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의약속', 알츠하이머·임신·바람..막장이라고?

하유진 기자 / 입력 : 2011.11.02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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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애(이서연 역) 김래원(박지형 역) 정유미(노향기 역)ⓒ SBS 홈페이지


한 남자가 오랫동안 결혼을 약속해 온 여자를 두고 다른 여자를 만났다. 그 여자는 친구의 사촌동생. 우연히 만난 자리에서 커피를 마시고 점심을 먹고 저녁까지 먹을 만큼 급했고 불탔다. 1년 뒤 결혼식을 얼마 앞두고 남자는 여자에게 이별을 고했다. 여러 관계가 얽혀 있는 집안간의 사정을 무시하지 못했다. 남자가 사랑한 여자는 알츠하이머에 걸렸다. 추억에 사로잡혀 그녀를 잊지 못한 남자는 결국 파혼을 선언했다. 사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파혼을 당한 여자는 헛구역질 증상을 보이며 임신의 가능성을 암시했다.

지금까지 전개된 SBS '천일의 약속'의 내용이다. 연기와 대사, 연출을 제외한 플롯은 여타 멜로드라마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평범하다 못해 통속적이기까지 하다. 이후에 전개될 내용도 쉽게 예상된다. 남자와 여자는 잃어가는 기억을 붙들고 영원한 사랑을 약속할 것이고, 파혼당한 여자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그를 이해하고 놓아줄 것이다.


일각에서는 임신, 바람, 알츠하이머라는 해묵은 소재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천일의 약속'도 결국 막장드라마가 아니냐고 주장한다. 특히 지난 6회분에서 파혼당한 노향기(정유미 분)가 헛구역질을 했을 때 논란은 거셌다. 1년 동안 이서연(수애 분)을 만나면서 언제 향기와 관계를 맺은 거냐는, 1년 동안 몸에 손 한번 안 댔다던 향기의 말과 맞지 않는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향기의 임신 여부는 이날 방송에서 공개되지 않았지만 암시만으로도 막장드라마 비난을 피하기 어려웠다.

소위 말하는 '막장드라마'는 사건의 연속, 출생의 비밀, 얽히고설킨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비상식적 전개를 토대로 한 드라마를 일컫는다. 단순히 교통사고, 혼전임신, 미혼모 등의 자극적인 소재를 다뤘다고 해서 막장의 반열에 올리지 않는다. 그 소재가 드라마 내에서 힘을 얻을 수 있고 개연성이 있다면, 그 과정을 드라마 내에서 시청자들에게 설득할 수 있다면 막장이 아니다.

'천일의 약속'이 그런 경우다. 극중 박지형(김래원 분)이 서연을 만나 사랑에 빠진 건 어린 시절부터 가져온 애틋한 감정의 회상으로 설득시켰고, 위암 폐암이 아닌 알츠하이머로 둘이 사랑을 기억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진부한 소재도 흐름상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설득을 시켜 거부감 대신 기대와 공감을 더했다.


김수현 작가의 힘이다. 스토리에 힘을 싣는 건 대사. 기억을 잃어가는 서연은 "내가 알츠하이머일 리가 없어"라는 진부한 대사 대신 "엿먹어라, 알츠하이머"라는 힘 있는 말로 긴장감을 높인다. 같은 장면, 상황에서도 '천일의 약속'은 김수현 표 대사로 인해 상황은 달라지고 색깔을 갖는다.

과거회상 중심으로 돌아가는 연출력도 한몫했다. '천일의 약속'은 처음부터 서연과 지형이 사랑에 빠져가는 과정을 담지 않았다. 첫 회에서 둘은 이미 뜨겁게 사랑하고 있었으며 곧 헤어졌다. 둘이 마음을 열게 된 과정, 뜨거웠던 사랑의 순간은 헤어진 후 지형의 회상 신으로 모두 처리됐다. 타 드라마의 전개와 다른 흐름으로 긴장감을 높이고 궁금증을 낳았다.

향기의 임신 여부는 두고 보면 알 일이다. 중요한 건 진짜 임신이 됐든, 시청자를 살짝 속이려는 '맥거핀'이 됐든 '임신'만으로 드라마를 막장이라고 몰아붙이는 건 아니라는 것. 거두절미하고, 개연성은 전혀 따지지도 않고, 시청자 설득여부도 재지 않고 '막장'이라고 선언하는 그 세계관이 진짜 '막장'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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