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받아적어", 미디어 "예"

[김태은 기자의 룩&워치]

김태은 이슈팀장 / 입력 : 2010.02.12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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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칠한 것들의 말을 믿지 마라.”

SBS 드라마 ‘온 에어’의 대사다. 방송계 뒷얘기를 담아 관심을 모은 이 드라마가 묘사한 것처럼 ‘이득’을 위해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곳이 연예계다. 스타라는 상품이 ‘대박’을 치면 보통사람은 평생 구경조차 못할 거액을 한순간에 챙길 수 있는 시스템이 작동 중이다. 온갖 불나방들이 날아들 수밖에 없다. 목전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표변할 태세인 부류도 많다. 연예계에 송사가 유독 많은 이유다.


12일 가수 박상민의 결혼설이 터졌다. 박상민은 지난해 10월 KBS 1TV ‘반갑습니다 선배님’에 출연, “결혼을 언제 할거냐”는 후배들의 질문에 “내년 2, 3월 쯤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답했다. 3월7일 결혼식은 그렇게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연예매체들이 확인에 들어가자 박상민 측은 “지금 사람이 없다. 당연히 결혼계획도 없다”고 일단 급한불부터 껐다. 그리고 이들 미디어는 추적을 포기, 이러한 코멘트를 그대로 받아 적었다. “기다”, “아니다”는 연예인의 말 한 마디를 실시간으로 줄줄이 받아쓰는 인터넷 매체들 탓에 독자들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매일같이 빚어지는 일이다.

박상민 결혼 건 정도는 약과다. 범죄에 연루된 연예인을 옹호하는 인터넷 매체도 허다하다. 최근 짝퉁명품을 판 것으로 보도된 어느 여가수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녀는 “짝퉁명품을 판적이 없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고, 사실 검증 없이 이를 정신없이 받아쓴 숱한 인터넷매체들 덕에 그녀는 ‘오보’로 누명을 쓴 피해자처럼 돼버렸다. ‘언플’(언론플레이)이 성공한 셈이다.


그런데, 배포된 자료를 자세히 읽어보면 “유명 브랜드 이미지를 사용한 제품 판매로 상품권 도용으로 신고돼 경찰조사를 받았다”고 시인한 부분이 있다. ‘짝퉁’을 팔았지만 ‘명품’까지 도용한 것이 아니라는 뜻인가 보다.

이후 10일 어느 언론의 보도가 궁금증을 풀어줬다. 사건을 수사한 서울 혜화경찰서가 “경찰서에 와서 잘못을 시인하고도 해당 쇼핑몰에 ‘자신들과 관계없다’는 공지문을 띄우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거짓말을 지적했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 기사는 묻혔다. 수많은 ‘보도자료 무조건 받아적기’에 밀려 검색 첫 페이지에 사라지기에 이르렀다.

연예인은 팬들의 순수한 사랑을 먹고 산다. 자신의 유명세를 이용해 부당이득을 취하려 했다면 더욱 준엄하게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별다른 근거도 없이 ‘알아서’ 결백을 대변해주는 일부 매체들이 여론을 오도하는 지경이다. 팬들의 호불호 정도에 따라 ‘몸값’이 오르내리는 연예인을 흐뭇하게 만들어주는 구조다.

절대적 진실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래도 최대한 진실에 다가서고자 하는 것이 언론의 소명이다. ‘팬심’이 앞선 아마추어리즘에 물든 매체들에게 피해를 당하는 것은 결국 팬들이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예인은 천민이었다. 그들에게 높은 도덕기준을 요구하지 않았다. 자본주의와 영상매체의 기묘한 결합으로 어느새 연예인은 하늘의 ‘별’과 같은 존재가 됐다. 별이라면 별다워야 한다. 책임과 의무는 외면한 채 인기만 취하겠다는 심보라면, 스타의 삶을 접고 ‘일반인’의 반열로 내려오셔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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