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코’에서 ‘베란다프로젝트'로 안착한 이상순의 재발견

[강태규의 카페in가요]

강태규 / 입력 : 2010.05.30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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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8월, 기타를 든 그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우울한 날씨 속으로 첫 발을 내딛었다. 그룹 ‘롤러코스터’ 기타리스트의 짐을 잠시 내려놓고서. Conservatory of Amsterdam (암스테르담 음대)의 Jazz Department 기타 전공을 하고 있던 그는 2008년 한국에서 불쑥 찾아온 싱어송라이터 김동률과 조우하게 된다. 그리고 지난 5월 18일 베란다프로젝트 음반을 발표했다. 10트랙에 녹아든 그의 기타와 읊조림은 그를 새롭게 조명한다. 롤러코스터 기타리스트 이상순의 재발견을 직감한다. 그의 유학행은 기타에 대한 새로운 주법을 배워오기 보다는 음악과 예술, 아티스트의 삶을 성찰하기 위한 결단이었다. 오는 9월 그는 다시 네덜란드로 떠나 복학한다.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부처님 같다’는 김동률이 한말이 스친다. 나지막하게 음악적 소신을 말하는 그의 차분한 눈빛에서 음악을 넘어 인간적 신뢰를 떠올리게 했다.

- 어떻게 기타를 처음 접하게 되었습니까? 그때 오늘의 이상순이 있을 것이라 예감했습니까?


▶ 기타를 처음 잡은 건 중학교 때였습니다. 형이 가지고 있던 어쿠스틱 기타 였었는데, 그 기타로 들국화, 이문세, 이정선 등 당시에 좋아했던 음악들을 연주해 보고 싶은 마음에 기타에 조금씩 흥미를 가졌었죠. 본격적으로 기타에 빠져든 건 고등학교 때 오지오스본, 딥퍼플 등의 Rock 음악에 심취하면서 일렉트릭 기타에 빠졌습니다. 역시나 형이 가지고 있던 일렉트릭 기타와 앰프로 시작했죠. 의외로 일렉트 릭 기타를 시작하면서부터 기타리스트로, 음악인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오늘의 이상순을 예상했기보단 좀더 Rocker에 가까운 이상순을 상상하고 있었죠. 하하

-2006년 롤러코스터 5집 음반을 발표하고 6개월 뒤 네덜란드로 유학을 가게 된 배경은 일종의 연주에 대한 갈증 같은 것들이 있었던가요?

▶ 2006년 롤러코스터 5집을 발표하면서부터 - 정확히 말하면 앨범을 만들기 시작하면서부터 - 뭔가 각자의 시간, 각자 하고 싶은 일들을 해보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1999년 롤러코스터 1집으로 시작해서 쉼 없이 달려온 우리들에겐 서로 각자의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 같은 생각이었죠. 그래서 전 예전부터 - 음악하는 (음악인이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 꿈꿔온 유학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롤러코스터 음악이 아닌 예전부터 제가 좋아하고 도전해 보고 싶은 다른 장르의 연주에 대한 갈증들도 있었습니다. 좀 더 저 자신에게 투자하는 시간을 가져보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음대에 들어가서 음악을 배우는 것도 좋지만, 다른 나라, 다른 환경에선 어떤 음악들이 있고, 어떻게 음악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나도 그곳 에 융화되어 그들의 생각이나 철학을 배우고 싶었습니다.


-네덜란드에서의 유학 생활을 통해 기타에 대한 새로운 철학들이 생겼을 것 같습니 다.

▶ 기타에 대한 새로운 철학이라기보다, 포괄적인 음악에 대한, 예술에 대한, 아티스트의 삶에 대한 많은 부분들에 대해서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시간들이었습니다. 그것이 물론 외국에 나가야만 배울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건 아니지만, 뭐랄까요. 한국에선 느낄 수 없었던 여유로움이 좀 더 있었다고 할까요. 학교만 잘 다니면 되는 시간들이었으니까요. 하하. 어쨌든 제가 그곳에 3년 정도 생활하면서 느낀 것은 이렇게 하고 싶은 일, 하고 싶은 음악을 하면서 살고 있다는 것에 대한 감사함, 그리고 음악하는 사람으로서의 책임감을 많이 느낀 것 같아요. 음악 하는 사람으로서 좋은 음악을 끊임없이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도 많아졌습니다. 음악을 통 해 좋은 에너지들을 사람들과 더 공유하고 싶은 욕구도 강해졌습니다. 사회 구성원 각자가 자기가 맡은 일에 책임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듯, 저희같이 음악 하는 사람들도 더 노력하고, 더욱 강한 책임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좋은 작품들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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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김동률과 베란다프로젝트 음반은 음악팬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당시 네덜란드에서 김동률과 너무 심심해서 음악이나 해볼까 해서 시작된 음반이라 했습니다. 첫 곡은 어떤 식으로 탄생되었습니까? 작업의 첫 곡이 지금 음반에 실려 있나요?

▶ 다분히 즉흥적인 시작이었습니다. 2008년 김동률씨가 제가 유학생활을 하고 있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휴식 차 건너왔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네덜란드의 우울한(런던보다 더하단 얘기도 들었습니다.) 날씨에 집안에만 틀어 박혀 무료한 시간을 보내던 중, 정확히 얘기하자면 전 기타연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동률씨는 아마 침대에서 뒹굴뒹굴 거리며 책을 읽고 있었던 것 같네요. 그러다 갑자기 '우리 둘 다 음악 하는 사람인데, 같이 음악이나 해보죠?' 란 생각에, 둘이서 딩가딩가 곡을 만들어보기 시작했습니다. 무료한 집안생활에 뭔가 활기가 생겼고, 곧 하나의 곡이 완성이 되었죠. 그 결과물이 우리에게 꽤 만족스러운 것이었고, 그렇다면 이렇게 앨범을 하나 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몇 년 전부터 친하게 지내온 우리 둘은 같이 많은 음악을 공유해왔고, 같은 취미생활을 공유해왔고, 많은 얘기들을 나눴기에, 서로가 어떤 걸 좋아하는지, 어떤 걸 하고 싶어 하는지를 잘 알아 왔기에 그런 즉흥적이지만, 같이 좋아할만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첫 곡은 이번 앨범에 실려 있습니다. 여기까지. 하하

-이번 베란다프로젝트 음반에서 이상순씨의 노래를 들어보니 보이스가 참 매력적이 라는 평가를 합니다. 솔로 음반 계획은 있습니까?

▶ 사실 롤러코스터 앨범을 하면서 조원선씨와 듀엣으로 불렀던 곡은 있었습니다. 뭔가 낮은 음색이 필요할 때 조원선씨의 보컬을 지원해주는 역할이었죠. 그러니, 말하자면 이번앨범이 이렇게 전면으로 나와서 노래를 하는 건 처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에 대한 두려움도(전문 보컬리스트가 아니었으므로) 있었죠. 이정도의 보컬로 까지 끌어 올릴 수 있었던 건, 동률씨의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세밀한 부분까지 체크해주면서 저의 보컬을 컨트롤해주고, 조언도 많이 해주었기에 이렇게 노래를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앨범을 하면서 저도 노래에 대한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솔로 음반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꼭 해보고 싶은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앨범이 잘 마무리되고 다시 암스테르담으로 돌아가 면, 다시 어떤 형태로든 새로운 작업을 시작할 계획입니다. 물론 노래를 할 수 도 있겠죠?

-지금 대학에서 재즈를 전공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재즈하면 떠오르는 악기가 피아노나 베이스 정도인데 기타리스트로서 재즈를 전공한 이유가 있습니까?

▶ 초기의 재즈에선 기타가 차지하는 비중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재즈에 쓰이는 악기를 솔로악기와 리듬(반주)악기로 구분을 한다면 기타는 솔로악기를 서포트해주는 리듬악기로 더 인식이 되어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Djanfo Reinhard,Wes Montgomery, Joe Pass, Jim Hall 등의 기타리스트들로 인해 기타 로 재즈를 연주하는 것에 대한 인식을 많이 달라져있습니다. 저도 그런 재즈기타리스트들의 음악을 들으면서 기타로 연주하는 재즈에 큰 흥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현대 실용음악의 기본이 되는 이론들은 거의 대부분이 이런 재즈뮤지션들이 정리해놓은 이론들로 가르치고, 공부하고 있기 때문에 Jazz Department 로 입학하고 싶은 마음이었죠. 물론 제가 다니는 Conservatory of Amsterdam (암스테르담 음대)의 Jazz Department에서는 학교 졸업 후 재즈뮤지션이 되길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음악의 이론적인부분을 재즈를 통해 배우고, 결국엔 자기의 스타일을 만들고,나아가 훌륭한 뮤지션이 될 수 있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이 부분에 더욱 감명을 받았죠.)

-김동률과 작업스타일이 많이 다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힘들었던 점과 도움이 되었던 점은 무엇입니까?

▶ 이번 앨범을 둘이서 같이 만든 취지중의 하나는 '즐겁게 음악 해 보자'였습니다. 물론 작업 과정 중에 자의든 타의든 힘든 일들이 있었던 건 당연하구요. 하지만 최선을 다해 이 순간을 즐기려고 노력해왔습니다. 둘이서 애초에 어떤 작업스타일을 고집하면서 시작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작업스타일의 차이에 힘든 점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제 경우 롤러코스터의 스타일과 동률씨의 경우 그의 작업스타일과 다른 작업의 방법들이 더욱 신선하게 느껴지고, 그렇게 작업함으로써 더욱 새롭고 신선한 결과물이 나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제가 동률씨를 통해 배운 점도 많습니다. 예를 들면 음악작업 과정중의 집중력과 만족도를 위해 쏟아 내는 에너지는 저를 다시 돌아보고 반성할 정도로 대단한 충격이었습니다. 음악 하는 사람으로서 그런 뮤지션과 같이 작업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소중한 시간들이었습니다. 동률씨와 작업하면서 드는 생각은 굳이 동률씨와 작업해서 힘든 점이라기 보단 창작을 하는데 있어서의 고통, 작업과 녹음과정에서의 힘든 일들은 누구와 같이 작업해서가 아닌 모든 뮤지션이 겪어야할 당연한 고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고통이 없이 더 낳은 결과물을 바란다는 것 뮤지션으로서의 큰 오만이라고 생각합니다. 음악은 즐기되 고통은 당연하게 받아들이자는 생각이니까요.

-롤 모델로 삼고 있는 뮤지션이 있습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 한 뮤지션을 콕 집어 얘기하기엔 저에게 영향을 준 뮤지션은 너무나도 많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요 몇 년 사이 저의 Ipod에서 단골로 플레이 되고 있는 Joao Gilberto 입니다. 기타리스트로서 또 보컬리스트로서, 그리고 뮤지션으로서 지금 현재 가장 놀랍고, 아름답고, 존경스러운 뮤지션입니다. 'Bossa nova' 라는 장르를 만들어낸 뮤지션(이만큼 찬사를 받아 마땅한 뮤지션이 있겠습니까), 기타하나와 목리하나로 끝없이 듣는 이를 편안하게 만드는 힘. 그 편안함 뒤에 느껴지는 섬세함과 치밀함. 어느 하나 놀랍지 않은 면이 없는 뮤지션입니다. 요즘 저의 소원은 그의 음악을 직접 그의 콘서트에서 듣는 것이니까요.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벅찹니다.

-기타 연주를 제외하고 나면 두 번 째 관심사는 무엇입니까?

▶ '기타 연주' 를 제외하면 물론 음악이죠! 하하. 음악을 제외한 관심사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몇 년 전부터 취미로 삼고 있는 사진 찍기 정도? 영화는 안 좋아하는 사람 못 봤고, 독서는 하긴 하지만 책 읽는 속도가 느려 많은 양을 읽지 못했고. 저의 인생을 가끔 되돌아보면 참 잘하는 거 없이 좋아하는 거 없이 지낸 것 같네요. 당장에 음악을 못한다면 뭐하나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정도라고 생각하니까요. 하 하. 어쨌든 말하자면 사진 찍는 것에 취미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관심사도 그런 거겠죠. 일기를 꾸준히 쓰지 않는(아니 거의 안 쓴다고 보는)저에게는 사진으로 저의 인생을 기록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언제나 제 가방 속엔 한 두 개의 작은 사진기들이 들어있습니다.

-유학을 준비하고 있는 후배 연주자들에게 조언을 한마디 하신다면?

▶ 제가 감히 조언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아직 2학년이라. 하하. 어쨌든 요즘 한국에도 많은 실용음악과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물론 음악이론이야 거의 모든 서양음악을 가르치는 전 세계의 음악학교라면 똑같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학교에 얽매이는 유학생활은 그리 의미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훌륭한 선생님들은 한국에도 많이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왜 유학을 가려고 할까요. 전 왜 유학을 갔을까요. 저에게 언제나 그런 질문들을 하면서 유학생활을 했습니다. 물론 학교생활도 중요합니다. 배울 점도 많습니다. 제가 그곳에서 생활하면서 음악도 중요하지만 더 원초적인 것이 무엇일까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문화 환경이 이런 음악을, 이런 뮤지션을 만들 수 있었을까. 음악 하는 사람들 말고, 음악을 듣는 사람들은 어떻게 음악을 받아들이나. 오히려 학교보다 그곳에서 살아가는 평범한(뮤지션이나 아티스트가 아닌)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제가 있는 네덜란드, 더 넓게 유럽 사람들은 (물론 다양한 사람들이 있겠지만) 누구보다 더욱 새로운 것을 더 잘 흡수하고, 새로운 것에 대한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들조차도 그런 자신들에게(문화를 멋지게 즐기고 있다고 생각하며)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듯 했습니다. 그렇기에 뮤지션과 아티스트들이 새로운 걸 창조해내려 땀 흘리며 노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주제가 많이 빗나간 것 같지만, 어쨌든 유학을 떠나고 싶고, 떠나가 있는 학생들에게 더욱더 넓게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가지고 충분히 그 생활을 즐겼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뚜렷한 목표의식 없이 그냥 유학 갔다 오면 잘되려니, 인정받을 수 있으려니...라는 생각은 금물입니다. 시험을 위한 시험, 졸업을 위한 졸업은 되지 말았으면 하 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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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 가요계는 음악은 없어지고 쇼 퍼포먼스와 비주얼만 남았다는 항간의 탄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어떤 나라, 어떤 시대든 그런 탄식들은 존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만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사람들이 문화에 투자하는 시간이나 비용을 생계에 더 투자하고, 그럼으로써 소비는 줄고, 문화에 대해 수동적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많은 음악 사업관계자들은 위기의식을 느끼게 되고, 더욱 자극적이고, 원초적인 방법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려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보니 음악이외의 것들, 말하자면 청각보단 시각, 음악보단 비주얼을 더 신경 쓰게 되고, 그럼으로써 비주얼을 배제한 음악으로만 승부하려는 사람들의 설자리가 많이 없어진 것도 사실이죠. 그렇다보니 음악은 없고, 퍼포먼스와 비주얼만이 남았다는 말이 나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건 어느 누구의 잘못이라고 할 수 없음과 동시에 모두의 잘못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음악을 만드는 사람도 음악을 듣는 사람도 서로를 인정하고 아껴주어야 하지 않나 라는 생각입니다. 단 몇 명이라도 들어줄 사람이 있다면 책임감을 느끼고, 고마움을 느끼고 열심히 음악 해야 하며, 반대로, 자신의 일상에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 수 있는 음악을 만들어준 뮤지션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아무리 지금의 음악시장이 이렇다 할지라도, 자신을 속이지 않고, 타협하지 않고 열심히 음악을 하고 있는 훌륭한 뮤지션들이 많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대중들, 아니 소수의 사람들이라도 그들을 조금 더 관심 있게 찾고, 인정해준다면 우리나라의 음악시장은 더욱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 졸업 후 귀국하고 나면 구체적으로 펼치고 싶은 음악세계에 대해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 졸업이나 귀국 후의 계획은 아직 구체적으로 세운 건 없습니다. 앞에도 말했듯이 어떤 형태로든지 좋은 음악을 만들고 여러분들에게 소개하는 것이 저의 계획입니다. 지금보다 더 발전되고, 좋은 음악으로 여러분들을 찾아뵙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지금은 베란다 프로젝트에 저의 에너지를 모두 쏟아부어야할 시기인 것 같네 요. 지난 10개월간 그래왔듯이...

<글 / 강태규. 대중문화평론가. 문화전문계간지 ‘쿨투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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