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연기를 그것밖에 못해" 김영애의 기막힌 푸념

MBC '로열패밀리'의 김영애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1.05.04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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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봉진기자


김영애(60)는 40년 경력의 배우다. 최근 종영한 MBC '로열패밀리'는 그녀의 연기 내공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대한민국 최고 재벌가 JK가의 실질적인 지배자, 공순호 회장으로 분한 그녀는 여성의 카리스마가 뭔지 제대로 보여줬다. 꼴보기 싫은 며느리를 향해 '저거 치워'라고 일갈하는 모습부터, '여기서는 내가 법이야'라고 선언하는 모습까지. 어느 하나 버릴 것 없는 그녀의 명연기는 '로열패밀리'를 보는 또 하나의 맛이었다.

드라마 종영 1주일 만에 만난 김영애는 그러나 '로열패밀리'의 꼿꼿하기 그지없는 공회장과는 사뭇 달랐다. 재킷에 청바지 차림으로 나타난 그녀는 자신의 부족함을 토로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러나 "등골이 빠지게 연기했다"며 "아 연기를 그것밖에 못해"라고 푸념하고 나설 땐 기가 막혔다. 매회 입을 쩍 벌리고 드라마를, 김영애의 연기를 지켜본 터였다. 그녀는 말했다. 늘 스스로에게 불만이라고. 늘 최고가 되고 싶다고.


-'로열패밀리'는 오랜 연기생활에서도 기억에 남는 작품 중 하나가 될까.

▶앞으로 제가 뭐뭐 했다 꼽을 때 꼽히는 작품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처음 주연 맡았던 '민비', 연기가 뭔지 알게 해 준 '야상곡', 연기자로 침체됐을 때 그 폭을 알게 해 준 '형제의 강' 등이 있다. 그걸 보며 김영애가 시골 엄마도 되는구나 그랬다. 처음엔 미스 캐스팅이라고 말도 많았다.(웃음) '모래시계' 이야기 하시는 분 많은데 왜 그러시는지 모르겠다. 김종학 감독님이 무슨 생각 했어 그때 하시는데. '아무 생각 안했는데' 그랬다. 딱 두 회 나갔다. 다른 사람보다 이런 저런 일을 많이 겪으면서 살았는데 그러면서 얻은 게 배우로서 조금 더 성숙하게 해준 게 아닐까. 제 인생의 어떤 고달픈 그런 것들이 저를 인간으로서 성숙하게도 만들고 배우로서의 깊이도 만들어준 게 아닌가 생각한다.

-이번 작품은 볼수록 공회장에게 시선이 가더라. 평이 좋아 더욱 뿌듯했겠다.


▶아무 생각 없었다. 나중에는 빨리 쓰러져서 분량 좀 줄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14회에서 쓰러진다더니 18회 마지막에서 쓰러졌다. 고생 할 건 다 했다. '황진이' 하고 5년만의 드라마에다 '애자' 이후론 2년만인데, 젊은 분들은 저를 잘 모르더라. '신인배우 쓸만했어?' 이랬다.

-우리나라 기업이 저렇게까지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캐릭터를 분석했나.

▶사람마다 자기가 갖고 있는 꿈이나 자기가 이루고자 하는 게 다 다르지 않나. 그 사람은 그럴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많이 가진 사람은 그걸 지키기 위해서 남다른 노력이 필요할 거다. 제자리에 있는 건 기업을 하다보면 후퇴나 마찬가지다.

-실제 기업 운영 경험이 연기에 도움이 됐나?

▶많이 도움이 됐다. 저희 회사 직원이 70명이었는데 공순호는 7만 명이구나 생각하면 간단했다. 당시 힘든 시간들이 저를 많이 어른스럽게 해 주셨다. 누군가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것 자체가 저를 그렇게 만들었다. 그 전에는 이기적인 데가 있었다. 나만 생각하면서 철저하게 내 중심으로. 그런데 사업을 하니 내가 하고 싶다고 하고 하기 싫다고 안 하는 게 안 되더라. 정말 숨이 막히고 그만두고 싶은데도 할 수가 없더라.

-마지막은 어땠나.

▶해결 부분이 마음에 안 들었다. 저는 좀 더 근사한 방법으로, 좀 더 다른 방법으로 다시 일어서거나 페어플레이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했는데 너무 막바지에 터져버렸다. 죽이고 싶은 만큼 미운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그걸 누구나 실행에 옮기지는 않으니까. 그건 무서웠다. 물론 작가의 영역이니까 제가 터치할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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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봉진기자


-쉽지 않은 작품이었다.

▶아직 컨디션 회복이 안돼서 빌빌거리는 중이다. 그 동안 밤을 너무 많이 샜다. 많이 힘들었다. 정말로 많이 힘들었다. 앞으로는 그렇게 힘든 역할 할 때는 개런티를 더 많이 받아야 할까보다. (웃음)

-에너지 소모가 대단했겠다.

▶에너지가 많이 쓰인다. 기운이 딸리면 연기가 안된다. 뽑아서 차지 않으면 안되니까 위기감을 느꼈다. 저게 연기라고 하고 않았나 할 때도 있고. 사람들 시선도 시선이지만 일단은 제 눈높이를 맞춰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았다. 제 눈높이에 안 맞는 신이 많다. '아 연기를 그것밖에 못해' 그랬다. '애자' 시사회 때도 보고 '60년 가까이 살고 저 얼굴밖에 안돼' 그런 것 때문에 절망스러웠다.

-끊임없는 채찍질을 한다는 것이 놀랍다.

▶다른 분들과 이야기하다보면 늘 제가 제 자신에 대해서 불만이라는 데 놀라시더라. 오래 했다고 저절로 잘 되는 게 아니지 않나. 할 때마다 긴장하고 이게 이렇게밖에 안되나 절망적일 때 많다. 그리고 늘 최고이고 싶고. 항상 저는 그렇다. 다 잘할 순 없지만 내가 하는 역할은 '김영애니까 할 수 있고, 김영애보다 잘 할 사람은 없다' 그렇게 평가받고 싶다. 내 스스로는 물론 보는 사람 모두에게까지.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장면?

정가원에서는 내가 법이다. 공순호가 법이다. 그 대사가 가장 마음에 든다. 근사하지 않아요. 그 정도 말을 할 수 있다는 게 대단하지 않나.

-연기를 하다보면 일종의 매너리즘에 빠질 것도 같다.

▶그래서 소품으로 쓰이는 엄마는 안하고 싶어서 많이 피한다. 그리고 계산 안한다. 그냥 대사만 적당히 외워서 현장에 가서 맡긴다. 제가 좀 특이한지 모르겠는데 3번을 하면 3번이 다 다르다. 그리고 기억을 못한다. 혼자 연습할 때 리허설 할 때 슛 들어갈 때 다 다르다. 그때 그때 기분에 따라서 내 느낌에 따라서 한다. 내가 나오는 만큼 한다. 그리고 항상 어떻게 연기할까보다 얼마만큼을 표현할 것인지를 고민한다. 개인적으로는 넘치는 건 모자람만 못하다는 생각을 한다.

-연기가 천직인가보다.

▶저도 그렇게 생각한다. 타고난 것과 노력이랄까. 가장 배우를 하기 적합하게 타고 났고 성격이나 모든 것들이 잘 맞다. 또 일에 있어서는 완벽주의에 가까울 만큼 저를 다그치고 노력한다. 두 가지가 복합적이다. 항상 뭔가 부족할 것 같고 아유 왜 이렇게 요것밖에 안되지 그게 나를 지탱해 온 힘이 아닌가 생각을 한다.

-배우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는 뭐였나.

▶나는 상업학교를 나왔는데, 1년 직장 생활을 하다가 재수를 하려고 했다가 갑자기 방향을 틀었다.(김영애는 1971년 MBC 공채탤런트로 데뷔했다) 처음엔 그냥 월급 주는 곳인 줄 알았다. 배우가 뭔지는 모르고. 학교 다닐 때 영화 딱 한 편 봤다. 우리 아버지가 영화는 학생들이 볼 게 아니다 해서 단체 영화도 안 보여줬다. 그렇게 폐쇄적으로 자란 사람이지만 책은 무지하게 봤다. 특히 소설을 그렇게 열심히 봤는데, 그런 경험이 나를 감성적이고 현실적이지 않게 만들면서 배우가 된 데 큰 밑천이 된 것 같다.

처음에는 몰랐지. 5년 쯤 지나서야 내게 배우가 맞다고, 배우가 된 게 내 축복이라고 생각했다. 배우가 안 됐으면 뭘하고 있을까 모르겠다. 나는 좋은 엄마가 아니고 좋은 아내도 아니고 현모양처도 아니니까.

-자기관리는 어떻게?

▶늙어가는 거 어쩔 수 없지 않나. 안 늙어가려고 하는 것보다. 좋은 배우가 되려고 한다. 노력해서 5개 3개로 만든다면 좋겠지, 그런데 이 나이에서 눈가에 주름이 하나도 없다면 이상하지 않나. 제가 노력해서 할 수 있는 건 한다. 운동 열심히 하고. 그런데 제가 살찐 건 안 좋아한다. 그런 걸 나한테 허락하고 싶지 않다. 주름진 얼굴은 괜찮지만. 아줌마기 때문에 배가 나온다든지 펑퍼짐하게 있는 건 제 자신에게 용납이 안된다.

-이런 완벽주의자인데, 본인을 풀어줄 때도 있나?

▶일할 때 외에는 허점투성이다. 진짜 엉성하다. 제 주위에서는 보호본능을 많이 느낀다. 원체 엉성해서. 사람이 안 그러면 너무 얄밉지 않겠나.(웃음)

-5년 쉰 속풀이를 이번에 제대로 했겠다.

▶속에 쌓인 게 많았으니까 도움이 됐을 거다. 발산한 기회를 얼마나 기다렸겠나. 시원하게 했다. 최선을 다 했다. 결과는 모르겠다.(웃음)

-연기할 때가 제일 행복한가?

▶예. 제일 행복해요.(웃음)

-10년 하든 30년 하든 변함없나.

▶변함이 없고 힘들수록 더 그렇다.

-죽을 때까지 연기하고 싶다는 생각도 하나.

▶누군가가 나를 필요로 하고 내 속에서 뭔가 끊는 것이 있을 때까지 하고 싶다. 어느 순간 그 끊는 감성이 없어질 수도 있지 않나. 그러면 그만둬야죠. 그런 두려움은 항상 있다. 어느날. 계산 없이도 카메라 발간 불 앞에서 연기가 되듯이 어느날 꽉 막혀버릴 수도 있지 않나. 그런 두려움은 항상 있다.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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