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화의 비하인드 연예스토리]

#장면 1: 2002년 10월. 서울 목동 월드뮤직 사무실. 혼성그룹 샾의 서지영은 예정보다 20여분 늦은 시각에 남성멤버 크리스와 함께 기자회견에 등장했다. 정신적인 충격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었던 서지영은 초췌한 얼굴이었다. 서지영과 크리스는 이번 사건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을 미리 준비한 듯 종이에 적힌 메모를 읽어 나갔다.
기자회견에서 서지영은 소속사와 의사소통이 없었던 듯 이견을 드러냈다. 서지영은 "이지혜가 아무런 이유 없이 일방적으로 나를 폭행하며 폭언을 퍼부었다"고 주장했다. 반면 자리를 지켰던 매니저 우모씨는 "사건 당시 곁에 있던 사람에게서 '서지영이 이지혜에게 욕설을 했던 것은 사실'이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말했다.
매니저의 이런 주장에 당황한 서지영은 한때 자리에서 일어나 또 다른 매니저와 무언가 귓속말을 주고받은 뒤 "매니저가 당시 했던 말과 다른 말을 하고 있다"며 반발했다. 또 서지영은 소속사의 한 관계자가 생방송을 펑크낸 책임 소재를 묻자 "왜 이런 자리에서 그런 것을 묻느냐"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서지영은 향후 활동 계획에 대해 묻자 폭탄선언을 준비한 듯 "소속사 관계자들이 없는 상태에서 기자들과 얘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에 기자회견장에 나와 있던 그녀의 아버지 서모씨가 서지영을 화장실로 데리고 가 10여분 가량 밀담을 나누기도 했다.
#장면 2: 2002년 12월. 서울 목동 윤도현 소속사 다음기획 사무실. 윤도현은 어안이 벙벙한 모습이었다. 개그맨 심현섭이 이회창 후보 찬조 연설 도중 '윤도현이 이회창 후보를 지지한다는 이유로 KBS 2TV '윤도현의 러브레터' 출연을 막았다고 한 것'은 "사실이 아니다"고 했다.
윤도현은 "담당 연출자가 캐럴 음반을 발표한 개그맨들을 출연시키면 어떻겠느냐고 말해 아직 많은 가수들이 이 프로그램에 나오지 못한 상황에서 개그맨 캐럴팀의 출연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윤도현은 "당시 나는 캐럴팀에 심현섭씨가 포함됐는지 몰랐다. 따라서 그가 출연하면 프로그램 진행을 거부하겠다고 말했다는 심현섭씨의 주장은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했다.
윤도현은 "한쪽에서 기자회견 하면 다른 쪽에서 반박 기자회견을 하는 건 남의 일이고 뭐하는 일들이냐고 생각했다"며 "내가 이런 일을 할 줄은 몰랐다"고 허탈해했다.
윤도현은 "법적인 대처를 할 것이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에이, 고소까지야"라고 머리를 긁적였다. 기자회견이 끝나고 회사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윤도현의 전화를 받았다. 윤도현은 "기자회견 끝나고 회사 사람들과 이야기를 했는데 아무래도 법적인 조치를 취해야 할 것 같다"며 "번거롭게 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윤도현 기자회견이 있은 뒤 심현섭 소속사에서도 기자회견을 갖고 "제작진이 진행자 윤도현이 성향이 틀린 사람들과는 방송을 하지 않겠다고 해 출연할 수 없게 됐다고 통보했다"고 주장했다.
심현섭 소속사측은 "윤도현측에서 법적인 대응을 해오면 우리도 맞대응을 하겠다"고 했다. KBS는 이날 '윤도현의 러브레터' 홈페이지에 '심현섭씨의 한나라당의 찬조연설에서 말한 문제의 부분은 사실무근'이라는 공식입장을 밝혔다.
#장면3: 2012년 7월. 걸그룹 티아라 소속사 코어콘테츠 김광수 대표가 30일 중대발표를 예고했다. 이후 티아라의 멤버 화영의 왕따설이 인터넷에 출렁거렸다. 북한의 중대발표를 빗대 화영을 원수로 추대한다는 의지를 밝힐 것이란 네티즌의 글들이 떠도는 가운데 김광수 대표는 화영의 계약해지를 발표했다.
김광수 대표는 "화영과 스태프 간의 불화"를 지목했고, 이에 화영이 트위터에 "진실없는 사실들"이란 글을 남겼다. 다시 코어콘텐츠는 "KBS 2TV '뮤직뱅크'에서 화영이 생방송 직전에 펑크를 냈다"고 폭로했다.
인터넷 상에서 말들이 걷잡을 수 없이 풀렸다. 인터넷을 넘어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일 때마다 티아라 왕따 이야기를 하고 있다. '티아라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라는 일명 '티진요'라는 카페에 32만여명이 가입할 만큼 관심이 뜨겁다.
사건에 편승한 거짓말도 쏟아졌다. 티아라 백댄서라며 올린 글과 연습생이라고 올린 글, 모두 거짓으로 드러났다. 화영이 "죄송합니다. 이제 멈춰주세요"라는 글을 올렸지만 사태는 쉽게 가라앉을 것 같진 않다.
#객관적인 진실이란 없다. 사람이 백이면 각자 입장을 담은 백개의 진실이 있을 뿐. 그래서 사실(fact)을 촘촘히 찾아 실체를 조명해야 하는 법이다.
서지영과 이지혜 사건 여파는 상당했다. 당시 서지영의 연인이었던 류시원이 광고를 하던 의류매장에 돌이 날아들기도 했다. 두 사람의 사건은 여자멤버들간의 갈등이 폭발하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상대적으로 서지영이 남자멤버와 더 친하면서 갈등양상이 왕따처럼 포장됐었다. 각자의 진실이 있었고, 누구의 잘못이라기 보단 소속사가 덜 까다로운 이지혜의 편을 들어줬다.
윤도현 심현섭 사건은 정치바람에 휘말려서 단순한 일이 크게 불거졌다. 대선을 앞두고 있었기에 양측이 더욱 날카롭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각자의 진실이 있었겠지만 심현섭이 지지했던 이회창 후보 대신 노무현 후보가 당선되면서 사건은 유야무야됐다.
티아라 사건도 역시 각자의 진실이 있다. 사실만 간추리면 화영과 티아라 멤버들, 그리고 스태프 사이에 갈등이 있었다. 결국 KBS 2TV '뮤직뱅크' 출연을 앞두고 갈등이 폭발했고, 티아라 일본 공연을 끝낸 소속사는 화영 대신 티아라 손을 들어줬다.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소속사로선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네티즌의 분노가 폭발했다. 왕따가 기정사실인양 티아라 현재 멤버들에게 비난을 퍼붓고 있다. 분위기에 편승한 거짓글들과 루머가 판을 친다. 다른 아이돌 팬들까지 가세해 욕설을 퍼붓는 분위기다.
왕따가 있었다면 잘못이다. 이유가 있으니 왕따를 한다는 것만큼 치졸한 변명은 없다. 왕따 피해자를 내쳤다면 더 큰 잘못이다. 하지만 왕따가 아니었다면. 적어도 생방송 2시간 전에 펑크를 내는 건 프로답지 못한 일이다.
소속사도 전략적으로 기존 멤버들에 더해 어린 새 멤버를 받았다면 더 신경을 썼어야 했다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티아라 사태는 쉽게 사그러들 것 같진 않다. 당장 티아라 활동이 잠정 중단됐다.
어떤 사실이 새로이 나와도 사람들은 여전히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을 것이다.
진실이란 말이 참 싸게 쓰인다. '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한다'와 이름도 비슷한 '티진요' 가입자 32만명은 용산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두개의 문' 관객 6만명보다 다섯 배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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