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본드만큼이나 유명한 그녀들, 본드걸

[형석-성철의 에로&마초]

김형석 / 입력 : 2008.11.25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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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 살인번호' 우슬라 앤드레스,'007 어나더데이' 할리 베리,'007 카지노 로얄' 에바 그린(왼쪽부터)



'007' 시리즈는 단순한 액션 일변도의 첩보영화라고 하기엔 꽤나 복잡한 구석이 있다. 이 시리즈는 끝없이 변했다. 1962년 '007 살인 번호'가 나온 지 어언 46년. 22번째 시리즈인 '007 퀀텀 오브 솔러스'(08)의 다니엘 크레이그는 벌써 6번째 본드. 그 시간 동안 숱한 신무기들이 등장했고, 다양한 종류의 본드 카가 질주했으며, 전세계를 무대로 다양한 로케이션 촬영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가장 큰 변화를 겪은 주인공들은 바로 그녀들, '007' 시리즈에서 제임스 본드만큼이나 유명한 본드걸들이었다.


'007' 시리즈에서 본드걸은 매우 독특한 존재다. 아마 처음엔 '양념' 같은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세계를 누비며 비밀 작전을 수행하는 남성미 만점의 첩보원 이야기를 좀 더 부드럽게 전달하기 위한, 이국적이며 에로틱한 윤활유 같은 존재? 혹은 본드의 호색한 기질을 입증(?)하는 증거? 그래서인지 우르술라 안드레스(1탄), 다니엘라 비안키(2탄), 셜리 이튼(3탄) 등 초기 본드걸들은 꽤나 육감적인 글래머들이다.

여기서 그녀들의 이름을 살펴보면 본드걸의 '존재의 이유'는 더욱 확실해지는데, '007 살인 번호'에서 안드레스는 '허니'(Honey)였고, '007 골드핑거'(64)엔 아예 '푸시'(Pussy)라는 이름의 본드걸이 등장한다. '007 두 번 산다'(67)엔 '키시'(Kissy)라는 이름도 있다. 이름 자체가 아예 철저히 성적인 느낌을 풍기는 것이다.

여기서 독특한 건, 시간이 지날수록 본드걸의 의미는 점점 확장되어 적과 아군 개념과는 무관한 그 무엇이 되었다는 점이다. 본드 영화에 등장하는 '유혹하는 여성'들은 모두 본드걸인 셈? 그들은 본드를 도와 임무를 완수할 때도 있고, 적으로 등장할 때도 있다. 무려 6명의 본드걸이 등장하는 '007 뷰 투 어 킬'(85)을 보면, 장신의 흑인 배우 그레이스 존스가 가공할 힘을 자랑하는 파워풀한 본드걸인가 하면, 타냐 로버츠는 마지막 장면에서 본드와 함께 샤워를 하는 달콤한 그녀다.


재미있는 건 초기엔 백인 여성에 한정되었던 본드걸이 점점 국제화되고 있다는 점. 섹시 일변도의 캐스팅 기준도 조금씩 변화를 겪어, 지적이거나 참한 느낌의 본드걸도 등장하게 되었다. '007 두 번 산다'엔 와카바야시 아키코와 하마 미에라는 두 명의 일본 여배우가 본드걸로 등장하고, '007 죽느냐 사느냐'(73)엔 흑인 여배우 글로리아 헨드리가 기관총을 들고 비키니 차림으로 출연한다. '007 네버 다이'(97)엔 중국계 배우 양자경이 나오며, '007 언리미티드'(99)에선 소피 마르소를 만날 수 있다.

이러한 본드걸의 변화는 시대 분위기와 연결되는데, 과거 '007' 시리즈는 국제 정치와 밀접하게 엮여 있었고, 그에 따라 영화의 배경이 변하면서 본드걸의 인종이나 국적도 변하게 되었다.

'본드걸'이라는 이름 속엔 다양한 캐릭터가 들어 있다. 지고지순한 순애보의 여인, 피도 눈물도 없는 팜므 파탈, 본드를 압도하는 파워를 지닌 여전사, 힘 없이 목숨을 잃는 희생자…. 그녀들은 적과 동지 사이에서 끊임없이 제임스 본드 주변을 맴돌고, 마초 첩보원 혼자였다면 퍽퍽해졌을 것이 분명한 시리즈에 어떤 활기를 준다. 어쩌면 '007' 시리즈를 존재하게 했던 진정한 주인공은 22편의 시리즈에 80명이 넘게 등장했던 본드걸들 아닐까? 그러고 보니, 지금 극장가에 걸려 있는 '007 퀀텀 오브 솔러스'의 '달랑 두 명'은 너무 적다는 생각도 든다.

<김형석 월간스크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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