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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악플과의 전쟁' 적극 나서라... 인내하고 감수할 수준 넘어섰다 [류선규의 비즈볼]

프로야구 '악플과의 전쟁' 적극 나서라... 인내하고 감수할 수준 넘어섰다 [류선규의 비즈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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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선규 전 SSG 랜더스 단장
허구연(왼쪽)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와 양현종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회장. /사진=KBO
허구연(왼쪽)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와 양현종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회장. /사진=KBO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선수협)는 최근 국내 최대 로펌과 '프로야구 선수 SNS 피해 근절 및 인권 보호'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여기에 프로야구 은퇴 선수들의 모임인 일구회까지 가세해 은퇴 선수들에 대한 무분별한 악성 댓글과 인신공격에 법적 책임을 묻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단순한 호소를 넘어 실질적인 대응에 나서겠다는 선언이었다.


선수협은 지난 8월 20일 '악성 댓글 자제를 호소한다'는 성명을 발표한 직후 이날부터 닷새간 현역 선수 163명이 참여한 피해 실태 조사를 진행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전체 피해의 73%가 인스타그램에서 발생했으며 댓글·DM 공격이 61%에 달했다. 가족이나 지인 계정까지 공격당한 경우도 12%였다. 피해 시기는 경기 패배나 선수의 실책 직후가 56%로 가장 많았고, 시즌 내내 지속된다는 응답도 15%였다.


피해 대상은 선수 본인(49%)만이 아니었다. 부모(31%), 배우자·여자친구(13%)까지 무차별적으로 공격받고 있었다. 유형은 경기력 비난(39%)을 넘어 가족 비방(29%), 살해 협박, 성희롱, 고인 모독, 스토킹·주거 침입까지 포괄했다. 이는 더 이상 '팬심의 과잉'이 아니라 명백한 '범죄'다.


피해가 선수들에게 끼치는 파장은 결코 가볍지 않다. 조사에 따르면 36%가 심각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호소했고, 이는 곧 경기력 저하(14%), 수면·식욕 장애(11%)로 이어졌다. 심지어 은퇴나 이적까지 고려한 경우도 4%에 달했다.


그럼에도 선수들의 대응은 소극적이었다. 무시·감수(39%), 차단·신고(28%) 수준에 그쳤고, 절반이 넘는 선수(56%)가 선수협의 직접적인 도움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는 개별적 대응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는 방증이었다.


프로야구 선수들의 SNS 피해 사례는 리그 인기에 비례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올 시즌 KBO리그 홈런·타점·장타율 부문에서 압도적인 1위를 질주하고 있는 삼성 라이온즈 외국인 타자 르윈 디아즈(29)는 8월 중순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이렇게 적었다. "한국에서 받은 사랑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나의 가족에게 해를 끼치려는 행동은 용납할 수 없다. 아내는 해를 입을 수도 있다는 협박을 받았고, 나의 반려견들을 독살하겠다는 위협까지 받았다. 나는 절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더 이상 참지 않겠다."


그의 아내 역시 SNS를 통해 직접 고통을 호소했다. 지난 4일 그녀는 "세상에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며 "그만 멈춰달라. 경기에서 성적이 안 좋다고 협박과 괴롭힘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세상 그 누구도 죽음에 대한 협박을 받아서는 안 되며, 특히 가족에게까지 위협을 가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삼성 디아즈. /사진=삼성 라이온즈
삼성 디아즈. /사진=삼성 라이온즈
삼성 디아즈가 자신의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통해 가족과 반려견에 대한 협박 피해 사실을 밝혔다. /사진=디아즈 SNS 캡처
삼성 디아즈가 자신의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통해 가족과 반려견에 대한 협박 피해 사실을 밝혔다. /사진=디아즈 SNS 캡처

디아즈 사례는 악플이 더 이상 '경기력 평가'의 수준을 넘어 가족을 겨냥한 사이버 테러로 발전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는 외국인 선수가 한국 생활에 적응하는 데 큰 장벽이 될 뿐만 아니라 리그 전체의 이미지에도 타격을 준다.


국내 선수들 역시 마찬가지로 고통을 받고 있다. 2021년 5월 당시 SSG 랜더스 소속이었던 최주환(37·현 키움 히어로즈)은 부모를 향한 모욕적인 DM을 받고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단순히 선수 본인을 비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가족을 대상으로 한 저급한 공격이 이어진 것이다. 필자는 당시 SSG 랜더스 단장으로서 최주환 선수의 입장을 충분히 공감했다.


오랜 기간 악플에 시달려 온 LG 트윈스 내야수 오지환(35)은 2020년 악플러들을 대거 고소했다. 그는 가족까지 공격받는 상황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당시 일부 팬들은 '선수가 팬을 고소한다'며 비난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다른 선수들에게 '참지 않아도 된다'는 선례를 남겼다.


또 다른 사례는 KIA 타이거즈 외야수 박정우(27)다. 지난 8월 21일 실책성 플레이 후 팬과 SNS에서 설전을 벌였다가 자숙 차원에서 2군으로 내려갔다. 구단이 선수들에게 'SNS 맞대응은 금물'이라고 교육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즉각적 맞대응은 논란만 키우고, 오히려 피해자가 가해자로 몰리는 모순된 상황을 만든다. 결국 그는 일주일 만에 사과문을 게시했지만, 그 사이 여론은 이미 악화돼 있었다. 이 사건은 왜 선수 개인의 대응이 위험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실 야구계보다 먼저 악플과의 전쟁에 나선 건 연예계다. 배우·가수·아이돌 그룹들은 수년 전부터 악플 대응을 전담하는 법률팀이나 로펌과 협력해왔다. 소속사가 직접 '선처 없는 강경 대응'을 공지하고, 실제로 악플러들을 상대로 수십 건의 고소를 진행한 사례도 적지 않다.


연예계는 이미 악플이 개인의 심리적·정신적 피해에 그치지 않고 활동 중단·건강 악화·산업적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경험했다. 그래서 아예 선제적·제도적 대응 체계를 구축했고,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는 '악플 대응=브랜드 보호'라는 인식이 확고하다. 2년 연속 1000만 관중을 돌파하며 국민 스포츠로 자리잡고 있는 프로야구도 이제 연예계 사례를 참고할 때다.


서울 잠실야구장. /사진=강영조 선임기자
서울 잠실야구장. /사진=강영조 선임기자

지금까지 프로야구 선수들은 차단, 비공개, 무시, 혹은 감정적 맞대응 같은 임시방편에 의존해왔다. 팬을 상대로 한 법적 대응이 금기시되는 분위기였다. 프로야구에서 팬은 단순한 고객이 아니라 존재 이유 자체이기 때문이다. '팬이 없으면 프로야구도 없다'는 사실은 모두가 공감한다. 그래서 선수들은 오랫동안 참고 인내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그 수준을 넘어섰다. 법적 대응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며 '악플과의 전쟁'에 나서야 할 상황이다. 협박, 모욕, 명예훼손은 모두 현행법상 처벌 가능한 범죄다. 선수협이 로펌과 손잡고 증거를 수집하고 법적 절차를 밟는 것은 보복이 아니라 제도적 권리 행사다. 이는 사회적 경고 효과를 내고, 재발 방지에도 기여한다. 무엇보다 선수들이 경기력과 커리어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실질적 해법이 된다. 프로야구 선수들이 SNS에서 직접 맞대응을 할 바에는 법적 대응이 낫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프로야구 선수들의 인권이 보호받아야 된다는 점이다. 선수들의 인권 보호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다. 선수들이 더욱 참지 못하는 건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사이버 테러이다. 가족 대상 테러는 이제 한계 수준을 넘어섰다.


프로야구 선수들의 SNS 피해는 이제 이들의 인권 보호 차원에서 접근해야 된다. 더 이상 팬이라는 명목으로 선수들의 인권을 쉽사리 침해하는 사례는 근절돼야 한다. 악플러와 '찐팬'은 분명히 구분돼야 한다.


류선규 전 단장.
류선규 전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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