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장 한복판에 뜻밖의 '주인공'이 등장했다. 보호종 새가 그라운드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으면서 선수들은 경기 중에도 해당 지역을 피해 다니고 있다. 관리 직원들조차 둥지가 있는 곳만 남겨둔 채 잔디를 깎는다.
영국 가디언은 18일(한국시간) 호주 태즈메이니아 북부 론서스턴 외곽 리버사이드의 윈저 파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색적인 상황을 소개했다.
주인공은 호주에서 흔히 '플로버'라고 불리는 물떼새류인 마스크드 랩윙이다. 매체는 "마스크드 랩윙 한 마리가 지역 스포츠 경기장 한가운데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했다"며 "주말마다 주변에서 크리켓 경기가 열리고 있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 새가 태즈메이니아 주법에 따라 보호받는 종이라는 점이다.
보도에 따르면 둥지를 방해할 경우 최대 2만1300호주달러(약 2000만원)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
가디언은 "이 때문에 경기장 관리 직원들은 둥지가 있는 부분만 그대로 남겨둔 채 주변 잔디를 깎고 있다"며 "선수들 역시 둥지를 피해 경기를 펼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상대팀 한 선수가 둥지 바로 옆에서 수비를 맡기도 했다. 다행히 별다른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해당 선수는 "처음에는 상당히 이상했다"면서도 "경기 중반쯤부터는 우리도 익숙해졌다. 마지막에는 물떼새도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후에는 홈팀 리버사이드의 조시 파트리지가 둥지 근처에서 수비를 맡았다. 이번에도 별다른 충돌은 없었다.
파트리지는 "마치 물떼새도 크리켓 경기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며 "우리가 새의 삶을 방해하지 않았기 때문에 새도 우리가 하는 일을 방해하려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미 이 새는 별명까지 얻을 정도로 지역 주민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다.
가디언은 "지역 주민들은 이 새에게 애정을 담아 '파프 스웁 플레시스'라는 별명을 붙였다"며 "남아프리카공화국 크리켓대표팀 전 주장 파프 뒤 플레시스의 이름에 새가 급강하한다는 의미의 '스웁(swoop)'을 섞은 말장난"이라고 소개했다.
마스크드 랩윙은 위협적인 울음소리와 함께 봄철 번식기에 사람을 향해 급강하하는 행동으로도 유명하다.

언뜻 보면 사람들이 뛰어다니는 경기장 한복판에 둥지를 만든 것이 위험한 선택처럼 보인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오히려 생존을 위한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주변 시야를 가리는 것이 없는 넓은 잔디밭에서는 어미 새가 멀리서부터 위험 요소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류 보호단체 버드라이프 오스트레일리아의 숀 둘리는 "이 새들은 위험이 다가오는 것을 볼 수 있도록 탁 트인 장소에 둥지를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또 알과 새끼를 숨기기 위해 위장색에 의존한다"며 "경기장 잔디에 둥지를 만들면 모든 방향을 뚜렷하게 바라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마스크드 랩윙의 알은 암수가 함께 품으며 약 28~30일 뒤 부화한다. 새끼는 부화한 뒤 빠르게 둥지를 떠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디언은 "알이 수정되지 않았다면 몇 주 동안 더 품는 경우도 있다"며 "알이 파괴될 경우 같은 장소에 다시 둥지를 틀기도 한다"고 전했다.
결국 새끼들이 무사히 부화해 둥지를 떠날 때까지 윈저 파크의 크리켓 선수들은 이 마스크드 랩윙과 그라운드를 공유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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