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
Starnews Logo

문유석 작가 "코로나19로 무서움 느껴..'악마판사'=사고 실험"[★FULL인터뷰]

문유석 작가 "코로나19로 무서움 느껴..'악마판사'=사고 실험"[★FULL인터뷰]

발행 :

안윤지 기자
문유석 작가 /사진제공=tvN
문유석 작가 /사진제공=tvN

JTBC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를 통해 새로운 법 세계를 펼쳤던 문유석 작가가 달라졌다. 디스토피아, 악마 등 다양한 요소로 색다른 법원을 만들어 공감을 샀다.


문유석 작가는 최근 tvN 토일드라마 '악마판사'(극본 문유석, 연출 최정규, 제작 스튜디오드래곤·스튜디오앤뉴) 종영을 기념해 스타뉴스와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악마판사'는 가상의 디스토피아 대한민국에서 전 국민이 참여하는 라이브 법정 쇼와 함께 등장한 강요한(지성 분)을 그린다. 최종회는 시청률 8.0%(닐슨코리아 기준)로, 최고 시청률을 달성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디스토피아 장르는 국내 드라마에선 낯설다. 그렇기 때문에 극 초반, 시청자들은 다소 잔혹한 방식을 보고 거부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회차가 거듭될수록 디스토피아 세계관에 녹아들었으며 또 다른 세계를 구축해냈다. 또한 문유석 작가는 앞서 '미스 함무라비'를 통해 옳은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법원을 그렸다면, '악마판사'에선 가는 길이 거칠지라도 자신만의 정도를 지키는 법원을 그렸다. 이 점은 충분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지성, 김민정 등의 활약도 대단했다. 특히 지성은 그간 드라마 '킬미 힐미', '비밀', '피고인', '아는 와이프', '의사요한' 등 폭넓은 연기를 해왔다. 오랜 시간 활동해온 만큼 같은 직종을 연기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분명한 차별점을 뒀다. 그간의 경험들이 '악마판사'에서 큰 빛을 발휘했다. 지성이 연기한 강요한은 냉소적이지만 어딘지 모를 사연이 숨겨진, 비밀스러운 인물이었다. 추상적인 단어로 설명되는 만큼 연기도 어려웠을 터. 그러나 지성은 이에 굴하지 않고 강요한이란 인물을 완벽하게 만들어냈다.


전국민이 참여하는 재판이라는 설정도 눈길을 끌었다. 코로나19 사태가 약 2년 가까이 진행되며 이젠 비대면이 더 익숙해진 시대다. 이에 걸맞게 애플리케이션으로 진행되는 재판은 시대에 발맞춰 탄생한 듯 했다. 문유석 작가는 이번 인터뷰에서 호평과 큰 화제성으로 마무리된 '악마판사'의 모든 걸 밝혔다.


/사진제공=tvN '악마판사'
/사진제공=tvN '악마판사'

◆ 이하 문유석 작가와 나눈 인터뷰 전문


-'악마판사' 종영을 맞이한 소감이 어떠한지. 또 시청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 이제 더 이상 이 훌륭한 배우분들의 연기를 주말마다 볼 수 없다는 게 슬프다. 시청자 모드로 보고 있었다. 최초에는 20부작으로 구상했었는데 그게 가능했다면 더 찬찬히 이야기도 풀고 배우분들의 연기도 더 볼 수 있었겠다 싶어 아쉽기도 하다. 성원해 주시고 함께 해 주신 시청자분들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가상의 디스토피아 대한민국이란 설정을 만든 계기는 무엇인가.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세계가 한순간에 달라지는 걸 보며 무서움을 느꼈다. 스페인에서는 요양원 직원들이 도망가 버려서 방치된 노인들이 집단 사망하는 일이 벌어지고, 세계 곳곳에서 경제가 붕괴되어 생계가 곤란한 이들이 폭증하고, 초강대국 대통령은 의학 전문가들의 권고를 가짜 뉴스 취급하는데 지지자들은 광적으로 열광하며 의회의사당을 습격하고..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미래에는 어떤 세상이 되고 마는 걸까 생각하다가 넷플릭스 드라마 '블랙 미러'나 영화 '브이 포 벤데타' 같은 근미래 디스토피아물처럼 일종의 사고 실험을 해보기로 한 것이다.


이런 세상이라면 현실에 대한 불만을 증오와 배타주의로 해소하려는 극단주의 세력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10부 죽창 재판 때 죽창이 선언문을 낭독하는 씬이 있는데 그 첫 마디가 "신념을 가진 한 사람은 이익만을 좇는 백만 명의 힘에 맞먹는다"이다. 이는 2011년에서 노르웨이에서 무려 77명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극우 테러리스트 브레이빅이 남긴 트윗 내용에서 따 온 것이다. 이처럼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걱정스러운 현상들을 극중에 녹여 낸 결과 해외 시청자들이 자기 나라 얘기라며 적극 공감하는 반응들을 보이고 있다. 한국 콘텐츠에 관한 세계인의 관심이 높은 만큼 창작자들도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글로벌한 주제들로 관심을 넓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악을 악으로 처단하는 판사 강요한 캐릭터를 탄생시킨 배경이 궁금하다. 그로 인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있으셨다면 무엇인지.


▶ 다크 히어로에 대한 열광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시스템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다. 문제는 그 분노가 폭주하기 시작하고 미디어와 정치권력이 이를 증폭시키며 악용하면 폭력과 극단주의, 혐오가 지배하는 사회가 된다는 점이다. '악마판사'의 세계는 이미 그 악몽이 극에 달하여 시민들의 건강한 연대로 문제를 해결할 동력조차 사라진 가상의 디스토피아다. 강요한 식의 극약 처방 외에는 마땅한 대안조차 없는 세상이란 참 무섭고도 슬픈 세상이다.


아직 늦지 않았으니 그런 세상을 만들지 말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시민들은 정치, 사법, 언론 등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이들, '시스템'에 해당하는 이들이 다크 히어로가 되어주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자기 할 일을 묵묵히 잘 해서 다크 히어로가 필요하지 않은 세상을 만들어주기를 바랄 뿐이다. 자기가 강요한이라고 착각하는 이들의 대부분은 실제로는 허중세일 뿐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강요한의 마지막 재판은 과연 재판일까. 사실 그것은 폭탄 테러를 생중계한 것에 불과하다. 합법적인 재판 절차가 아니고 제시된 증거 역시 동영상일 뿐 조작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시청자인 우리는 전지적 시점에서 그것이 진실임을 알지만 극중 가상의 디스토피아 대한민국에서는 잠깐 폭로 동영상을 보고는 압도적 다수가 적법절차에 따른 재판 없이 폭탄 테러에 동의를 표시한 것이다. 만약 허중세가 딥페이크 기술로 정반대 영상을 그럴 듯하게 조작하여 요한의 동조자들을 처단하려 들었다면 어땠을까.


묘한 것은 14부 전기의자 사형집행에 대해서는 극중 시민들이 불편함을 느끼며 망설이는데, 16부 폭탄 테러에 대해서는 거침 없이 찬성했다는 점이다. 누르는 행위와 상대방의 즉각적인 고통 사이의 직접성, 노골성의 차이일 뿐 본질은 다르지 않은데 말이다. 현대 심리학의 연구결과가 다양하게 보여주고 있듯이 우리 인간들은 놀라울 만큼 쉽게 어떤 방향으로 유도되기 쉽다. 그렇기 때문에 법치주의라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극중 악역들이 처단당하고 새롭게 그 자리를 차지한 엘리트들 역시 전과 그닥 다르지 않은 행태들을 보인다. 결국 더디지만 많은 이들의 노력에 의해 시스템이 온전하게 바뀌어야 진정한 변화가 올 것이다. 가온의 독백, '요한이 필요 없는 세상을 만들려면, 나는 무엇을 해야할까'가 이 이야기의 진정한 마무리라고 생각한다.


/사진제공=tvN
/사진제공=tvN
/사진제공=tvN
/사진제공=tvN

-극 중 캐릭터 직업적 특성도 눈길을 끌었다. 어떻게 구성하게 됐나.


▶ 캐릭터들을 만들 때 아예 성별을 무시하고 만들었다. 정선아가 서정학에게 당했던 성폭력 등 특정한 맥락 외에는 성별이 큰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차경희는 그저 야심 만만한 권력자일 뿐이고, 윤수현은 첫사랑을 지키고 싶어하는 형사일 뿐이다. 둘 다 한국 드라마에 남성으로 많이 나오는 익숙한 캐릭터들이다. 반대로 김가온 역할은 여성 캐릭터에 부여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인습적인 성 역할에 갇혀 있는 캐릭터들은 뻔해서 재미없고, 그렇다고 여성들은 모두 주체적이어야 하고 남성들은 납작해도 상관없다는 식의 편향도 작위적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다 개별적이다.


-'악마판사'를 집필하시면서 가장 공을 들였던 장면이나 혹은 고민했던 장면이 있다면 어떤 장면이었나.


▶ 우선 13부 엔딩 수현의 죽음 장면이다. 요한에게는 이삭이 있고, 가온에게는 수현이 있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어 삶을 놓지 않게 만들어 준 유일한 존재들이다. 대본 초고에는 이삭이 요한을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는 씬이 있었다. 자기가 없어져야 아버지가 요한을 학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였다. 종교적이기까지 한 그런 무조건적인 사랑을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하다가, 총을 맞아 죽어가는 수현이 가온의 이마 상처를 보면서 "괜찮아? 피 나 잖아..." 라며 가온부터 걱정하는 씬을 썼다. 이 비극적인 죽음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것이 정선아의 잔혹한 큰 그림이었음이 밝혀지는 15부 엔딩까지 극은 파국을 향해 달려간다. 신들의 불가해한 변덕으로 잔혹한 운명을 맞는 그리스 비극처럼.


크게 부각되지는 않은 씬이지만 12부 초반, 요한을 그림자처럼 돕는 K가 가온에게 처음으로 속내를 털어놓으며 요한 곁에 있으면 결국 모든 걸 잃고 말거라고 쓸쓸하게 말하는 씬도 기억에 남는다. 사실 이 씬은 영화 '렛 미 인'을 생각하면서 썼다. 외로운 뱀파이어 이엘리의 곁에서 그녀를 지키며 살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는 중년 사내, 그리고 같은 운명을 스스로 짊어지는 소년 오스칼의 이미지가 그 씬을 쓸 때 자꾸 떠오르더라.


-지성, 김민정, 진영, 박규영 배우를 비롯해 장영남, 안내상, 김재경, 백현진 등 많은 배우들의 활약으로 '악마판사'가 멋지게 완성될 수 있었던 것 같다.


▶ 정말 모든 배우분들이 찬란하게 빛나는 연기를 해주셨다. 사실 '악마판사'는 이질적인 요소가 가득한 혼돈 같은 이야기다. 만화처럼 과장된 디스토피아 설정에 고전 비극의 서사, 연극적인 문어체 대사, 의도된 찝찝함과 불편함. 제가 좋아하는 이런 요소들을 과잉될 만큼 집어넣고 밀어붙일 수 있었던 것은 배우분들을 믿었기 때문이다. 지성 배우와 김민정 배우가 없었다면 강요한과 정선아라는 독특한 캐릭터를 누가 살릴 수 있었을까. 가혹한 운명 속에 고통 받는 힘든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 주신 진영, 박규영 배우도, 각기 다른 개성의 악역을 맡아 광기 어린 연기를 해 주신 장영남, 안내상, 백현진 배우도, 소박하지만 공감 가는 인물을 연기해 주신 김재경 배우도, 그 외에도 단역 분들까지 모든 배우분들의 훌륭한 연기가 대본의 이상함과 부족함을 메워 주셨다. 깊이 감사드린다.


/사진제공=tvN
/사진제공=tvN
/사진제공=tvN
/사진제공=tvN

-지성, 김민정을 캐스팅한 이유가 무엇이며 어떤 점이 캐릭터와 잘 맞는다고 생각했나.


▶ 지성 배우는 전작 '피고인' 등에서 고전 비극 속의 영웅 이미지를 잘 표현했는데, 거기에 속내를 알 수 없는 양면성을 더하면 굉장히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김민정 배우는 아이 같은 천진함과 세상 다 산 듯한 허무함을 동시에 표현할 수 있는 드문 배우라고 생각했다. 두 분 다 대체 불가능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미스함무라비'와 '악마판사'는 같은 직업군을 다루고 있으나 분위기 자체는 많이 다르다. 현재 문유석 작가는 판사를 그만두셨다고 들었는데 작품 분위기가 달라진 것 또한 이런 상황에 영향을 받은 부분이 있나. 만약 있다면 어느 부분이 가장 컸는지 궁금하다.


▶ 솔직히 아직은 전업작가라는 자각이 부족해서인지 큰 영향을 미친 것 같지는 않다. '악마판사'의 콘셉트를 떠올린 것도 '미스 함무라비' 방영 당시였다. 비슷한 톤의 이야기를 또 쓰는 건 재미 없으니 완전히 반대되는 톤의 이야기를 써 보면 어떨까 생각했던 것이다. 톤 앤 매너가 다를 뿐 사실 그다지 다르지 않은 이야기들이기도 하다. '미스 함무라비' 후반부에 박차오름이 세상으로부터 당했던 핍박과 고난들을 떠올려 보시면 그다지 장밋빛은 아니었다.


-최근 '빈센조' '모범택시' 등에서 다크히어로가 등장하며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악마판사'의 강요한 또한 다크히어로에 속하기도 하는데요. 다크히어로는 장단점이 확실한 캐릭터인 것에 따라 '악마판사'도 "통쾌하다"란 반응과 "너무 자극적이다"란 평이 있다. 작가로서 이런 양면적인 반응에 어떻게 생각하고 또 작품을 쓰면서 가장 주의했던 점은 무엇인가.


▶ '악마판사'는 그 양면적인 반응을 느끼게 하는 것 자체가 기획의도인 이야기였다. 일면 통쾌하지만 그 뒤에 찝찝함과 불편함이 뒤따르도록 구성돼 있다. 다크히어로는 분명 시민들의 정당한 분노에서 출발하기에 픽션 속에서 통쾌함과 공감을 준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다르다. 수단과 절차 따위는 필요 없다면서 모두가 각자의 정의를 내세우고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하기 시작하면 더 큰 지옥이 될 것이다. 그래서 다크 히어로는 현실에 대한 은유로서 픽션의 세계에 머물러있어야 한다. 솔직히 다크 히어로에 대한 열광이 끝나는 시대가 오기를 바라면서 썼다.


-두 작품 모두 화제작이었기 때문에 앞으로의 부담도 클 것 같은데 차기작에 대한 생각은 어떠한가.


▶ 이번에는 무겁고 어려운 이야기를 했으니 다음번에는 좀 더 쉽고 밝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쓰는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즐거운 마음으로 차기작을 쓰고 싶다.


안윤지 기자 zizirong@mtstarnews.com


주요 기사

연예-방송의 인기 급상승 뉴스

연예-방송의 최신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