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反기업-沒기업 문제있다

김수진 김현록 기자 / 입력 : 2008.05.01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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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속 반(反) 기업 정서가 너무하다. 내로라 하는 기업의 대표들이 허구헌날 불륜을 일삼는가 하면, 사장의 친인척이 순식간에 경영에 뛰어들곤 한다. 재벌 3세들은 값비싼 외제차를 몰고 예쁜여자 사냥에 열심인 버릇없는 애송이로 묘사되기 일쑤다. 반(反) 기업일 뿐 아니라 현실을 모르는 몰(沒) 기업이기도 하다.

40%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인기몰이중인 KBS 1TV '미우나 고우나'(연출 이덕건)가 대표적이다. 사장인 장인이 쓰러져 누운 사이 야심가인 사위(조동혁)가 불륜장면이 담긴 사진으로 유력한 대표이사 후보를 이사회에 불참시키고는 단숨에 사장에 취임한다. 식품공장 설립을 앞두고 부지 인근 주민들은 연일 반대 시위를 벌이는 중이다.


어디 이뿐이랴. SBS 주말극 '행복합니다'에서는 평사원(이훈)이 사장 딸과 결혼하자마자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더니 처남과 후계자 수업을 받는다. 종영한 SBS 주말극 '황금신부'에선 베트남에서 아내 몰래 여자를 만나 낳은 딸을 모른 척하는 재벌(임채무)이 등장하기도 했다.

부자에 대한 반감, 기업에 대한 반감에서 벗어나자는 목소리가 높아가는 과정에서도 드라마 속 재벌이나 기업의 모습은 바뀌지 않고 있다. 부자나 기업에 대한 뿌리깊은 편견이 드라마에 그대로 반영되기 때문이다.

객관적 사실조차 무시하기 일쑤다. 이사회에서 대표이사를 선출하려면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이사 과반수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이렇게 선임된 대표이사는 이어 주주총회의 의결을 거쳐야 정식 CEO가 된다. 뚝딱 사장을 만드는 드라마 속에 이같은 까다로운 절차는 간곳 없다.


재벌은 곧 백마탄 왕자라는, 근거없는 정반대의 판타지 역시 여전하다. SBS 드라마 '조강지처클럽'에서는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자를 사실상 구해내는 재벌3세의 극중 이름이 '구세주'(이상우)일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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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처럼 드라마가 기업 혹은 그 경영인에 대한 편견 혹은 반감을 의식적·무의식적으로 반복해 드러내면서 반 기업적인 정서를 확대 재생산한다는 점이다. "기업하는 사람이 어디 기운이 나겠느냐"는 볼멘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올 정도다. 더욱이 비도덕적인 재벌-기업에 대한 현실감 없는 묘사가 가득하다보니 "말도 안된다"는 비아냥이 시청자들로부터 먼저 나오기까지 한다.

회사원 김윤석씨(32)는 "사장 사위라고 덜컥 사장이 되면 주주며 노조가 대체 가만히 있겠느냐"며 고개를 저었다. '미우나 고우나'를 즐겨 본다는 이수진씨(28) 역시 "주민들이 무턱대고 일단 공장 설립에 반대하는데 드라마를 봐도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답답해했다.

다른 회사원 김현석씨(33)는 "불륜사실이 사내에 알려지게 되면 대개 퇴사하게 된다"며 "하물며 기업대표가 매일같이 불륜을 저지르고 버젓이 사무실로 불륜녀가 드나들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일선 PD들은 "일반적 캐릭터를 묘사했을 뿐"이라면서도 "재벌 하면 떠오르는 전형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며 솔직히 어려움을 토로했다. 기업 등을 소재로 한 전문 드라마가 턱없이 부족한 형편에서 가족극 혹은 불륜극이 드라마의 주류가 되다 보니 기업 혹은 기업인을 적절하게 묘사하기가 더욱 어렵기 때문이다.

KBS 드라마국의 한 PD는 "제작 과정에서의 시간 부족이 가장 큰 이유"라고 진단했다. 그는 "시간을 들여 재벌가 자제들이 뭘 고민하고 뭘 하는지 취재한다면 제대로 된 묘사가 가능하겠지만 다급하게 드라마를 기획해 만들면서 시청자들의 재벌이나 기업에 대한 막연한 반감을 기반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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