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민 "말라가는 몸이 내 무기였다"(인터뷰)

전형화 기자 / 입력 : 2009.09.10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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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일 기자 eddie@


김명민은 TV드라마를 통해 연기력을 검증받은 흔치 않은 배우다. 안방극장의 답답함을 스크린에서 풀어내고자 하는 여느 배우들과는 다르다. '하얀거탑' '베토벤 바이러스' 등 그는 평생 한 번 만날까 말까하는 작품들을 드라마로 연이어 만났다.

그랬기에 김명민이 박진표 감독의 새 영화 '내사랑 내곁에'를 한다고 했을 때 "역시"라는 찬사와 "아니 왜"라는 의아심이 동시에 찾아왔다. 다른 배우가 내정됐다가 하차한데다 무엇보다 고생문이 불 보듯 환했다. '내사랑 내곁에'가 아니더라도 고를 수 있는 작품은 많았다.


김명민은 TV드라마로는 인정받았지만 영화에선 큰 호응을 얻었던 적은 없다. 그렇다면 김명민이 '내사랑 내곁에'를 택한 것은 도전이었을까, 승부수였을까, 아님 충무로에 연착륙을 하기 위해서였을까.

루게릭병에 걸린 남자를 연기하기 위해 20㎏을 감량한 김명민을 만났다. 그는 촬영이 끝난지 3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10㎏ 밖에 회복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역에서 아직 못 벗어난 탓인지, 힘든 모습이 역력했다. 강마에는 간데없고, 아픈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다른 배우가 하차한데다 지독한 감량이 예정돼 있었다. 인기도 최절정이었는데 하필이면 '내사랑 내곁에'를 택했나.


▶대타, 땜방 같은 것에 크게 신경 안 쓴다. 원래 그랬는데, 뭘.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한다. 또 그랬고. 인기가 절정이라, 그건 둔감해서 잘 모르겠다. 도전 의식이 있어서 하기엔 이 시나리오가 너무 셌다.

못한다고 했다. 내 역량을 넘어섰다고 생각했다. 이 영화를 하면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나리오만 봐도 수척해졌다, 한층 수척해졌다, 몰라보게 수척해졌다, 이렇게 써있다. 이걸 끝으로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아니 영화 좀 하려는데 하필이면 이런 시나리오가 들어오나 이런 생각도 했다.

-하지만 결국 하게 됐는데.

▶운명인 것 같다. 하기로 결정한 뒤 내내 악몽을 꿨다. 하루는 병원에 환자를 만나러 갔는데 몸에 이상이 오는거라, 그래서 의사가 검사 좀 하자더니 루게릭병에 걸렸다고 하는 꿈을 꿨다. 병원에서 못나오는 거다. 또 하루는 TV뉴스에서 루게릭병 환자를 연기하던 배우 김명민이 실제로 그 병으로 죽었다는 소식이 나오는 꿈을 꿨다.

그랬다. 의지와 상관없이 되는 게 있는 것 같았다.

-감량이 화제가 됐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살을 빼면서 감정의 기복을 연기하는 것이었을텐데.

▶그렇다. 루게릭병은 몸은 못움직이지만 의식은 뚜렷하다. 하지만 나는 아니니깐, 살을 덜어내면서 같이 의식을 잃곤 했다. 감정을 연기해야 하는데 자꾸 왔다 갔다 해서 그것을 놓치지 않으려 애를 썼다. 감독님이 O.K. 하면 진짜냐고 되물었다. 나 아프다고 봐주면 안된다고.

-현장에선 스태프들이 처음에는 미안한 마음에 식사를 안 보이는 곳에서 하다가 나중에는 그냥 했다고 하던데.

▶먹는 것과 자는 것에 별 의욕이 없었다. 나중에는 우울증까지 왔으니깐. 욕구가 사라지니깐 오늘 반찬은 이거구나 하고 보고 지나가곤 했다.

-지금까지 영화에선 호평을 얻지 못했다. 그렇기에 이렇게 힘든 작품을 하게 된 데는 TV에선 보여줄 수 없는 더 큰 승부수를 던지기 위해서가 아닌가.

▶승부수라고 생각하기엔 너무 크다. 좋은 작품에 대한 갈망이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예전에 가졌던 갈망이 갈수록 줄어드는 것 같다.드라마를 통해 더 많은 분들께 감동을 주고 사랑을 받았다. 또 탤런트, 배우, 이렇게 나누는 것도 우습고.

그냥 이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나더러 영화하지 말라는 뜻이구나, 이런 생각을 했다. 이게 기회다, 이런 생각을 했으면 못했을 것이다.

-내내 누워서 연기를 해야 했기에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극단적으로 제한됐을텐데.

▶그렇기에 더더욱 보여줄 수밖에 없는 게 몸뿐이었다. 손발을 묶어놓고 연기하라고 하면 배우는 미친다. 말라가는 몸이 내 무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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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일 기자 eddie@


-김명민표 멜로가 언뜻 상상이 되지 않는다.

▶멜로 연기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강마에도 그렇고, 내가 맡은 캐릭터가 표현하는 멜로 방식이 달랐을 뿐이다. 이번에는 그동안 했던 캐릭터들과 다른 멜로 방식이다. 닭살이 돋는 부분도 있고. 그런 점에서는 하지원이 아주 잘 도와줬다.

-베드신은 스리슬쩍 잘 넘어갔나.

▶12세 관람가 답게 잘 넘어갔다.

-일부러 하지원이랑 촬영 전에 더 친분을 쌓으려 했다던데.

▶사랑하는 사이로 나오는데 거짓으로 감정을 표현할 순 없었다. 더욱이 촬영에 들어가면 아파서 못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미리 친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박진표 감독님이랑 같이 영화도 보고 밥도 먹고 그랬다.

-어처구니없지만 그래서 핑크빛 루머도 돌았는데.

▶박진표 감독님이 그런 루머를 전해주더라. 상당히 좋은 일이라며. 왜요, 라고 했더니 멜로 주인공인데 당연하지 않냐며. 멜로 영화 주인공들은 그런 소문이 많이 도는 법이다. 영광이죠, 뭐. 유부남한테도 그런 소문이 생기니.

-김명민은 연기할 때 배역만 판다고들 한다. 그 때문에 오해 아닌 오해도 산다. 사람이 와도 모른척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역량의 문제다. 감정신을 찍기 위해선 2~3일 전부터 그 감정을 유지해야 한다. 아버지 칠순 잔치도 안 갔다. 그러면 내 몸에서 강마에가 새어나가니깐. 전화만 받아도 그렇게 된다. 지장이 없는 배우들이 진심으로 부럽다.

-김명민의 연기는 움직이지 않아도 움직이는 듯 한 동적인 이미지다. 이번에는 완전히 정적인 것에 도전하는데.

▶감정이 병의 진행에 따라 좋아졌다가 나빠졌다가 해야 한다. 그래서 그 과정에 따라 감정이 보여지도록 했다. 걸을 때도 호흡법이 달라야 했다. 손이 돌아가는 모습도 달라야 했고. 내 몸이 루게릭 환자처럼 보여지길 바랬다. 손 근육이 빠질 수는 없을까, 그랬다면 손가락 만으로도 표현할 수 있을텐데. 너무 너무 바랬다.

-감량의 마지막을 박진표 감독이 정했다는데. 더하면 죽겠다고.

▶하기전에 의사가 그러더라. 저혈당, 탈수증세, 위장병이 시간에 따라 올거라고. 뜨거운 물에 들어가면 현기증이 나서 쓰러질 수 있고, 갑자기 일어나도 그럴 수 있고, 고개를 확 들어도 안된다고. 그런데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니깐 신기하더라.

샤워를 오전8시에 하러 들어갔는데 10시30분이 되서야 나온 적도 있다. 현장에서 늘 감독님이 사탕을 준비하고 있었다. 내가 눈이 돌아가면 저혈당이 찾아온 것이니 사탕을 먹으라고 했다. 그 지독한 감독님에게서 더하면 죽겠다고 제지를 당했을 때 뿌듯한 마음도 있었다.

-점점 더 자신을 몰아붙이는 것 같은데.

▶점점 더 여유가 없어지는 것 같다. 할수록 어려워지는 것 같고. 그래서 더욱 몰아붙이는 것 같고.

-김명민의 눈 연기는 참 좋다. 이번에는 어땠는지. 얼굴이 주요 표현수단이어야 했을텐데.

▶풀샷과 니샷, 바스트샷, 클로즈업 할 때 다 연기가 달라야 한다고 한다. 난 그 이유를 모르겠다. 그냥 언제나 진심이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 진심을 시청자는 알아준다는 믿음이 있다. 눈은 마음의 창이니만큼 그래서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욕심을 버리니깐 이런게 보이더라.

-'내사랑 내곁에'는 신파인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신파라고 생각할 겨를이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확신한다.

-다른 이야기지만 '소름'에서 함께 했던 장진영이 얼마 전 세상을 떠났는데.

▶'소름'에서의 장진영은 아름다운 스타란 것을 포기한 채 배우가 되겠다는 것을 선전포고한 것처럼 연기했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그릇이 덜 된 자의 변명인데, 그 때는 알량한 자존심을 내세웠다. 장진영을 더 편하게 못했던 걸 크게 후회한다. 그 때문에 다른 작품들에서 여배우들에 좀 더 편하게 하려 한다.

-유부남 냄새가 안나는 배우다. 일부러 사생활 노출을 꺼리나.

▶나보단 가족이 피해를 보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트에 가도 누구 부인 아니세요, 라는 소리를 듣는다면 얼마나 힘든 삶이겠나.

-성공의 연속이었는데 실패할까봐 두렵지는 않나. 차기작 선택도 그래서 어려울텐데.

▶실패해야지 또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난 인간 김명민보다 배우 김명민이 더 많다. 난 내가 기준이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이민 가려했을 때도 내 기준으로 정한 것이었다. 내 기준에 맞으면 된다.

목표가 있다면 다음 작품에서 나를 시험하고 또 성공하고 싶다. 마치 게임처럼 이 스테이지를 통과해야 다음 스테이지에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이다. 대마왕이 언제 나올지는 모르지만 이 스테이지를 통과하지 못하면 다시 처음부터 해야 한다.

-상 욕심은 없나.

▶이미 많은 보답을 받았다. 살을 덜어내는 것을 보고 대단하다, 이러면서 인정을 해주시더라. 아직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이미 큰 칭찬을 받았다. 지금 내 마음이 편안한 것은 이미 모든 것을 다 했기 때문이다.

-그릇은 더 커졌나.

▶'소름' 때보단 좀 더 커졌다. 하지만 위를 볼 때 아직 한창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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