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민 "왜 저만 그렇게 애처로워하시나 몰라요"

영화 '페이스메이커' 김명민 인터뷰.."명민좌, 예전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2.01.05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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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이란 결코 만만한 운동이 아니다.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은 더더욱 만만하지 않다. 그저 열심히 내달린다고 가장 먼저 42.195km를 주파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잘 뛰는 능력 외에도 정확한 페이스 조절, 체력적 안배, 구간별 분석이 필요하다. 금메달이 목표라면 냉정해야 한다. 그래서 '페이스메이커'란 애매한 자리가 생긴다. 남의 금메달을 위해 영광없는 레이스를 벌이다 완주조차 하지 못하는 비운의 마라토너.

영화 '페이스 메이커'(감독 김달중)에서 '명민좌' 김명민(40)이 바로 그 역할을 맡았다. 일단 그는 마라토너가 되어야 했고, 보는 것만도 안쓰럽지만 어느덧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남자 주만수가 되어야 했다. 일단 기꺼이 마라토너의 몸과 자세를 만들었고, 주만수를 보고 앞으로만 달리는 '늙은말'을 떠올리며 앞니가 툭 튀어나오도록 의치를 꼈다. 결국 해냈다.


그는 작품을 위해 스스로를 '혹사'시킨다는 표현에 고개를 저었다. 대신 작품을 만나 연기하는 것을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는 데 비유했다. 일단 한 눈에 사랑에 빠지고 나면 어떤 고난이 뻔히 보여도 포기할 수가 었는 게 아니겠느냐며. 그의 표현대로라면, 김명민은 만만한 여인에게는 결코 마음이 동하지 않는 게 틀림없다.

"시나리오를 딱 읽었는데 눈물이 막 나는 거예요. 그런데 두번째 읽을 때 보이더라고요. '이거 또 뛰네, 또 뛰네, 또, 또…. 장난 아니네.' 그런데 이미 늦은 거죠. 일단 마음으로 느껴서, 감성적으로 시나리오를 덮었을 때는 그게, 현실적인 조건이 안 보여요. 사람한테 반하는 거랑 똑같아요. 이미 꽂혔는데 어떡해. 바꿀 순 없거든요."(웃음)

그 다음부터는 뒤 돌아보지 않았다. 의치로 얼굴이 못생겨 보이고 발음이 어려워졌지만 감수했다. '페이스메이커'의 첫 언론시사회 직후 김명민이 "비주얼에 더 신경을 써야겠더라"며 못봐주겠다고 너스레를 떨었을 정도였다. 포토타임 땐 "그게 다 파트너로 나온 고아라가 예뻐 보이라고 한 것"이라며 수습에 나서 더 웃음이 터졌다.


"농담이고요, 저도 큰 극장에서 큰 스크린으로 본 게 처음이잖아요. 좀 놀랐어요. 그리고 수습한 것만은 아닌 게, 저로 인해 아라가 빛이 난 건 확실한 것 같아요."(웃음)

윗니가 쑥 튀어나온 의치는 우스꽝스러우면서도 가련하다. 동생을 위한다며 모든 희생을 감수하는 우직한 마라토너의 모습이 거기에 담겼다. 자칫 궁상스러울 수 있는 캐릭터에 살을 붙이는 건 배우 자신의 몫이라 생각했던 김명민은 그 몫을 다해보자 생각했다.

"다른 분들은 그런 말씀도 하세요. 굳이 인공치아를 끼워서 김명민이 가지고 있는 좋은 목소리와 정확한 발음이 왜 반감되게 하느냐. 그렇게 한 건, 그게 주만호의 삶을 보여줄 수 있으니까, 제가 그렇게 하고 싶으니까, 그거였어요. 제가 백만장자 역할을 한다면 모든 걸 동원해서 그에 맞게 치장을 하겠죠. 하지만 주만호라는 사람은 말을 저처럼 할 것 같지 않았어요. 루저처럼 보여야 했고, 뭔가 부족하고 어눌해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죠.

분장도 전혀 안했어요. 모든 장면이 노메이크업이에요. 계속 뛰니까 하도 땀이 나서 할 수가 없죠. 모공이며 어쩌다 난 뾰루지도 보이는데 저는 그게 주만호스럽다고 생각했어요. 다만 발음이 어눌한 것과 전달이 되지 않는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어요. 어눌해도 발음이 새서는 안되죠. 제가 후시녹음은 잘 못해요. 현장에서 최선을 다해 최상을 뽑으려고 동시녹음 기사님과 체크하면서 계속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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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민의 모습이 달라진 게 인공치아 때문만은 아니다. 마라톤을 하면서 전체적으로 몸매는 슬림해졌고, 다리는 더 튼튼해졌다. 최근 너무 몸을 혹사시킨 탓에 살이 쭉 빠져 안쓰럽다는 식의 이야기가 나온 건 그로선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내 사랑 내 곁에'(당시 그는 루게릭 환자 역을 맡아 실제로 극한까지 몸무게를 감량했다) 이후 그런 분위기가 생겼어요. 사실이 아닌 것도 마치 그런 것처럼 기사가 나기도 하고. 어떤 땐 그런 말 그만 좀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특히 '혹사'라는 말은 마치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반 강제로 뭔가를 하게 되는 느낌이잖아요.

저라고 다를까요. 자기 몸을 혹사시키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다만 마라토너 역할을 맡았는데 마라토너가 안 보이고 대충 몸사리는 배우가 보이면 안되잖아요. 그게 기본이고 모든 배우들이 다 그렇게 하려고 하는데, 나만 왜 그렇게 애처롭게 보시는지 모르겠어요."

자신에게 엄격하기로 이름난 이 배우에게 군더더기 없는 완벽한 동작으로 발을 내딛고 부는 바람이 느껴질 듯 빠른 속도로 매 장면마다 달리는 건 단지 시작이었다. 죽도록 뛰었다. 그 땀방울은 고스란히 영화에 담겼다. 과거 오토바이 부상으로 후유증이 있는 그에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2000년 쯤, '스턴트맨' 하다가 다치기 전에 마라톤 완주를 한 적이 있어요. 조깅을 워낙 좋아해서 동네 근처에서 하는 비공식 마라톤 대회에 나간거죠. 4시간 정도 걸렸어요. 그 후에도 운동을 하긴 했지만 다리를 다친 뒤에는 오래 뛰진 못하겠더라고요. 재활 운동을 하고 해서 정상적인 상태까지 끌어올렸어도 후유증이 있어요. 오래 서있거나 하면 오른쪽 다리에 피가 몰리고, 만성적인 고통 같은 거죠. 오래 달리기가 어려운 주만식과 동질감을 느낀 것 중 하나가 그 부분이었어요."

그렇다면 김명민이 주만식과 가장 큰 동질감을 느낀 부분은 무엇이었을까. 김명민은 '처절하게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벌인다'는 점을 꼽았다. 누구의 도움 없이 쓸쓸한 길을 달려야 하고 모든 게 스스로에게 달렸다는 점에선 배우도 마라토너와 같다며.

"제 연기 인생이 얼마 안 되지만, 돌이켜보면 그렇게 살아온 것 같아요. 제가 걷고 있는 배우의 길과도 비슷하죠. 시나리오를 보며 생각했어요. 아 마라토너들도 이렇게 처절하게 자신과의 싸움을 하는구나. 더욱이 야구나 축구는 팀플레이잖아요. 자기가 못하면 동료가 채워줄 수가 있는데 마라톤은 방법이 없어요. 자기 몸뚱아리 하나로, 아무 도구 없이 고독하게 달리죠. 스스로 정신과 육체를 소모하면서."

그렇기에 그 마라토너가 마음을 울컥하게 하는 순간은 바로 스스로가 혼자가 아님을 깨달을 때다. 영화는 이를 통해 꿈과 희망을 이야기한다. 좋아하는 것과 잘 할 수 있는 것 중 무엇을 하겠느냐는 질문과 함께. 김명민은 "세상을 사는 98%를 대변하는 주만호라는 인물을 통해 무엇보다 꿈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재차 강조했다.

'명민좌'라는 별명에 대해 물어봤다. 어느 새 한 분야의 대가를 뜻하는 말이 된 '본좌'라는 신조어에 김명민의 이름을 더한 영광스러운 수식어다. 그는 극찬을 내포한 이 수식어가 감사하면서도 또한 거기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털어놨다. 남모를 부담과 고충을 숨기지 않았다.

"예전부터 벗어나고 싶었어요. 그게 얼마나 많은 안티를 양산하는지 모르시죠?(웃음) 누가 대단하다 대단하다 계속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대단하다고 하면 되려 깎아내리게 되잖아요. 다른 분들 팬이 다 제 안티가 되시고. 저도 그냥 가만 두시면 이 자리에서 괜찮을 텐데 거기에서 더 떨어지는 그런 결과가… .(웃음) 그런 수식어나 설문 들어가는 기사조차 불편할 때가 있어요."

차기작인 '연가시'를 한창 촬영중인 김명민은 촬영이 끝나기 전까지는 다음 작품을 생각할 여유조차 없다며 말을 아끼기도 했다. 겹치기 출연을 절대 못하는 배우. 그것이 배우의 생명을 단축시킨다고 생각하는 배우. 고지식한 배우. 정석대로인 배우. 그리고 연기 잘 하는 배우. 팬들이 쉽사리 그에게서 '명민좌'란 수식어를 거두어줄 지, 글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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