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이보영(44)이 혹독한 사내정치를 뚫고 흙수저 사원에서 그룹 임원까지 자수성가한 '커리어 우먼'을 연기해 시청자들에게 뜨겁게 응원 받았다. JTBC 토일드라마 '대행사'(극본 송수한, 연출 이창민)에서 고아인(이보영 분)은 프로젝트 성공을 위해 사원들의 피땀을 갈아넣은 '소시오패스'이기도 했지만, 점차 팀원을 이해하고 '강강'(강한 자에게 강한 사람)으로 몸소 나서면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 직장인들의 공감과 박수를 받았다.
'대행사'는 VC그룹 최초로 여성 임원이 된 고아인이 최초를 넘어 최고의 위치까지 자신의 커리어를 만들어가는 모습을 그린 우아하게 처절한 광고대행사 오피스 드라마.
이보영은 극 중 흙수저에서 19년간 돈과 성공에 미친 '돈시오패스'로 그룹 임원까지 오른 VC기획 제작팀 CD 고아인 역을 맡았다. 고아인은 차기 대표를 노리는 최창수 상무(조성하 분)의 정치 계략으로 승진해 토사구팽 위기에 놓였지만, 회장 딸 강한나 상무(손나은 분)를 이용해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한 통쾌한 플랜을 펼쳤다.

-'대행사' 대본을 처음 봤을 때 어떤 느낌이었나.
▶대본을 처음에 9부까지 봤는데 진짜 재미있게 읽었다. 나는 조직생활, 정치를 해본 적이 없었는데도 재미있게 읽었다. 사람들이 머릿속으로 생각한 것을 입으로 말할 때 카타르시스가 느껴졌고 대리만족이 느껴졌다. 아인이가 상황을 깨가면서 레벨업을 하는 느낌이었다. 감독님에게 '9부 이후로 아인이가 한번은 져야하지 않을까요?'라고 말해보기도 했다.(웃음) '기쁨을 나누면 질투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약점이 된다'는 식의 어떻게 보면 뜬구름 잡아 보이는 대사가 많았는데 그런 게 훅 들어왔다.
-'대행사'는 첫 회 시청률 4.8%에서 출발해 마지막 16회에서 16%로 3배 이상 치솟고 유종의 미를 거뒀다.
▶생각했던 것보다 시청률이 잘 나와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이렇게까지 나올 줄은 몰랐다. 나는 7~8% 정도 되지 않을까 싶었고 막방 때 10% 정도 나올까 기대했는데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이 좋아해주더라. 내가 보통 10시 대에 자는데, 그 시간에 드라마를 많이 볼 줄 몰랐다. 아침에 시청률을 보면 환희와 재미가 있더라. 3회 시청률부터 놀랐다. 생각했던 7프로가 너무 빨리 나왔다.
-시청률 26.9%를 기록한 송중기 주연의 '재벌집 막내아들' 후속작이어서 부담감이 있진 않았는지.
▶앞에 시청률이 잘 나온 게 예전엔 후속작에 영향이 있었지만 요즘은 그런 게 없는 것 같다. 부담을 갖긴 했다. 포스터에 나 하나만 놓고 나오면 어떡하냐고, 공통 분담을 해야 하지 않겠냐고 생각했다. 나는 '대행사'가 고아인, 강한나, 조은정(전혜진 분) 여자 세 명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시간대는 달랐지만 이보영 VS 전도연(tvN '일타 스캔들')의 주말드라마 대결구도도 있었다.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시간대도 다른데 왜 자꾸 비교하나 싶었다. 우리 것만 붙은 게 아니라 TV조선 '빨간풍선'까지 주말극 경쟁을 다 붙였더라.(웃음) 감독님에게 밤 10시 반에 누가 드라마를 보겠냐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일타 스캔들' 양희승 작가님에게 '윈윈하자'고 문자가 왔었다.
-이보영과 고아인의 닮은 점은 무엇일까.
▶얼굴?(웃음) 나는 고아인 같은 성격은 못 된다. 혼자 무너지는 성격도 못 된다. 나는 그렇게 살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인이가 텅 빈 집에 들어간 신을 찍을 때 항상 아팠다. 적막한 곳에 들어갈 때 아인이가 굉장히 외롭겠다고 생각했다.
-완벽한 커리어우먼으로 보인 아인을 동경한 여성 시청자들도 많았다. 아인에게 닮고 싶었던 부분이 있었는지?
▶(닮고 싶은 부분이) 1도 없었다. 나는 강박증적으로 하고 싶지 않다. '쟤는 왜 자꾸 약을 먹고 담배를 펴?'라고 생각할 텐데, 아인이는 강박이 흐트러지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 게 해제가 돼야겠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인이를 연기하면서 닮고 싶다기보다 외롭고 힘들겠구나 싶었다. 아인이가 해제되는 건 의사 친구에게 얘기할 때뿐이다. 아인이가 강약(강한 자에게 약한 사람)이 아니라 강강(강한 자에게 강한 사람)이라 그 부분은 시청자들이 닮고 싶어 하는 것 같더라.

-아인을 연기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낀 장면이 많았을 것 같다.
▶소리를 그렇게 질러대는데 재미있더라.(웃음) 종이를 찢어낼 때도 재미있었다. 내가 그동안 과격한 연기를 해본 적이 잘 없었다. 기본적으로 현장 분위기가 되게 좋았고 세트 촬영이 많았는데 끝나고 맥주 먹으면서 되게 재미있게 촬영했다. 떼샷을 많이 찍은 건 거의 처음이었는데 같이 만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손나은과 워맨스 연기를 함께한 느낌은?
▶나은 씨가 되게 열심히 했다. 감독님이 (손나은에게) 집요하다고 말했는데, (손나은이) 안 되면 될 때까지 몇 테이크를 촬영했다. 끈기 있게 잘 따라왔다. 뒤로 갈수록 많이 발전한 게 보여서 좋았다.
-아인이 엄마에 대한 아픈 감정을 느낀다는 점에서 과거 출연한 드라마 '내 딸 서영이' 서영 역과 비슷한 부분이 있어 보인다.
▶왜 나는 부모복이 없는 것인가 생각했다.(웃음) 나는 아인이가 겉으로 센 척하지만 집에 가면 약으로 버티는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서영이는 상처가 많은데 발산하지 못하고 숨기는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남편인 배우 지성은 '대행사'를 보고 어떤 반응을 줬나.
▶'재미있어'라고 얘기해줬다. 저희 오빠는 울었다. 아기를 갖고난 후엔 드라마에서 부모 자식의 장면이 나오면 눈물이 난다. 나도 팔짱 끼는 장면을 촬영을 찍으며 울었다. 오빠는 한나랑 박차장이 헤어지는 장면에서 울더라. 내가 보고 '슬퍼?'라고 되물었다. 오빠가 원래 눈물이 많다.(웃음)
-고아인 캐릭터를 지금은 어떻게 떨쳐냈나.
▶아기 낳기 전엔 캐릭터 떨쳐내기가 힘들었다. '내 딸 서영이'를 찍었을 때는 드라마가 끝나고 2달 동안 아팠다. 아기 낳고선 현실로 바로 와야 해서 캐릭터를 가슴에 담아둘 겨를이 없다. 드라마 찍을 때마다 마지막회를 찍으면 '내가 이런 작품을 또 만날 수 있을까'란 생각을 하면서 뭉클해진다.

-워킹맘 은정 역에 공감이 많이 됐겠다.
▶공감됐다. 그런데 (워킹맘은) 케이스 바이 케이스다. 어떤 아이는 떨어져 있는 걸 별로 신경 안 써도 어떤 아이는 떨어지는 걸 힘들어하기도 한다. 나도 아이가 잘 때 집에 들어간 적이 많았다. 왜 죄책감을 내가 항상 가져야 할까 생각하기도 했다.
-2013년에 지성과 결혼한 후 2015년에 딸을, 2019년에 아들을 출산했다. 아기를 낳은 후 스스로에게 생긴 변화는 무엇인가.
▶멘탈이 점점 강해지는 것 같다. 아기가 생기기 전에는 섬세하고 예민했던 부분이 지금은 많이 깎이고 있다. 과거엔 육감까지 발달해서 연기했다면 지금은 더 단단해진 것 같다. 아기가 우는 와중에 대본을 볼 수 있는 건강함이 생겼다. 일과 육아의 병행이 점점 잘되고 있다. 아이들이 원해서 태어난 게 아니고, 내가 낳고 싶어서 낳은 아이들이기 때문에 노력해서 키우려 한다. 내가 극성맘은 아니지만 좋은 엄마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아이들에게 공부를 많이 시키진 않고 있다.
-'결혼'을 추천하는 편인지.
▶나는 결혼을 강추하는 편이다. 결혼을 해서 생긴 남편이 여행도 같이 다니고 뭔가를 같이 하는 베스트 프렌드인 것 같다. 드라마로 힘든 얘기도 같이 하고. 정말 좋은 사람을 만난다면 강추다. 아이를 낳는 건 선택이겠지만.
-여배우들이 주연으로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추세다.
▶나이가 들수록 대본 들어오는 양이 줄긴 하다. 하지만 선배님들이 너무 잘 쌓아놓고 계셔서 나도 그 길을 따라갈 수 있겠다는 희망, 마음이 생겼다. 10년 전만 됐어도 내 나이가 되면 사이드로 밀려났을 텐데 지금까지 선배들이 잘하고 계셔서 나도 잘 버티자는 생각이 들었다.
-OTT 플랫폼이 늘어나면서 배우로서 활동 영역이 넓어지기도 했는데.
▶채널이 많아진 것만큼 장단이 있는 것 같다. 배우들에게 기회가 많아진 것 같으면서도 겁이 나는 게, 내가 잘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아인이가 잘 버티는 것처럼 나도 잘 버티고 싶다.
-'대행사' 애청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씀.
▶생각보다 많이 사랑해 주셔서 감사하다. 기대 이상이었고 나는 엔딩이 너무 좋았다. 드라마는 엔딩이 좋으면 행복하지 않냐. 우리가 다 같이 성장하는 걸로 끝나서 좋았다.
한해선 기자 hhs422@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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