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만 되면 강했다. 날씨가 선선해지면 '정가영(정수빈 가을 영웅)'이라는 수식어로 불렸다. 그만큼 가을의 정수빈(36·두산 베어스)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반등의 기미를 보이지 않던 정수빈은 다소 뒤늦게 가을이 왔음을 알렸다. 이젠 가을야구를 바라본다.
정수빈은 29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NC 다이노스와 2026 신한 SOL KBO리그 시즌 14번째 맞대결에서 9번 타자 중견수로 선발 출전해 4타수 2안타 2타점 1득점 1도루 활약을 펼쳤다.
2회 2타점 동점 적시타는 물론이고 수비에서 감탄을 부르는 슬라이딩 캐치를 펼쳤고 도루에 이은 역전 득점까지 해내며 팀의 5-2 승리를 이끌었다.
2회 적시타가 극적이었다. 김민석의 볼넷과 강승호의 안타 이후 희생번트로 주자 2,3루를 만들었고 조수행이 볼넷을 얻어 만든 1사 만루에서 정수빈이 타석에 섰다. 이재학은 체인지업으로만 정수빈을 승부했고 4구 바깥쪽으로 들어오는 공을 놓치지 않았다. 타구는 우익수 방면으로 향했고 2,3루 주자가 모두 홈을 파고 들었다. 1,2회 내줬던 2점을 단숨에 만회했다.
이어 2루 도루를 성공시킨 정수빈은 박찬호의 땅볼 때 3루로 향했고 안재석의 안타 때 역전 득점을 해냈다.

수비에서도 빛났다. 4회 1사 1루에서 신재인의 짧은 타구를 빠르게 대시한 뒤 슬라이딩하며 처리했다. 타구를 맞자마자 투수 웨스 벤자민은 정수빈을 향해 앞으로 다가오라는 표시를 했고 타구를 낚아채자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6회에는 밀어치는 안타로 멀티히트까지 완성했다. 9월 들어 처음 나온 멀티히트였다. 그만큼 부진이 길었다.
이날 승리는 매우 중요했다. 가을야구까지 한 발 더 나아가는 승리였다. 6위 NC와 승차를 7경기로 벌렸고 남은 2차례 맞대결에서 1승만 하면 자력 가을야구 진출을 확정하게 된다. 혹은 남은 8경기 중 2승만 거둬도 가을야구로 향한다.
경기 후 정수빈은 "NC 상대로 2승만 하면 5위는 확정 지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초반에 2점 주면서 불안했지만 저한테 초반부터 만루라는 찬스가 왔고 올해 만루 상황에서 성적이 괜찮았다"며 "들어가기 전에 어떻게든 꼭 맞춰서 1점이라도 내게끔 하려고 했고 좋은 결과가 나왔다. 그래서 동점타 하고 근데 또 재석이가 또 거기서 바로 역전타 쳐주면서 저희가 경기를 좀 앞섰던 것 같아요.
정수빈은 "시즌이 얼마 안 남았기 때문에 남은 경기는 정말 최선을 다할 생각"이라며 "최근에 너무 계속 안 좋았다. 야구를 오래했지만 제가 아니었던 것 같았다. '이건 아닌데'라고 생각이 들었지만 뭘 해도 잘 안 됐다. 그런데 어쩔 수 없는 부분이고 계속 경기에 나가면서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을 계속 하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스로도 부진의 이유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 "안 될 때는 정말 뭘 생각하고 뭘 해도 잘 안 된다"면서도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수비라든지 다른 부분에서 할 수 있는 걸 하면서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최대한 하려고 한다. 앞으로 큰 경기도 남아 있으니까 거기서 더 잘 하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통산 9월 이후 타율이 0.317에 달하고 가을야구에서도 0.295를 자랑한다. 이제 정수빈의 계절이 온 것일까. 정수빈은 고개를 떨궜다. "원래는 이런 날씨 되면 자연스럽게 좋아지는데 그걸 이길 만큼 제가 좋지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내 "그래도 날씨가 너무 좋다. 야구하는 데는 너무 좋은 것 같다"고 기대감을 남겼다.
부진의 원인은 심리적인 요인에 있었다. 정수빈은 "체력적인 건 똑같은데 심적으로 올해 유독 잘 안 풀렸다"며 "시즌 중반, 한 6월까지는 좋았는데 갑자기 그 이후로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심적으로 잘 안 되더라. 그게 좀 오래 갔던 것 같다"고 털어놨다.
2015년부터 7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며 3차례 우승을 차지한 두산이지만 2022년 이후로 기복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에도 9위로 처졌으나 올 시즌 다시 한 번 가을을 기약하고 있다. 누구보다 가을을 많이 경험했던 정수빈은 "기존에 있던 선수들은 경험을 많이 했지만 밑에 있는 선수들은 그런 큰 경기 경험을 많이 못 했다"며 "미래를 위해서 큰 경기를 좀 많이 해봤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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