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출신 파비앙 인터뷰

"'공동체 문화' 한국에서 '어른'이 됐어요." (파비앙)
파비앙(39)은 한국 살이 19년 차, 대표적인 '대한외국인'이다. 프랑스 태생으로 어린 시절 태권도 선수로 활동하던 중 'K-문화'에 매력을 느껴 2007년 여행을 계기로 처음 한국 땅을 밟은 파비앙. 결국 이듬해 드라마 '에덴의 동쪽'에 출연, 연예계 데뷔로 이어지며 그의 한국 여행은 '삶'이 되었다. 이후 파비앙은 2014년 MBC 예능 '나 혼자 산다'로 대중적인 인지도를 쌓았다. 그해 그는 '2014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베스트 팀워크 부문 특별상에 올해의 뉴스타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파비앙은 국내에서 데뷔한 여느 외국인 연예인들과 다른 행보를 걸어가며,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했다. 활동을 연예계에만 국한하지 않고 K-문화 전반에 걸쳐 섭렵하는 놀라운 이력을 써 내려가고 있는 것. 파비앙은 태권도 공인 5단, 한국사능력검정시험 1급 취득에 8년째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외국인 객원 해설사, 창덕궁 해설 경험, 지난해부터는 국립문화유산연구원 홍보대사로 활동 중이다. 2022년엔 향후 10년간 한국에서의 삶이 보장된 영주권을 취득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파비앙은 1년여 공백기 중엔 그 어렵다는 '한국관광통역 안내사 자격증' 시험에 도전, '국사 만점'으로 취득해 내는 못 말리는 한국 사랑으로 혀를 내두르게 했다.
누구보다 한국에 진심인 파비앙을 9일 오후 서울 광화문 스타뉴스 사옥에서 만나봤다. 장대비가 쏟아진 이날도 어김없이 해설 활동을 위해 박물관에 출근할 것이라는 소소한 근황 토크로 인터뷰를 시작했는데. 기자가 건넨 명함에 "순우리말 이름이네요"라며 짚고 넘어가는 모습도 영락없는 한국인이었다.

먼저 파비앙은 그간의 공백기에 대해 "한 1년 정도 활동을 잠깐 멈췄는데, 미뤄왔던 일들을 하고 관관통역 안내사 공부를 하며 보냈다. 누구에게나 쉼이 필요할 때가 있다. '잠깐 쉬자' 했는데 그 기간이 어느 정도가 될 줄은 저도 몰랐다. 생각보다 오래 쉬 게 된 건 이번에 좀 더 지식을 튼튼하게 쌓아보자 하는 마음에서였다. 공부가 재밌기도 했다"라고 밝혔다.
왜 '관광통역 안내사' 자격증이었던 것일까. 파비앙은 "저도 처음엔 잘 몰랐다. 우연히 이런 자격증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서점에 가서 관력 책을 찾아봤다. 그때는 그냥 제가 국사도 좀 알고 있기에, '재밌겠다'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근데 시험이 1년에 한 번뿐이고 1차 필기, 2차 면접은 네 가지 요소로 구성돼 있고 난이도가 높았다. 생각보다 외워야 할 게 정말 많더라. 어려웠지만, 호기심이 생겼다. 제가 한국에 와서 실제로 곳곳을 여행 다니고 안 해본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20년 가까이 살고 있지만 아직 배울 게 많구나 싶어 전문적으로 다가가고 싶어졌다"라고 끝없는 배움의 자세를 내비쳤다.
거북목이 심해질 정도로 '열공'(열심히 공부), 결국 국사 과목 '만점'을 기록한 파비앙. 그는 "한국 역사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이번 기회로 더 깊이 있게 알게 됐다. 많이 배우며 (한국 문화에 대해) 이해하게 됐다. 자격증을 따는 과정에서 사실 부끄러움도 많이 느꼈다. 그전엔 지식이 너무 얕았다는 생각이 들더라. 수박 겉핥기식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며 창피함을 느끼고, 더 열심히 공부했다"라고 겸손하게 얘기했다.

이토록 파비앙을 빠져들게 만든 '한국 문화'의 매력은 무엇일까. 파비앙은 "한국 사회가 쉽지 않다. 저도 이해 못 할 때가 많다. 많은 것을 깊이 들어가야 이해할 수 있는, 그런 문화이다. 처음엔 '공동체 문화'라는 점이 신기했다. 왜냐하면 프랑스에선 공동체 문화를 찾아보기 어렵다. 평소엔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 어려울 때면 똘똘 뭉쳐 해내려 하는 게 신기하게 다가왔다. 역사를 들여다보니 한국은 수많은 침략으로 인해 고난을 겪었고, 그럼에도 버텨내고 단결력으로 여기까지 왔더라. 또 이 공동체 문화는 상부상조하는 농경생활 영향도 있고 거슬러 올라가면 '널리 인간세상을 이롭게 하라'라는 홍익인간의 정신이 지금까지 계승되어 현대인들에게 아로새겨져 있다. 이렇게 하나씩 배울 때마다 '이래서 이랬구나' 이해하게 되면서 한국 문화에 큰 흥미를 느끼게 됐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파비앙은 "모든 건 어떤 사명감보다는 순수한 호기심으로 시작했다. 그런 공부가 쌓여 감사하게도 기회들이 생겼는데, 그럴 때마다 부족함을 느껴서 제 자신한테 지고 싶지 않아 배움에 매진했다. 도태되지 않으려고 늘 배우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 앞으로도 한 단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 나갈 것"이라고 당차게 말했다.
이제는 어엿한 외국 연예인 계보의 '선배' 라인으로서 남다른 마음가짐을 드러냈다. 파비앙은 "외국 방송인이라고 말해야 하나, 아무튼 그런 친구들이 요즘 많은데 한국 문화의 위상이 높아진 만큼 당연한 변화라고 생각한다. 굳이 분류하자면 1세대는 이다도시 선배님, 2세대는 '미수다'(미녀들의 수다) 출신들, 제가 2.5세대쯤 될 거 같다. 제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만 해도 활동하시는 외국인 분들이 많이 없었다. 그래서 외국인이 한식을 맛있게 먹으면 '우와' 하는 신선한 시선으로 바라봐 주시고 한국말을 조금만 잘해도 '대박'이라고 놀라워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걸로 부족하다. 지금은 더 이상 신선하지 않기에, 늘 업데이트를 해야 한다. 그래서 저도 나름 제 분야에서 새로운 걸 찾으려 한다. 이제는 삶이 되었지만 (한국을) 이방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려 하고, 반복적으로 '비움'과 채움'을 실천하려 노력하고 있다. 또 제가 생각하는 게 늘 맞지는 않다, 틀릴 수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파비앙이 한국 정통문화를 파고드는 건 단순히 방송인으로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차원은 아니었다. 그는 "너무 좋은 기회로 방송을 시작하게 됐고, 감사하게도 찾아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자연스럽게 지금까지 오게 됐다. 저 역시 재밌게 임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스스로 연예인으로 생각한다거나 큰 뜻을 갖고 있는 건 아니다. (방송을) 한국에 오자마자 시작했으니까, 오랫동안 가장 정성 들여 한 일은 맞지만 저를 어떤 직업이다 하고 규정 지을 수는 없다고 본다. MC도 많이 봤고 영어-한국어-불어로 강연에 해설도 하고 있고 되게 다양한 일들을 하고 있다. 유튜버로서 크리에이터 비중도 있고 왔다 갔다 하다 보니 뭐라고 딱 말씀드릴 수 없는 거 같다. 그저 박물관에 출근하는 매일매일이 즐겁고 한국 역사를 배우는 즐거움이 크다"라고 말했다.
여전히 '나 혼자 산다'로 보내주는 큰 사랑엔 잊지 않고 감사 인사를 남겼다. 파비앙은 "오늘도 지하철에서 어떤 아저씨가 '반갑다'며 알아봐 주셔서 감사했다. 아무래도 '나 혼자 산다'에서 솔직하고 단순한 청년의 모습을 보여드렸다 보니 오래 알고 지낸 사람처럼 편하게 대해 주신다. 똑같이 아침에 일어나면 국 끓여 먹고, 이런 친근한 모습을 좋아해 주신 게 아닐까 싶다. 불러주신다면 저는 물론, 또 나가고 싶다"라고 얘기했다.

지난 20여 년의 한국 살이를 돌아보면 어떤 감회일까. 파비앙은 "저는 한국에 와서 '어른'이 됐다. 프랑스에선 한 적 없는 사회 경험을 한국에 와서 처음 했으니까. 인생 살면서 즐거움, 힘든 것도 다 한국에서 배웠다. 프랑스와 달리 '나'보다 '우리'가 앞선 한국 사회에서 산 기간이 이제는 반이 넘어가고 있다. 나 혼자 산 삶도 즐겁고 좋지만, 나누고 공동체로서 섞이는 삶의 가치도 소중하다는 걸 느끼고 있다. 가끔씩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몇 번 한 적이 있고 힘든 일도 많았지만, 근데 이건 프랑스나 다른 나라에 살았어도 마찬가지일 거 같다. 인간관계는 어차피 힘들다"라면서 "프랑스가 나를 태어나게 한 나라이지만, 한국은 날 성장시킨 나라이기에 무게 중심이 한국으로 많이 옮겨졌다. 이제는 안도감을 느끼고 있다"라고 터놓았다.

끝으로 파비앙은 "국립문화유산 연구원 홍보대사로서 올해는 더 많은 일을 기획하고 있다. 또 한국관광통역안내사 자격증을 올해는 스페인어, 내년엔 일어로도 취득하려 한다. 지금 하고 있는 문화역사 강연과 박물관 해설 일을 앞으로도 계속 열심히 할 계획이다. 지속 가능한 열정의 기반을 튼튼히 다지기 위해 늘 새로운 취미를 찾으려 하는데, '책가도'도 배워볼 생각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팬들에게 "걱정해 주셔서 감사드리고, 오랫동안 새 영상을 안 올려서 떠나실 법도 한데 돌아오자마자 크게 반겨주셔서 감사드린다. 정성스럽게 긴 댓글을 많이 달아주셔서 감사하다. '파비양반'으로 채널명도 바꾸고 업그레이드된 모습으로 다시 시작했기에, 앞으로 재밌는 콘텐츠 많이 올리도록 하겠다. 많은 시청 부탁드린다"라고 인사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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