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화의 비하인드 연예스토리]

#2005년 3월17일 강원도 삼척. 내외신 기자 350여명이 삼척시 팰리스 호텔에 북적였다. 배용준이 출연한 영화 '외출' 제작보고회에 참석하기 위해 일본 취재진 100여명이 한국을 찾은 상태였다.
당시 한국 취재진의 관심은 배용준이 독도와 관련해 어떤 반응을 보이냐였다. 배용준이 '겨울연가'로 일본에서 '욘사마'로 등극한 한류 초창기였을 뿐더러 당시 한국과 일본이 독도 문제와 교과서 왜곡문제로 첨예하게 대치했을 때였기 때문이었다.
제작사와 배용준도 그 문제를 의식해 영화와 관련된 질문만 해달라며, 아예 사전에 질문지를 걷기도 했다. 하지만 기자회견장에서 '연예가중계' 리포터가 돌발적으로 독도와 관련된 질문을 던졌다. '연예가중계'란 걸 기억하는 건 질문이 제지됐다가 다시 그 리포터가 "배용준을 사랑하는 '연예가중계'입니다"라며 다시 독도 질문을 던졌기 때문이다.
배용준은 재차 질문을 받자 "매우 중요한 사안이라 생각하고 국민의 한 사람으로 매우 걱정하고 있고 관심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 자리가 영화로 인해 마련된 자리인만큼 이 자리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 같다. 나중에 기회를 만들어 다른 장소에서 말씀을 드렸으면 좋겠다. 죄송하다"고 비껴갔다.
배용준은 독도문제에 침묵했다는 기사가 쏟아졌다. 인터넷 공간에서 갑론을박이 쏟아진 건 물론이다.
결국 배용준은 4일 뒤인 21일 홈페이지를 통해 "독도는 대한민국 영토"라며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이성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글을 올려야했다. 배용준은 "독도가 누구땅인지 한마디씩 하면 실제로 바뀌는 게 무엇인지, 진정한 해결을 위해 어떤 도움을 주는지 냉정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적었다.

#2012년 9월4일 도쿄 신오쿠보 코리아 타운. 한류의 성지라 불리는 거리는 평일 오후2시에도 사람들도 북적였다. 대표적인 한류 가게에는 어깨가 서로 부딪힐 만큼 손님들로 가득 찼다.
MB의 독도 방문과 일왕 발언 이후 일본 정치인들의 맹반격이 이어지면서 한일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요즘, 신오쿠보 거리엔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한류용품 판매점 점원은 "독도 문제와 관련해 어떤 언론과도 인터뷰를 하지 말라는 상부의 지시가 있었다"며 말을 아꼈다. 다만 "이번 사태로 매출이 떨어지지는 않았다"며 "계절적인 영향은 있지만 여느 때와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옆 자리에서 카라CD를 고르던 30대 초반의 일본 여성에게 독도 문제로 한일 관계가 악화되고 있는데도 여전히 한류를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속내를 아끼는 일본인이라 그런지 "역사문제를 제대로 아는 사람들이 몇이나 되겠냐"고 말했다. 가게를 나와 또 다른 한류 상품 매장을 찾았다. 매장 앞에서 "강남스타일"을 따라하는 토모에(24살)양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남자친구와 신오쿠보를 찾은 토모에양은 "독도문제는 잘 모른다"며 "정치인들 이야기 아니냐"고 했다.
토모에양은 "비꾸방꾸(빅뱅)를 제일 좋아한다"며 "지드래곤은 너무 카와이(귀엽다)"라고 연발했다.
마침 이날 일본 주요일간지 아사히신문은 "독도 문제가 그림자를 드리면서 K팝 붐에 그늘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일본에는 '후미에'란 단어가 있다. 에도시대에 막부가 금지령을 내렸던 기독교 신자를 색출하면서 밟게 했던 십자가나 성상 등을 일컫는 말이다. 후미에를 밟으면 기독교 신자가 아니고 밟지 않으면 기독교 신자라고 처단했다. 그래서 후미에란 말은 그 사람의 성향을 확인시키는 방법이란 뜻으로 사용된다.
배용준에게 독도 문제를 국내 취재진이 물은 건 말하자면 배용준에게 후미에를 들이댄 것이다. 한류스타에게 너는 한국편이냐, 일본편이냐고 물었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부끄러운 일이다.
당시 일본 취재진은 한국 기자들의 그런 열기를 의아해했다. 일본 취재진 100여명은 배용준과 '뵨사마' 이병헌을 취재하기 위해 일주일간 입국한 상태였다. 이병헌이 주연을 맡은 영화 '달콤한 인생' 시사도 때마침 진행됐기 때문이다. 한 일본 취재진은 "일본에선 "정치와 대중문화는 별개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며 "배용준에게 왜 독도문제를 묻냐"고 의아해했다.
요즘은 일본언론이 더 자극적이다. 일본의 3대 여성지라고 불리는 여성자신은 최근 한류팬이던 외무대신이 카라 CD를 눈물을 머금고 버렸다고 보도했다. 여성자신은 한류스타들을 지면에 빼곡히 채우던 여성지다. '한국 역술인이 전하는 아소 전 총리의 운명은?'이란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그러던 것이 요즘에는 한국 인터넷 매체가 축구선수 가가와 신지와 어덜트 비디오 스타 이치노세 아메리와 열애설을 뜨겁게 보도하고 있다면서 한국인들은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나온 게 가가와 신지 때문이라고 적었다. 가가와 신지 열애설 자체가 오보라면서.
이런 한류 때리기는 정론지인 아사히신문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선 여전히 한류스타들에게 후미에를 들이대고 있다. 일본에서 인기 높은 걸그룹 카라의 컴백 기자회견에서 독도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이 나왔다. 카라는 침묵했고, 카라는 침묵했다는 보도가 쏟아졌으며, 인터넷에선 악의적인 글들이 이어지고 있다. 장근석의 일본 기자회견이 준비부족으로 취소된 것을 놓고 반한류 때문이란 인터넷 기사가 만들어지는 것도 문제다. 장근석측은 "독도 문제가 불거지기 전에 이미 연기된 것"이라고 밝혔다.
냉정할 필요가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한국과 일본의 외교 관계는 춤을 췄다. 정권 초기에는 우호적이었다가 말기에는 일본과 외교가 악화됐다. 언론도 그에 따라 춤을 췄다. 한류스타들에게 후미에를 들이대는 건 냉정하지 못한 처사다.
배용준은 당시 글을 올릴 때 "저에게 주어진 역할이 있다면 국가 영토의 선을 긋는 말 한마디보다 아시아 가족들의 마음과 마음의 선을 이어나가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라고 썼다.
냉정하고 차분한 접근이 필요한 때다. 한류스타들이 연결한 선을 양국의 정치인과 언론이 끊을 필요는 없지 않나.
여담이다. 싸이의 일본 내 인기는? 한류상품 매장 매니저에 따르면 마니아들이 좋아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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