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일 일본 나고야시 종합체육관에서 진행된 2026 아이치·나고야(일본) 아시안게임 기계체조 여자 도마 시상식. 대한민국 기계체조 국가대표 여서정(24·제천시청)이 시상대 제일 위에 오른 뒤 환하게 웃었다. 지난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인도네시아) 아시안게임 이후 8년 만에 목에 건 두 번째 금메달이었다. 여서정은 자신을 향한 관중들의 박수에 손을 흔드는 인사로 화답하기도 했다.
그런데 바로 옆에 선 '은메달' 주인공의 표정은 어두움을 넘어 싸늘하기만 했다. 여서정의 라이벌이기도 한 북한의 안창옥(23)이었다. 이틀 전 예선에서도 여서정에 이어 2위로 통과했던 안창옥은 이날 1차 시기에서 14.300점을 받은 뒤, 2차 시기에서는 착지 직후 미끄러져 넘어지는 바람에 13.033점에 그쳤다. 1차·2차 시기 평균 점수에 보너스 점수를 더한 최종 점수는 여서정이 14.483점, 안창옥은 13.666점으로 희비가 엇갈렸다.
이날 여서정은 1차 시기와 2차 시기에서 각각 5.4와 5.0 난도의 기술을 택했다. 여서정 바로 뒤에 나선 안창옥은 각각 5.6과 5.4 기술에 도전했다. 여서정보다 더 난도가 높은 기술들을 택하며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결과적으로 여서정은 두 차례 시기 모두 안정적으로 성공한 반면, 안창옥은 두 번째 기술에서 치명적인 실수를 범했다. "최고난도 기술은 실수율이 많다. 한 단계 낮춰 깔끔하게 하자는 전략을 짰다"는 여서정의 결선 전략이 제대로 통했다.
시상대에는 여서정이 가장 높게 섰다. 그런데 그 옆에 선 안창옥은 그야말로 '무표정'이었다. 동메달을 차지해 시상대에 함께 오른 중국 두쓰위가 시상식 내내 환한 미소를 보인 것과도 대조적이었다. 결국 시상식 내내 여서정과 두쓰위는 웃은 반면, 안창옥은 싸늘할 정도로 무표정으로 일관했다. 애국가가 울려 퍼질 때도, 시상식이 거의 끝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공식적인 행사가 마무리된 뒤 자유롭게 대화를 나눌 법한 상황에서도 불편한 시간들이 이어졌다. 여서정을 향해 안창옥이 축하 인사를 건네는 모습도 없었고, 여서정 역시도 애써 안창옥에게 말을 건네지 않았다. 시상대에 오른 선수들이 '셀카'를 찍고, 이 과정에서 남북 선수들이 어울리는 모습 자체가 화제가 됐던 2024 파리 올림픽 같은 과정도 없다 보니 이들은 그대로 내려가는 것으로 시상식을 마쳤다.
경기를 마친 뒤 취재진과 만난 여서정은 "안창옥이 넘어지는 걸 솔직히 바라지는 않았다. 그냥 정정당당하게 하고 싶었다. 열심히 준비하는 모습도 지켜봤기 때문에 안타까웠던 것 같다"며 "정말 세계적인 선수고 열심히 하는 선수다. 서로 말은 못 하지만, 꾸준히 열심히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로 말을 못 하지만'이라는 표현에 많은 것이 함축돼 있었다.
'북한 선수들과 대화를 거의 안 하느냐'는 질문에 여서정은 "거의가 아니라 아예 안 한다"고 했다. 한 살 많은 언니로서 먼저 대화를 시도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도 "저만의 문제가 아니다 보니, 함부로 말을 할 수도 없다"고 웃어 보였다.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남북 관계 등 복잡한 정치적 문제가 얽혀있는 상황이라는 의미다. 지난 2023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남북관계를 '적대적 관계'로 규정한 뒤 체육계에서도 냉랭한 관계가 이어지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한편 이날 여서정은 지난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에 이어 아시안게임 통산 두 번째 금메달을 획득, 아버지이자 체조 레전드인 여홍철 현 대한체조협회 전무이사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아시안게임 금메달 두 개는 여자 선수 최초의 역사이기도 하다. 여서정은 "아버지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고 생각한다. 아버지의 길을 똑같이 걸어가고 있다는 게 너무 좋다"고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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