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임성민, 그가 탄생시킨 '뭔가 다른 에로티시즘'

[형석-성철의 에로&마초]

김형석 / 입력 : 2009.02.12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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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전 리처드 기어에 대한 글에서 ‘헝크’(hunk)라는 표현을 썼다. ‘큰 덩어리’라는 뜻의 이 단어는 속어로 사용될 때 ‘덩치가 큰 사람’ 혹은 ‘매력 있고 섹시한 남자’라는 의미로 확장된다. 잘 다듬어진 근육질 몸매에 수려한 마스크가 겸비된 헝크의 매력. 요즘 배우로는 다니엘 헤니 정도? 하지만 ‘한국의 헝크’의 처음을 찾아가다 보면 우린 임성민이라는 이름을 만날 수 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도 벌써 14년이 되어 간다. 만약 살아 있었다면 중후한 멋을 풍기는 50대 초반의 중견 배우가 되어 있을 임성민. 육상 선수 출신이었던 그는, 한국영화사에선 보기 드문 서구적 마스크에 탄탄한 몸매를 지닌, 1980년대의 아이콘 중 하나였다.


그가 주로 활동했던 1980년대 한국영화는 대부분 멜로 아니면 에로였던 시절. 완벽한 하드웨어를 타고 났던 임성민은 어떤 ‘변신’을 시도하지만 선택의 폭은 좁았다. 1990년대에 들어선 <사의 찬미>(91)나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94) 같은 ‘비(非)에로’ 작품도 있고 경력 초기에 <장사의 꿈>(85) 같은 문제작에 출연하기도 했지만, 연기력도 점점 안정되어 갔지만, 당시 충무로가 그에게 원했던 것은 안타깝게도 그의 육체였다.

<무릎과 무릎 사이>(84) 시작되는 그의 ‘육체적 영화’는 <애란>(89)에서 정점을 맞이하며 1980년대를 수놓는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영화는 단연 <색깔있는 남자>(85. 사진)다. 역시 고인이 된 오수미의 팜므파탈 연기와(오수미에 대해서는 기회가 되면 꼭 다뤄볼 예정이다), 당시로선 충격적이었던 결말의 반전이 인상적이었던 이 영화에서 임성민은 패션 디자이너 ‘샤르망 최’ 역할을 맡아 여성들의 거미줄에 얽혀 파멸하는 한 남자를 보여준다.

마초적이었던 이대근이나 우직한 느낌의 마흥식과 달리 임성민이 보여주는 남성상은 왠지 우유부단했다. 1980년대 에로티시즘 영화에서 대부분의 남자 배우들이 여성에게 가학적인 위치였다면, 임성민은 그 반대에 있었다. 그는 강한 여성들의 육탄 공세 앞에서 주저하고, 결국 욕망을 누르지 못하고 그녀들을 품에 안는다. 여기엔 음모와 치명적 사건이 개입되며, 그는 대부분 비극적 결말과 함께 영화를 마감한다. <색깔 있는 남자>는 대표적인데, 이 영화에서 그는 악녀와 연인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살인사건에 휘말리고, 결국은 위험한 계략에 희생된다.


이후 그는 씨름 선수에서 지골로가 되고(장사의 꿈), 불륜을 저지르다가 아내의 맞바람에 상처 입으며(여자가 숨는 숲, 1988),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 자매 사이에서 갈등한다(애란). 표면적으로는 매우 통속적인 설정. 하지만 임성민이라는 배우가 지닌 댄디한 느낌과 세련된 외모는 ‘뭔가 다른’ 에로티시즘을 보여주었다.

1995년에 3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임성민. 섣부른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그를 능가하는 ‘미남 배우’가 나오기는 진정 쉽지 않을 것이다.

<김형석 월간스크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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