그쳤다. 최근 A매치 6경기 중 1경기에만 교체로 나서는 등 존재감이 급격하게 줄고 있다. 이호재(25·포항 스틸러스)나 최근 소속팀에 복귀한 조규성(27·미트윌란) 등 다른 원톱 후보군이 있다는 점에서 월드컵 경쟁은 더 험난해진 모양새다.
황인범(29·페예노르트)의 부상 이탈로 대체 발탁된 서민우(27·강원FC) 역시 미국 원정 2연전에서 끝내 출전 기회를 얻지 못했다. 지난 동아시안컵을 통해 처음 A대표팀에 발탁돼 전 경기에 출전했지만, 유럽파들이 합류한 A매치 기간엔 설 자리가 줄었다. 더구나 하필이면 외국 태생 혼혈 선수인 옌스 카스트로프(22·묀헨글라트바흐)를 중심으로 한 중원 실험에 초점이 맞춰졌다. 6개월 만에 복귀한 백승호(28·버밍엄 시티)도 시험대에 올랐다. 김진규(28·전북 현대)는 동아시안컵 전 경기 출전에 이어 이번에도 2경기 모두 출전하며 서민우와 대조를 이뤘다.


센터백 변준수(24·광주FC)와 박진섭(30·전북)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이번 2연전 핵심 키워드 중 하나는 스리백 전술 실험이었는데, 홍 감독은 김민재(29·바이에른 뮌헨)와 이한범(23·미트윌란), 두 유럽파를 2경기 모두 선발로 내세운 채 김주성(25·산프레체 히로시마)과 김태현(25·가시마 앤틀러스), 두 왼발잡이 센터백만 번갈아 시험대에 올렸다. 이 과정에서 변준수는 출전 기회를 얻지 못했고, 소속팀 전북에서 주로 수비형 미드필더 역할을 맡는 박진섭 역시 센터백과 미드필더 모두 기회가 닿지 않았다.
1년 만에 대표팀에 복귀한 골키퍼 송범근(28·전북) 역시 조현우(34·울산 HD), 김승규(35·FC도쿄) 두 베테랑에 밀려 또 한 번 벤치만을 지킨 채 대표팀 소집 여정을 마쳤다. 이번 시즌 선방률 1위 등 K리그 최고의 골키퍼로 활약 중인 데다, 1997년생으로 이제는 결코 적지 않은 나이지만 대표팀에선 좀처럼 세 번째 옵션 입지를 벗어나지 못하는 모양새다.
설상가상 조현우는 미국전에서 무실점 선방쇼를 펼쳤고, 역시 1년 8개월 만에 돌아온 김승규도 멕시코전에서 기회를 받아 존재감을 보였다.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골키퍼가 3명 포함되는 만큼 월드컵 무대로 향할 가능성은 커 보이지만, 조현우·김승규 경쟁 구도에 균열을 일으키기 위한 기회 자체가 오지 않으니 송범근으로서도 답답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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