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배삼룡, 유족 후배 눈물 속 영결식 엄수(종합)

전형화 김겨울 기자 / 입력 : 2010.02.25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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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균 기자 tjdrsb23@


60여 년을 희극인으로 살아온 고 배삼룡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뒤로 한 채 영원히 잠들었다.

지난 23일 흡인성 폐렴으로 세상을 떠난 고 배삼룡의 발인식이 25일 오전7시30분 빈소가 마련된 서울 풍납동 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됐다. 고 배삼룡의 발인식에는 아들 등 유족과 엄용수 등 후배 코미디언 30여명이 참석해 고인을 기렸다.


이어 오전 8시 1층 대회의실에서 코미디언협회장으로 영결식이 열렸다. 고인의 외손자 박정배씨가 고인의 영정 사진을 들고 유가족들이 뒤따라 들어왔다. 영결식장은 생전 국민 코미디언으로 불렸던 고인을 기려 영정 양 옆에 이명박 대통령과 정운찬 국무총리의 조화가 자리를 지켰다.

후배 코미디언 엄용수가 고인의 약력을 읊었으며 당초 이용식이 하기로 했던 조사는 고인과 절친한 사이로 원로 코미디언 송해가 낭독했다.

송해는 "오로지 내 것 밖에 모르는 세상에 웃음을 준 우리시대 다시 보지 못할 희망이었다"고 고인을 기렸다. 이어 그는 "나는 일어난다. 다시 후배들과 전 국민을 즐겁게 하리라 했던 형님. 하늘나라 넓은 무대에서 더이상 제제받지 말고 괄시받지 말고 아프지 말고 계속 웃겨주십시오"라며 울먹였다.


이경규 임하룡 이봉원 김학래 오정태 이수근 유세윤 등은 침통한 표정으로 마지막까지 무대에 서길 바랐던 고인을 추모했다.

하늘도 고인의 죽음을 슬퍼하듯 새벽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가운데 고인의 유해는 영결식이 끝난 뒤 후배들의 운구로 운구차에 옮겨졌다. 경기도 성남화장장으로 향한 뒤 한 줌의 재로 변할 고인의 유해는 분당 추모공원 휴에 안치될 예정이다.

고 배삼룡은 1970년대 당대 1970년대 당대 최고의 코미디언으로 구봉서, 고 서영춘과 함께 남성 트로이카 시대를 열며 화려한 전성기를 보냈다. 평생 국민을 웃게 만드는 데 전력했던 고인이지만 그의 삶은 순탄치는 않았다.

JP를 지지했던 고인은 1980년대 신군부의 눈 밖에 나면서 저질 코미디로 치부돼 방송활동 금지를 당했다. 이후 고인은 미국에서 3년을 보낸 뒤 귀국, 코미디 프로그램과 악극 활동에 매진하며 코미디 열정을 불태웠다. 96년 흡인성 폐렴이 발발해 1년간 입원했지만 이듬해 부활, 전국 악극쇼를 이끌었다.

세 번의 결혼과 이혼, 그리고 오랜 투병 생활도 고인의 열정을 꺾진 못했다. 고인은 "다시 한 번 무대에 서고 싶다"는 바람을 끝까지 숨기지 않았다. 고인이 입원비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에 후배들이 십시일반 정성을 모은 것도 고인의 열정 때문이었다.

유족과 후배들은 희극인으로서 고인의 열정을 기억하기 위해 기념비를 세울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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