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의점 계산대와 영화관 매표소를 전전하던 무명 투수가 마침내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 무대에서 눈부신 호투를 펼치며 미국 현지에서 큰 감동을 전하고 있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32세 좌완 투수 레이 커가 써 내려간 기적 같은 '인간 승리' 드라마다.
커는 32세의 늦은 나이에 지난 2일(한국시간)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 위치한 트루이스트 파크에서 열린 필라델피아 필리스와의 내셔널리그 와일드카드시리즈(NLWS·3전 2선승제) 3차전에 생애 첫 포스트시즌 선발 등판 기회를 잡아 3⅓이닝 동안 무실점 완벽투를 펼쳤다. 가을야구 특유의 팽팽한 중압감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씩씩하게 자기 공을 뿌리며 마운드를 든든하게 지켜냈다. 동시에 자신의 첫 가을야구 등판이기도 했다.
커는 걸어온 길은 그야말로 굴곡의 연속이었다. 메이저리그 전문 기자 마이크 로드리게스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2013년 네바다주 리노의 허그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멘도시노 칼리지에서 2년간 대학 야구 선수로 뛰었으나, 현실의 높은 벽에 부딪혀 결국 야구를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글러브를 내려놓은 그의 손에는 생계를 위해 편의점 계산대와 영화관 매표소 일이 쥐어졌다.
그대로 끝날 뻔했던 그의 야구 시계를 다시 돌려세운 건 라센 칼리지 야구부의 신임 감독이었다. 그의 끈질긴 설득 끝에 커는 다시 마운드로 돌아오기로 결심했다.
야구계로 복귀한 커는 계약금 단돈 2000달러(약 260만 원)를 받고 2017년 프로 무대에 입성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는커녕 열악한 처우와 긴 버스 이동이 일상인 마이너리그에서 무려 7년이라는 긴 시간을 묵묵히 버텨냈다. 시애틀 매리너스 산하 마이너리그를 거쳐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를 거쳐 2024시즌을 앞두고 애틀랜타 유니폼을 입었다.
30대의 늦은 나이까지 이어진 방출과 생존의 기로 속에서도 구위를 다듬은 끝에 커는 마침내 빅리그 무대에 안착했다. 이번 시즌 애틀랜타에서 정규시즌 9경기(선발 1차례)에 나서 승패 없이 2홀드만 기록했을 정도로 불펜 요원이었다. 2일 필라델피아전에서는 자신에게 주어진 오프너 역할을 잘 수행한 뒤 마운드를 내려오며 기립 박수까지 받았다.
편의점 알바생에서 가을야구 선발 투수로 우뚝 선 32세 베테랑. 레이 커의 3⅓이닝 무실점 호투는 꿈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버텨낸 이들에게 묵직한 울림을 주며 뜨거운 찬사를 이끌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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