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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가 월급 줬지" 日 '탈삼진 GOAT' 울린 천적 정체, '현직 택시기사'가 떠올린 50년 전 추억

"사실 내가 월급 줬지" 日 '탈삼진 GOAT' 울린 천적 정체, '현직 택시기사'가 떠올린 50년 전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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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시절 에나츠(오른쪽)가 하야시에게 홈런을 맞은 장면을 가상화한 AI 생성 이미지. /사진=제미나이 생성 이미지

일본의 전설적인 투수 에나츠 유타카(78). 선발과 불펜을 가리지 않았고 일본시리즈 우승을 6차례나 일궜지만 그에게도 천적은 있었다. 놀랍게도 슈퍼스타가 아닌 기억하는 이를 찾기 힘든 무명의 선수가 그 주인공이다.


일본 교토신문은 1일 "지금은 택시기사가 된 전설적 좌완 에나츠의 천적이었던 타자... '그날의 진검 승부는 내 마음의 보물'"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에나츠는 일본 야구 역사상 손에 꼽히는 투수다. 829경기에서 3196이닝을 소화하며 206승 158패 192세이브, 평균자책점(ERA) 2.49를 써냈다. 3000탈삼진까지는 단 13개만 부족했다.


팀에 일본시리즈 6차례를 안기며 최우수선수(MVP) 2회, 일본 최고 투수에게 주어지는 사와무라상도 한 차례 손에 넣었다. 은퇴 후엔 야구해설가로 현재까지도 활약 중이다.


그런 그에게도 까다로운 타자는 있었다. 교토신문은 "그가 가장 까다로워했던 타자는 왕정치(오 사다하루)도, 나가시마 시게오도 아니다. 그 주인공은 프로 11년 동안 통산 안타가 고작 152개뿐이었지만 전성기의 에나츠를 상대로 승부를 결정짓는 홈런과 적시타를 수차례 때려낸 인물이다. 현재 고향인 교토에서 개인택시 운전사로 일하고 있는 그는 50여 년 전 '전설의 좌완'과 벌였던 승부를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바로 다이요 웨일스(현 요코하마 DeNA)의 하야시 겐조(82)다. 일본 야구 팬들에게도 매우 생소한 이름이다. 11년의 프로 생활 동안 통산 타율 0.209 152안타 23홈런이라는 초라한 성적만 남겼다. 장타력이 있는 타자라면 한 시즌에도 달성할 수 있는 수준의 기록이다.


그렇기에 에나츠의 천적이라는 건 믿기 힘든 일이다. 통산 23개의 홈런 중 무려 3개를 에나츠를 상대로 뽑아냈다. 승부를 결정짓는 역전 투런 홈런으로 우승 경쟁 중이던 한신의 발목을 잡았고 에이스의 맞대결로 펼쳐진 경기에서 유일한 적시타로 에나츠에게 패배를 안기기도 했다.


하야시 겐조. /사진=교토신문 갈무리

고교 시절 500만엔의 계약금을 받고 프로에 입단한 그는 4년차인 1966년에서야 제대로 기회를 얻었고 첫 경기에서 스리런 홈런, 두 번째 경기에선 그해 17승 투수 오가와 겐타에게 다시 한 번 홈런을 빼앗아냈다. 3번째 경기에서도 9회말 상대 마무리를 상대로 끝내기포를 날렸다.


엄청난 임팩트를 남기며 1군에 안착한 그는 타율은 2할 초반대였음에도 상대 에이스들을 떨게 만드는 일발장타로 존재감을 키웠다.


이듬해인 1967년 전체 1순위로 에나츠가 한신에 입단했고 직구 위주로 공을 뿌리던 그는 데뷔 시즌 12승을 거뒀지만 하야시는 "치기 좋은 공이다"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천적 면모를 보였다. 그러나 이듬해 에나츠는 완전히 다른 투수로 변모했고 하야시 또한 "2년차부터 정말 엄청난 투수가 됐다"고 회상했다.


그럼에도 하야시만 만나면 작아졌다. 에나츠는 1968년 탈삼진 세계 기록을 세울 정도로 최고 투수 반열에 올랐고 그해 25승과 함께 401탈삼진이라는 괴물 같은 세계 기록을 써냈는데 결정적인 순간마다 하야시는 에나츠의 공을 때려냈다.


특히 그해 9월 12일 선발 등판한 하야시는 8회말 에나츠에게 제대로 한 방을 먹었다. 강력한 스윙이 만들어낸 타구는 경기를 뒤집는 투런 홈런이 됐고 한신은 이후 내리막길을 타고 결국 2위로 시즌을 마쳤다.


1969년 개막전에서도 에이스들의 치열한 대결에서 하야시는 에나츠로부터 우전 적시타를 때려냈다. 1점 승부에서 에나츠는 패전 투수가 됐다.


에나츠는 현재까지도 전설로 남아 있는 일본야구 역사를 장식한 인물. 선수 시절 내내 무명이었던 하야시가 그를 공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현직 택시기사로 일하고 있는 하야시 겐조. /사진=교토신문 갈무리

하야시는 "나도 모르겠다. 아무 생각 없이 쳤으니 운 좋게 맞은 거겠지"라고 쑥스러운 미소를 남겼다고 교토신문은 전했다. 그럼에도 에나츠는 은퇴 후에도 수차례나 하야시를 가장 까다로웠던 타자로 언급했고 "사실 하야시의 월급은 내가 준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야시는 1972년 다이요에서 방출된 뒤 닛타쿠(현 니혼햄)에서 1년을 더 뛰었지만 결국 은퇴했다. 이후엔 고향 교토로 돌아와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 받아 택시기사가 됐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택시기사로 현업을 이어가고 있다.


집에는 프로 시절의 장비나 사진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지만 택시기사들로 구성된 야구팀의 감독을 맡아 야구와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에나츠와 대결에 대해 돌아본 하야시는 "공도 대단했지만 무엇보다 '야구 지능'이 엄청나게 좋은 투수였다"며 "나가시마, 왕정치, 그리고 에나츠 까지 대스타들과 같은 경기에서 진검승부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이 가장 큰 추억이다. 최고의 투수로부터 홈런을 친 기억은 영원히 제 마음 속에 보물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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