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때 퇴출 기로에 섰던 '13억 외인'이 완벽한 가을 반전 드라마를 썼다. 돌연 팀을 떠났던 단기 대체 외인의 빈자리와 아쉬움은 이미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KIA 타이거즈 외국인 타자 해럴드 카스트로(33)가 플레이오프 무대를 첫 경기부터 집어삼킨 것이다.
카스트로는 26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2026 신한 SOL KBO 포스트시즌 플레이오프(PO·5전 3선승제) 삼성 라이온즈와의 1차전에 4번 타자 겸 1루수로 선발 출전해 4타수 3안타(1홈런) 3타점 2득점의 맹타를 휘두르며 팀의 5-1 완승을 진두지휘했다. 1차전 데일리 MVP와 결승타 주인공에게 주어지는 '오늘의 타격감 상'까지 싹쓸이했다.
이날 시작부터 카스트로의 해결사 본능이 번뜩였다. 카스트로는 1회초 2사 후 김도영의 볼넷과 도루로 만든 득점권 찬스에서 삼성 선발 크리스 페덱의 2구째 시속 142km 커터를 통타, 선제 결승 우전 적시타를 터뜨렸다. 상대 우익수 김성윤의 송구 실책을 틈타 3루까지 파고든 뒤 나성범의 적시 2루타 때 홈을 밟으며 주루에서도 집중력을 과시했다.
백미는 3회초였다. 2-0으로 앞선 2사 1루에서 다시 페덱과 마주한 카스트로는 집요한 승부근성을 뽐냈다. 3-1 유리한 카운트에서 공 4개를 끈질기게 커트해 낸 뒤, 9구째 시속 144km 커터를 잡아당겨 오른쪽 담장을 시원하게 넘기는 투런 아치를 그렸다. 팽팽하던 흐름을 단숨에 KIA 쪽으로 가져온 결정타였다. 5회초에도 바뀐 투수 배찬승을 상대로 좌전 안타를 때려내며 3안타 경기를 완성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상상하기 힘들었던 반전이다. 카스트로는 지난 2025년 12월 계약금 20만 달러, 연봉 70만 달러, 옵션 10만 달러 등 총액 100만 달러(약 13억 원)의 조건으로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었다.
하지만 개막 후 23경기 타율 0.250 2홈런 16타점 OPS(출루율+장타율) 0.700으로 극심한 부진에 빠졌고, 4월 말 왼쪽 햄스트링 부상으로 쓰러졌다. 이때 6주 단기 대체 외국인 선수로 합류한 아데를린 로드리게스(35)가 32경기에서 10홈런을 쏘아 올리며 '대박'을 터뜨렸다. 32안타 가운데 10개가 홈런인 것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아데를린을 정식 외인으로 신분을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득세했다.
운명의 장난처럼 상황이 급변했다. 아데를린이 개인 사정을 이유로 재계약 제안을 거절하고 갑작스럽게 짐을 싸면서, 13억 원을 투자한 '정식 외인' 카스트로에게 기회가 다시 돌아왔다.
벼랑 끝에서 잡은 기회를 카스트로는 놓치지 않았다. 6월 복귀와 동시에 불방망이를 휘둘렀다. 6~7월 연달아 월간 4할 타율을 기록했고, 후반기 타율 0.335 OPS 0.980의 맹폭을 퍼부으며 99경기 타율 0.327 21홈런 88타점 61득점 OPS 0.928로 정규시즌을 화려하게 마쳤다.
가을의 찬바람이 불자 방망이는 더 뜨거워졌다. 카스트로는 LG 트윈스와의 준플레이오프 3경기에 이어 이날 플레이오프 1차전까지 합쳐 이번 포스트시즌 4경기 타율 0.500(16타수 8안타), 출루율 0.529, 장타율 0.938, OPS 1.467, 2홈런이라는 경이로운 성적을 찍고 있다. 가을야구 무대 전체를 지배하는 압도적인 화력이다.
플레이오프 1차전을 마친 뒤 카스트로는 "어떤 상황이든 타석에 들어서면 안타를 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매 타석 최대한 좋은 모습들을 많이 보여드려서 팀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언제나 나의 목표"라며 담담하면서도 다부진 소감을 전했다.
카스트로의 맹활약 속에 KIA는 1차전을 잡고 한국시리즈 진출의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역대 5전 3선승제 플레이오프 1차전 승리 팀의 한국시리즈 진출 확률은 77.1%(35회 중 27회)에 달한다. 떠나간 10홈런 대체 외인의 그림자는 완벽하게 지워졌다. 퇴출 위기를 딛고 포스트시즌 OPS 1.467의 '가을 괴물'로 거듭난 13억 거포가 KIA의 가을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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