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정, 연기 인생의 전환점은 '이혼'(인터뷰)

김건우 기자 / 입력 : 2009.11.2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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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근 기자 qwe123@


여배우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무엇일까? 스캔들 or 나이를 먹는 것 or 인기가 없어지는 것? 가장 두려운 것은 여배우라는 호칭이다. 윤여정(63)이 영화 '여배우들'(감독 이재용)에서 자존심'을 표현했다.

그녀는 김기영 감독의 '화녀'와 드라마 '장희빈'으로 전 국민의 사랑을 받았지만 가수 조영남과 결혼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13년 뒤, 결혼생활에 심신이 피폐해진 그녀가 선택한 길은 배우였다. 이제 인기가 아닌 두 아이를 제대로 키우기 위해서 다시 선택한 배우의 길은 쉽지 않았다.


"복귀하고 나서 내가 연기를 못하는 구나를 깨달았던 게 끔찍했다. 어렸을 때는 모두 잘한다 잘한다 했는데. 연기를 못하는 것을 알면서도 다르게 할 수 없는 현실이 힘들었다"

그녀는 혹한을 이겨내고 진한 향기를 발산하는 매화 같은 매력을 발산한다. 여배우의 주름살은 삶이 주는 훈장이라는 명언을 증명하며 여전히 열정적으로 자신을 표현해낸다. 그녀는 이제 "근사한 할머니를 연기해보고 싶다"며 속내를 내비쳤다.

-이번 작품에 어떻게 참여하게 됐는지. 자신을 드러내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이런 류의 영화는 처음이었다. 하지만 제 나이가 되면 잃어버릴 것도, 지킬 것도 많지 않다. 만약 지킬게 많았다면 영화 출연 결정이 힘들었을지 모른다. 나를 감추는 신비주의는 아니니까.

이번 작품은 이재용 감독과 친분 때문에 하게 됐다. 이재용 감독과는 평상시 영화도 함께 보고 수다도 떠는 사이다. 원래 임상수 감독의 부인과 함께 영화를 봤었는데, 프랑스 파리로 떠나면서 이재용 감독을 소개시켜 줬었다.

-이번 작품에서는 이혼에 대한 이야기도 언급된다. 사람들에게 많이 잊혀진 이야기인데 꺼내는 게 부담스럽지 않았는지.

▶너무 오래전 이야기 아닌가. 찰리 채플린이 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에서 보면 희극이라고 했다. 이 나이에 돌아보면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다.

-돌이켜 봤을 때, 여배우가 감수하면서 살아야 될 것은 무엇이 있을까?

▶여자와 배우로서 갈림길 인 것 같다. 시집가서 남이 벌어주는 돈으로 사는 인생이 있고 여배우로서 이 나이까지 일하는 사람들도 있다. 여배우는 예술과 노동의 경계선이 오가는 직업이다. 감수해야 하는 대가가 많은 것 같다.

-어떤 대가를 치렀는지 궁금한데.

▶나는 인생에서 궤도가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하면서 배우가 됐음을 느꼈다. 아들 딸 가정을 잘 꾸미고 살다가 그게 안 됐을 때? 그것이 나에게는 시련이었다. 당시에는 이혼이 금기시되는 시절이었기 때문에, 정말 큰 일로 받아들여졌다. 지금은 이혼을 당당한 여성의 모습으로 보기도 하지 않나?

-배우 생활을 하면서 독기를 품었던 적이 있는지?

▶이혼 후 배우로 복귀했을 때 내가 연기를 못하는 것을 느꼈다. 어렸을 때는 잘 한다 잘 한다고 해서 알지 못했다. 연기 못하는 것을 스스로 안다는 게 너무 끔찍했고 그것을 다르게 표현할 수 없다는 게 너무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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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근 기자 qwe123@


-이혼 후 배우가 아닌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지 않았는지.

▶할 수 있는 게 연기였다. 은퇴 전에 인기가 많았기 때문에 복귀는 쉽게 할 수 있었다. 만약 내가 대기업에 다녔다면 13년이란 공백 후 복귀할 수 없었을 것 같다. 배우였기 때문에 복귀가 가능하지 않았을까?

-복귀했을 때 사람들이 무엇이 달라졌다고 했는지.

▶목소리가 바뀌었다고 한다. 삐쩍 마른 몸매와 날카로운 목소리 때문에 거부감이 든다는 사람도 있었다. 여배우에게 재기란 쉽지 않은 거다. 사람들은 13년 전의 모습만 기억하지만 난 이미 나이가 들어버렸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여배우로서 꿈을 이룬 것 같은지. 30살 때 꾸었던 꿈을 지금 돌이켜 본다면?

▶나는 이룰 수 없는 것은 꿈꾸지 않는다. 30살 때 내가 늙어서 어떻게 될까를 생각하지는 않았다. 앞으로 나아가야지라고만 생각했다.

-여배우에게 나이가 든다는 것은 슬픈 일인지.

▶나이라는 것은 자연스러운 게 아닐 런지. 늙으면 늙는 대로, 배우도 점차 맡을 수 있는 역할이 달라지지 않나. 다만 20대 때와 달리 대사를 외우는 시간이 달라지고 사람들을 잊어버린다는 게 다른 것 같다.

-여배우는 나이가 들면 맡을 수 있는 게 할머니 역 뿐인 것 같다.

▶우리나라 시장이 좁으니까 어절 수 없는 것 같다. 시장이 넓다면 노년층을 위한 영화도 있겠지만. 이제 근사한 할머니 역을 해보고 싶다. 화려한 옷을 입는 할머니가 아니라, 늙는다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구나를 보여주고 싶다. 사람들은 할머니 하면 시골에 계신 분들만 생각하는데 서울에도 할머니들은 있다. 실제로 할머니는 아니지만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지금까지 가장 힘들었던 배역은 무엇이었는지.

▶'목욕탕집 남자들'에서 시를 외워야 했다. 시라는 게 대사처럼 문맥을 선택해서 외우는 것이 아니다. 감성 그대로 외워야 했기 때문에 힘들었다. 일주일에 시를 2편 씩은 외웠었다. 당시에는 모든 시인들을 증오하기도 했다(웃음). 물론 지금은 시가 한 편도 기억나지 않는다.

-사람들이 윤여정을 무섭다고도 한다.

▶다정다감하게 이야기하지 못한다. 결국 무섭다는 것은 나를 싫어한다는 것이 아니겠나. 내가 이야기하는 스타일을 안 좋아하는 분들도 있다.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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